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주의' 미국을 앞당긴 건 현존 지성의 패배를 의미

▲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사진=트럼프 페이스북 캡처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본지를 통해 냉전 이후의 미국과 중국 춘추시대의 진(晉)나라와 비교한 적이 있다.

춘추시대는 1945~1991년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기와 비슷한 구도를 가졌다.

중국인들의 이상인 왕도정치를 위해 진나라가 주나라 천자를 보호하고, 남방 초나라의 침략에 맞서면서 제후들을 통합했다. 소련이 이끄는 공산권의 무력 공세에 미국이 수세적으로 맞서던 시기와 비슷하다.

점차 초나라가 중원에 동화되자 진은 유일강국의 지위를 굳히는 듯 했다. 그러나 동시에 천하 제후들에게 더 이상 진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됐다.

공동의 적인 초나라마저 우리 편이 된 세상은 전혀 평화롭지 않았다.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향해 싸우게 됐다. 그게 바로 전국시대다. 제후들 모두 주나라 천자와 동격인 왕을 칭했다.

냉전 체제는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등장과 함께 완화되다가 1991년 공산주의 성향 군부의 쿠데타 실패로 완전 종식됐다.

소련이 사라진 후 ‘안보 맹주’ 미국의 역할은 언제든 사라질 운명을 안고 있었다. 이 운명을 지연시킨 것은 몇 차례에 걸친 지역 분쟁의 군사적 개입이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경제난은 ‘미국만을 위한 미국’으로의 변화를 앞당겼다. 이번 선거에서는 그것이 예상보다도 훨씬 앞당겨졌음을 의미한다.

CNN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 미국인들이 선택한 가장 큰 투표 기준은 변화의 필요성이었다. 이 변화는 ‘안보 맹주’의 짐을 내려놓은 새로운 미국의 개념과 통한다. 다른 나라를 지키기 위해 돈을 쓰기도 싫고, 외국 이민자들 때문에 일자리를 잃기도 싫다는 정서다. 공동의 적인 소련에 맞서는 가장 큰 형 노릇을 할 때는 억제했던 것들이다.

다시 춘추시대와 비유하자면, 미국은 초나라가 사라져 더 이상 필요 없는 진나라의 처지가 됐다.

지금의 미국은 중국과 인도의 넘쳐나는 인구를 분산 수용해서 인구면에서도 1등 국가가 되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3억 인구끼리 더 이상 남을 위한 희생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윤택하게 살겠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강조한 ‘강한 미국의 부활’은 그런 나라다.

트럼프의 언행이 상식에 벗어난 것이 너무나 많아 이번만큼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무난히 이길 것이라고 예상됐었다. 많은 미국 언론들이 이례적으로 클린턴 지지를 선언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결이 아니라 미국의 지성사회와 트럼프의 대결 같은 양상이었다. 이 점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와 다른 점으로 제시됐었다.

그러나 결과는 미국 기존 지성의 패배다. 

혹자는 트럼프의 자극적 선동에 교육 수준 낮은 계층이 현혹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상당수 박식한 언변을 과시하는 사람들 역시 마음 깊은 곳에 트럼프에게 동조한 것은 아닌지. 사람 마음속은 알 수 없는 것이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도 페이스북에 극단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하는 게시물을 올리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트럼프를 지지한 사람들은 미국의 식자층들이 제시하는 지성의 기준에 반감을 드러낸 것이다. 이제 지성의 변화가 필요한 시대가 됐음도 의미하고 있다.

선거는 미국 선거인데, 다른 나라 사람들이 페이스북에 트럼프를 조롱하는 글을 매일같이 공유했다. 이런 것들은 오히려 그의 지지자들을 단단하게 결속시켰다.

트럼프 시대에 한국이 특히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점은 그의 국제 전략이다. 주한미군, 북핵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의 미국 대통령들과 그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것이 단순히 트럼프 개인의 취향이라면, 미국 사회구조가 호락호락하게 바꾸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선택한 미국 대중들의 기저심리와 통하는 것이라면, 트럼프 아니라 그 누구에 의해서도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다.

국제정세가 심각하게 변하고 있어서 뜻이 모아진 대처가 절실한 때다. 중국과 러시아는 트럼프 시대의 개막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각자 남의 영역 간섭하지 말자는데 싫어할 일이 아니다. 미국과 북한 관계도 대격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는 이런 상황에 현명하게 대처할 신뢰받는 리더십을 찾을 수 없다. 영웅은 난세에 나온다고 하니 이 또한 비관만 할 일은 아니라고 기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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