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vs 정주영'과 '노무현 vs 장세동'은 무엇이 달랐나

▲ 1988년 5공비리 청문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당시 통일민주당 국회의원)이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에게 일해재단에 관한 의혹을 질문하고 있다. /사진=당시 TV 화면.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88년 5공비리 청문회가 시작하자마자 장세동 전 안전기획부장을 상대로 매서운 공격을 가하면서 청문회 스타가 됐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상대로도 맹활약 했지만, 이때는 청문위원인 노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증인인 ‘왕(王) 회장’(정 전 회장의 별명)이 함께 돋보이는 공수를 주고받았다.

청문회 첫날, 장세동 전 부장이 출석했을 때 TV 시청률은 엄청나게 높았지만 해가 저물 때까지 ‘이런 청문회 왜 하나’ 싶을 정도로 맥이 빠졌다. 수준 낮은 질문에 증인은 발뺌으로 일관했다.

이걸 바꾼 것이 저녁 7시 무렵 노 전 대통령의 질문 차례였다. 구체적 자금 하나하나의 지출을 들이대면서 따지는 초선의원 노무현의 추궁에 장세동 증인이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매서운 눈초리로 국회의원들을 노려보던 몇 분전 자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청문회의 필요성이 드디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질문은 어처구니없게도 시간을 너무 끈다는 다른 의원들 항의로 종료됐다. 노 전 대통령은 타의로 중간에 질문을 마쳐야하는 절망감을 표정에 감추지 못했다.

이틀 후, 정주영 회장을 상대로 한 노무현 의원의 모습은 조금 달랐다. 그의 정 회장에 대한 질문은 구체적 사실의 진위를 따지기보다, “과연 그게 옳은 일이냐”는 토론의 성격이 강했다.

첫날과 마찬가지로 다른 의원들의 야유는 여전했다. 앞서 증인인 정주영 회장에게 “회장님” “증인님” 등 저자세 호칭으로 꼴불견을 연출한 의원들은 노무현 의원의 질문 도중 “여기가 재벌하고 토론장이야?”라며 야유를 늘어놓았다.

이런 추태를 묵살하며 질문을 마치는 노무현 의원의 표정에는 첫날과 달리 할 얘기 다했다는 느낌의 가벼운 웃음기도 섞여 있었다.

그의 질문 요지는 “일해재단에 바친 돈은 함부로 그렇게 쓸 권한이 회장에게 없다. 그렇게 쓸 거면 직원들을 위해 써야 했다”는 것이었다.

정주영 회장은 “기업하는 사람으로서 기업에 유리한 결정을 한 것”이라며 간간이 “우리가 그런 돈을 바치지 않도록 노무현 의원 같은 정치인들이 바로잡아 달라”고 반격도 했다. 그는 4년 후 자신이 직접 바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게 된다.

정 회장의 답변에 대해 진보세력은 ‘파렴치한 재벌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냈다’고 기존의 비판을 이어간 반면에 재계에서는 ‘업계 전체의 하고싶은 말을 하고 왔다’고 평가했다.

정 회장은 답변을 통해 변명 뿐만 아니라, 5공비리 청산 위원회가 원하는 ‘선물’도 제공했다. 장세동 전 부장의 발뺌을 뒤집는 근거를 밝혔던 것이다. 할 말 하면서도 상대에게 줄 것은 주고 왔다. 이런 점이 ‘왕 회장’이라는 이미지를 더욱 굳혔다.

노무현 의원은 정주영 회장과 대면한 이틀 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증인자체로 가장 벅찬 상대는 역시 정주영 회장인데 그는 능란하게 핵심을 피했고 때로는 기습적으로 역공을 가했다”고 말했다.

정 회장 역시 어려운 상대로 노무현 의원을 의식했다. 정 회장의 아들로 노무현 의원과 함께 초선의원이 된 정몽준 무소속 국회의원이 청문회장에서 노 의원에게 각별히 인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여론의 정 회장 증언에 대한 평가는 인색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5공비리의 한 축인 재벌에 대해 좋은 수식어를 쓰지 못한 것이지, 주어진 상황에서 ‘재계 어른’의 역할은 하고 왔다는 수면 아래 반응이 더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후, 재계 총수들이 국회 호출을 꺼리는 경향이 더욱 깊어졌다. 어차피 나가도 좋은 소리 못 들을 거면 700만원 내고 만다는 풍조까지 확산됐다.

그러다가 국민 분노의 한계선을 넘는 지경이 돼서 6일 ‘미니 전경련’이 국회에 모이는 지경이 됐다. 이날 국회 청문회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 구본무 LG 그룹 회장, 최태원 SK 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9명의 재벌 총수가 출석했다.

한참 나이인 이재용 부회장과 최태원 회장 등이 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지만, 1988년 당시 이미 73세인 정주영 회장과 비교하기는 무리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