기재부 제2차관까지 등장하자 한국은행 부총재는 뒷줄로 밀려나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기획재정부의 최상목 제1차관과 송언석 제2차관은 국회에 출석해 김광림 새누리당 국회의원을 볼 때마다 더욱 각별한 존경심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김광림 의원이 단순히 기재부 관료 선배여서가 아니다. 김 의원은 2003~2005년 재정경제부(지금의 기획재정부) 차관을 지냈다.

김 의원이 차관할 때는 제1, 제2 차관이 아닌 단독차관이었다. 특히 그 때는 주식시장 투자기반을 확충하는 여러 가지 법이 마련될 때여서 김 차관은 1주일에 최소 3~4일을 국회에서 보내야 했다.

국회를 중심으로 취재하던 기자가 일정이 비는 틈을 타 과천 재경부 청사를 찾아갔을 때는 김 차관이 출입기자들을 모두 모아놓고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국회 출입기자가 어디를 가든 하루도 빠짐없이 눈에 띄는 사람이 재정경제부 차관이었다.

잦은 국회 출석은 부처 내 결재병목이 심각해지는 문제가 있었다. 1주일 내내 차관이 국회에 불려가서 자리를 비운 바람에 업무가 진척이 안되는 것이다. 기재부를 비롯한 몇몇 부처가 제2차관을 두게 된 것은 이런 현실에서다.

그래서 당시 김광림 차관 한 사람이 ‘폐침망식(廢寢忘食)’하면서 하던 일을 오늘날은 최 차관과 송 차관이 나눠서 하고 있다. 예산을 늘려서 차관 자리를 하나 더 늘린 것은 대외적인 일과 대내적인 일을 분담하라는 취지였다.

그런데 국회에 출석한 기재부 직원들을 보면 현실은 이런 구분이 아니라 이 일 저 일 나눠서 하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두 차관 가운데 하나는 지금 현재 세종시에 있는 기재부를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둘 다 서울 여의도 국회에 나타나는 것이다.

차관이 모두 자리를 비웠어도 자부심 드높은 기재부 관료들이 자기들 일은 잘 알아서 하겠지만, 두 차관의 동시 등장으로 인해 엉뚱한 사람이 뒷전으로 밀려나는 수모를 겪고 있다.

한국은행 부총재다.

매번 국회에서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종합감사를 진행할 때마다, 기재부 두 차관은 장관·총재와 동렬해 있는 반면, 한은 부총재는 이들의 뒷머리를 바라보고 뒷줄에 앉아있다.
 

▲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지난 14일 국정감사 모습. 푸른색 화살표 아래 있는 사람이 장병화 한국은행 부총재다. 앞줄은 왼쪽부터 송언석 기획재정부 제2차관, 최상목 제1차관, 유일호 경제부총리,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뒷줄에 있으면 국회의원들의 집중적인 시선을 피할 수 있어서 일신상으로는 편안하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고 있는 한국은행 직원들은 유쾌하기 어렵다. 중앙은행의 적정한 위상을 중시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사진=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이것이 원래부터 이어진 의전은 아니다. 한국은행 부총재 역시 기재부 장관, 한은 총재, 기재부 차관과 함께 앞렬에 앉아있었다.

기회만 되면 청산유수 말문이 터지는 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가 부총재 시절 지금처럼 뒷 열에 앉아있는 상황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기재부 제2차관 역시 국회에 등장하면서 이런 식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서도 이런 자리 배치가 유지되는 것은 상당히 의아한 일이다. 현재 제1 정파를 구성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중앙은행 독립과 관치 경제 배격을 상당히 강조하고 있다.

이들이 다수파를 차지하고도 중앙은행 부총재를 이런 식으로 예우하는 것은 그동안 양당의 기재위 의원들 주장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예전에는 한은 부총재가 한은 총재 임명이어서 대통령 임명 정부 차관과 의전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었다. 물론 그시절에도 한은 부총재는 기재부 차관, 금융위 부위원장과 함께 금융안정협의회를 이루는 한 축이었다.

더구나 2004년에는 법개정을 통해 한국은행 부총재 역시 대통령 임명이 되면서 당연직 금융통화위원이 됐다. 의전면에서 정부 부처 차관과 차이를 둘 아무런 근거가 없다.

하지만 장병화 한국은행 부총재는 오늘날 기재부 두 차관에 밀려나는 신세가 됐다. 한국은행 창립 이후 60년 동안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제2차관 때문에 한은 부총재가 뒷전으로 쫓겨나고 있다.

이승일 전 한은 부총재는 국회 연락 업무를 담당하던 시절, 부총재 자리를 앞줄에 놓는 것 또한 이런저런 시비가 많았다고 밝혔다. 어떻든 앞줄의 부총재 자리를 지켜냈던 그는 훗날 자신이 그 자리 주인공이 됐다.

부총재와 차관들의 자리 배치는 사소한 것이 아니다. 국회의 중앙은행에 대한 시각이 담겨있는 것이다.

국회 관계자들은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앞선 19대 국회 때 관행이 이어진 것으로 재검토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밝히고 있다. 20대 국회 개원 이래 어느 누구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조경태 기획재정위원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시 검토해 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국민의당 기재위 간사를 맡고 있는 김성식 의원도 14일 종합감사를 마친 후 “다음 회의 때는 여기에 대해 논의해 보겠다”고 말했다.

기재위 관계자들과의 인터뷰에서 감지되는 것은 그동안 아무도 여기에 대해 말을 꺼낸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예전의 이승일 부총재와 같은 사람이 지금의 한은에는 없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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