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또한 '거국내각' 갈팡질팡... 여전히 명료한 해법보다 장황한 설명

▲ 김병준 총리후보자가 3일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뉴시스.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거듭 1996~1997년 ‘IMF 외환위기’ 때와 같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상황전개가 그 때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달 국정감사 때 유승민 의원 등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들로부터도 지적됐다.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재무관료 출신인 이종구 추경호 의원도 상당한 경각심을 정부에 촉구했다.

그런데 이것은 최순실 파동이 벌어지기 전 일이다.

그 때까지는 현재의 가계부채 문제와 1996년 경상수지 악화, 조선 해운 사태와 1997년 한보 기아 부도를 비유하는 정도였다.

최순실 파동은 더욱 불안하게 ‘IMF 때’와 흡사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1996년말 노동법 파동 후의 국정 관리능력 마비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한 조짐이 보이고 있다.

20년 전, 국민들간 첨예한 논쟁이 벌어졌던 노동법 개정에 대해 정부와 집권당은 재계에 크게 편향된 개정안을 만들어 새벽 기습회의를 통해 통과시켰다. 1996년 크리스마스 새벽의 일이다.

이후 벌어진 국민들의 저항은 집권세력의 당초 예상을 너무나 크게 벗어났다. 정부는 등 떠밀리듯 재개정에 나서게 됐다. 집권당내 강경세력들이 기세 좋게 반대파에게 호통치면서 밀어붙이다가 재개정을 하는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가뜩이나 집권 마지막 해였다. 가만있어도 달아날 통치력을 스스로 걷어차는 꼴이 됐다.

그나마 노동법 파동은 한보와 기아 사태 전이었다.

지금의 최순실 파동은 가계부채로 기초 체력이 불안해지고 조선 해운사태로 일격을 맞은 가운데 터졌다. 비유하자면 1996~1997년 순서를 바꿔서 한보와 기아가 먼저 부도난 후에 노동법 파동이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당시 웬만한 당국자들이 한보의 ‘검은 돈’ 시비에 휘말리듯, 지금은 과연 최순실과 무관한 사람이 있느냐는 의구심이 가득하다.

1996년 말의 노동법 파동으로 지도력을 잃은 정부는 1997년 위기 상황에서 낙제점의 대응 능력을 드러냈다. 그리고 끝내 국가부도 위기로 몰려갔다.

박근혜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김병준 총리 후보를 내정한 것은 그 어느 편으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의 지도력을 여전히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쓴 소리가 나온다.

선거를 통해 뽑은 대통령이지만, 신망이 떨어지니 이렇게 됐다.

그렇다면 대통령 지도력이 사라진 빈 틈은 누가 채워야 하나. 이런 때는 민의를 대변하는 의회가 나설 수밖에 없다. 국회는 현재 두 야당이 과반수를 넘고 있다.

그러나 ‘거국내각’에 대한 갈팡질팡으로 야당은 잃지 말아야 할 점수를 스스로 크게 잃고 말았다.

자신들이 먼저 꺼낸 ‘거국내각’에 여당이 받아들이는 ‘액션’을 취하자 오히려 한 발 빼는 듯한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 사이 기습적으로 ‘책임총리’를 자처하는 사람이 등장했다.

야당은 거국내각에 대한 선회 여부에 이러저러하게 장황한 설명을 한다. 그런데 이런 것이 바로 야당과 국민사이 정서가 어긋나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인구가 수천만 명에 이르는 규모의 국가에서 대중은 단순명료한 설명을 필요로 한다. 정치인의 지도력은 상당 부분 이런 명쾌함에서 비롯된다.

언제나 야당은 결론보다 무슨 설명이 많다. 야당에 대한 대중의 지적 피로도는 여기서 발생한다. 1997년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은 확실한 카리스마가 없다 보니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최순실 농단에 대한 분노의 일파가 지나가고 나면, 다음은 어떻게 상황을 진정시킬까에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야권에서는 간혹 “이 국면을 오래 끄는 것이 유리하다”는 식의 주장이 나오는데, 과연 올바른 태도인지는 모르겠다. 분노의 에너지란 그렇게 오래도록 지속가능한 것이 아니고 때가 정해져 있는 법이다.

복잡한 논쟁은 나중으로 미뤄야 할 시급한 상황이다. 함께 일할 사람은 확실하게 뒷받침해 주고 아닌 사람은 분명하게 선 밖으로 구분해줘야 한다. 이 과정에 “벌써 집권했냐”라는 비아냥은 안 나오게 할 필요성은 야당 스스로 더욱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금융시장조차 이런 반응이 나타나고 있는데 야당이 모를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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