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 "금융의 탈세계화로 은행 역할 축소되며 안전장치 미흡"

[초이스경제 김완묵 기자]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탈세계화 현상이 나타나면서 핫머니(hot money)를 통한 금융 불안정성은 다소 해소되었지만, 은행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갑작스런 이벤트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영국의 세계적 경제전문지인 이코노미스트는 19일 이 같은 자료를 내놓고 탈세계화와 은행의 역할 축소가 세계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 1980년대 초 이후 20년 이상 세계 금융시장은 마치 한 방향으로만 움직인 것처럼 보였다. 점점 더 많은 자금이 국경을 넘어 흘러가고, 자본시장은 점점 더 통합되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이 같은 세계화 양상이 정체되었고, 심지어는 부분적으로 퇴보하기도 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이 3년마다 실시하는 외환시장 설문조사 결과가 그 한 예다.

BIS 조사에 따르면 세계 외환시장 일간 회전율은 2013년 4월에 5조4000억 달러에서 올해 4월엔 5조1000억 달러로 감소했다. 일간 회전율이 1조 달러 정도에 불과했던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여전히 어마어마한 규모이긴 하지만 이는 시장이 조금 덜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는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앞으로만 전진하던 금융의 세계화 흐름이 머뭇거리거나 퇴보하는 조짐을 보이며 탈세계화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3년 동안 현물환 매매가 19% 가까이 줄어들었다.

BIS의 다른 데이터도 이러한 추세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 해외 대출은 2008년 1분기에 34조6000억 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2010년 2분기에 27조9000억 달러까지 감소했는데, 그 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했다. 가장 최근 데이터인 2016년 2분기에는 28조3000억 달러를 기록했다.

해외 대출이 감소한 이유는 부분적으로 유로존에서 있었던 이벤트들의 결과물인 것으로 보이는데, 유로존에서 재정위기가 발발하면서 은행들은 취약 국가에 대한 대출을 줄였다.

컨설팅 회사 맥킨지에 따르면, 해외 직접투자를 비롯해 모든 자금흐름을 더하면, 2015년의 글로벌 자본흐름은 2007년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필연적으로 나쁜 소식은 아니다라는 분석이다. 무엇보다도, 1990년대에 아시아 국가들이 개발 경쟁을 벌이면서 상당히 많은 핫머니가 유입되었는데, 이 같은 자금유입으로 경제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

이로 인해 환율이 경제 펀더멘털과 불일치하게 될 수 있고, 수출 기업의 경쟁력이 하락하게 될 것이다. 또한 환율이 하락하면서 기업들이 해외에서 대출을 받도록 부추겼다. 그 후 핫머니가 빠져나가고 환율이 폭등할 때, 해외에서 대출을 받은 기업들은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게 될 것이다. 그 결과로 금융위기가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금융의 탈세계화가 경제 펀더멘털과 연관되어 있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글로벌 무역량은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 연간 5~10%씩 꾸준하게 증가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2% 수준으로 증가해 왔다. 2015년에 글로벌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8년보다도 더 낮았다.

무역량의 증가 속도가 둔화된다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대출 수요 또한 둔화될 것이다. 다만 글로벌 자본흐름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율은 낮다. 오히려 글로벌 자본흐름이 감소한 것은 주로 금융 섹터 내에서 발생한 이벤트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 국제 은행 활동은 위험 수요(risk appetite)를 측정하는 지표들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경제 전망이 좋을 때 은행들은 기꺼이 해외에 대출을 해주었다. 물론 충격을 받으면서 은행들은 자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영란은행의 연구도 이를 뒷받침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 섹터의 해외 업무가 전반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부분적으로 이는 호황기에 대출을 크게 늘렸던 기업과 개인의 수요 부족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아마도 은행 섹터의 부진 때문일 것이다.

은행들은 일부 자금줄(예를 들어, 뮤추얼 펀드)을 뺏기고, 규제 기관들로부터 대차대조표를 재건하라는 압박을 받아왔다.

BIS에 따르면, 이 같은 변화를 반영해 외환시장에서 참여 주체의 유형에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연기금이나 보험사와 같은 기관 투자자들이 더욱 활발해지는 대신 은행 섹터는 부진을 나타내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투기세력에 덜 사로잡힌 시장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환 트레이딩에 있어 은행의 역할이 줄어든 것이 좋은 소식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이에 BIS는 “변동성 급증과 갑작스러운 이벤트”가 나타날 조짐이 보이고 있다고 언급했다. 많은 투자자들과 기업들은 환 위험을 헤지 하고자 하며 반대 포지션을 취해 줄 기관을 필요로 하지만, 은행의 역할이 줄어들면서 위험이 증대될 수도 있다는 진단이다.

 

[기사 정리=초이스경제 김완묵 기자/ 기사 도움말=골든브릿지증권 이동수 매크로 전략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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