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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에이스'마저 이직
원달러 '에이스'마저 이직
  • 장경순 기자
  • 승인 2016.11.27 1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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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 시중은행 딜링룸의 모습. (기사 내용과 무관함.) /사진=뉴시스.


[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47] 내가 은행에 들어온 지 1년 5개월쯤 지난 1997년 3월, 처음과는 크게 달라진 점이 있었다. 인력이탈이 더 이상 은행에 충격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외화자금실 인력들이 외국계 기관과 당시 한참 기세를 올리던 종금사 쪽으로 옮겨가는 일이 간간이 생겼다.

김문수 씨(현 액티스 캐피털 아시아 본부장)가 1995년 10월 골드만삭스로 이직했을 때는 은행이 평정심을 잃은 듯한 모습도 드러냈었다. 그러나 이제 직원들의 이직은 무조건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물론 떠나는 직원의 마음을 돌리려는 노력은 여전했다. 하지만 국책은행이 갖고 있는 제도의 한계 내에서 파격 대우를 약속받은 사람을 붙잡기는 매우 어려웠다.

요즘은 국책은행이 ‘신의 직장’이라고 급여도 꽤 많이 받는지는 몰라도, 이때만 해도 국책은행의 장점은 급여가 아니었다. 직장의 안정성, 그리고 국책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이 더 크게 작용했다.

그런데 점점 사회는 예전과 달리 불확실해졌다. 누구나 다 정년퇴직할 때까지 직장을 다니던 시대라면 산업은행이 최고 직장인건 분명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이 무렵부터 ‘퇴직을 하고 나면?’이라는 불안감을 갖게 됐다. 동료 행원으로부터 거평프레야에 조그만 매장하나 있으면 훗날이 든든하다는 얘기도 들었다.

점차 벌 수 있을 때 더 많이 벌어야 하지 않겠냐는 회유에 은행 사람들이 적잖이 흔들렸다.

섣불리 규정에도 없이 급여를 올려줬다가는 나중에 감사받을 걱정을 해야 하는 국책은행에서는 직원들을 붙잡기가 몹시 힘들었다. 어떤 차장은 직원이 종금사로 떠나려고 하자 이 종금사에 전화를 걸어 “라인(신용공여 한도)을 다 끊어버리겠다”고 호통을 쳐서 강제로 직원을 주저앉혔다는 얘기도 들었다.

급여나 처우뿐만 아니라, 업무의 완벽성과 같은 복합적인 차원에서도 은행원들이 흔들렸다. 국책은행이기 때문에 돈을 너무 벌어도 안 되는 측면이 있었다. 산업은행이 돈을 벌었다면 시중은행들이 손해를 봤다는 의미 아니냐는 차원에서다. 거기다 국가정책적인 고려까지 해야 했다.

은행 스스로 자승자박을 하는 성격이 강하니 도전의식이 강한 사람들의 성취욕을 제풀에 꺾기도 했다.

이 무렵, 은행의 최대 인력 이탈이라면 단연 원달러 딜링의 ‘에이스’ 이성희 씨(현 JP모건 서울지점장)의 이직이다. 그가 케미컬 은행으로 옮겨가게 된 것이다.

외화자금부 뿐만 아니라 은행의 다른 간부들도 그를 만류했지만, 붙잡지 못했다.

며칠 후 저녁, 외화자금부의 행원들 정기 모임이 있었다. 이 자리에 이성희 씨도 며칠 늦은 작별을 겸해 동참했다.

은행 사람들은 그가 못해도 다섯 배 이상 연봉은 받을 것이라고도 했지만, 그가 밝힌 소감에 따르면 그건 아닌 듯 했다.

연봉보다는 다른 얘기를 옛 동료들에게 남기려고 온 모양이었다.

이성희 씨는 “앞으로 외국기관들이 본격적으로 더 많이 들어올 텐데 그 때 되면 은행의 선호부서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 때만 해도 그가 있던 원달러 데스크는 해외본드나 파생상품 데스크, 외국 통화간 딜링 데스크보다 선호도가 떨어졌다.

그는 이렇게 선호도 높은 부서는 외국은행들 본점에 더 우수한 인재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굳이 한국에서 찾을 일이 없다고 말했다. 원화와 관련된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더욱 각광을 받을 것이라고 그는 조언했다.

이와 함께 그가 제시한 부서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른 곳이었다. 산업은행으로 말하자면, 수신개발부가 경력 면에서 매우 전망이 좋다고 말했다. 수신개발부는 산업은행이 발행하는 산업금융채권을 만드는 곳이다.

이성희 씨가 옮겨간 케미칼 은행은 얼마 후 체이스맨해턴으로 합병됐다. 체이스맨해턴은 또 얼마 지나 JP모건으로 합병됐다.

외국도 흡수 합병되는 은행의 사람들은 계속 남아있기 어려운 현실이지만, 이성희 씨는 은행이 명칭을 바꿀 때마다 원달러 데스크로 건재해 현재 JP모건 서울지점장으로 근무 중이다.

19년 전, 은행 간부들이 그의 이직을 만류했던 것이 무색해지는 오늘날의 모습이다. 물론 자신의 업무에 강한 자신감과 비전을 가진데서 비롯된 성공담이다.

당시 산업은행을 떠난 사람들이 모두 대성공을 누린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반년 후 닥쳐오게 될 외환위기라는 예상도 못한 폭풍으로 인해 엄청난 인생의 갈림길에 서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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