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해체되고 도덕적으로 재무장한 중도우파 정당 만들어야"

▲ 이상일 전 국회의원 /사진=뉴시스

 

탄핵정국이 지속되면서 경제의 불확실성이 길어지고 있다. 소비, 투자, 고용 등 경제의 거의 모든 핵심 지표는 경제의 봄이 아직 멀리 있음을 알리고 있다.

정부가 얼마 후엔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할 계획이지만 내년도 상반기를 전후해 조기 대선이 치러지고, 정권이 바뀌게 되면 그 경제정책방향은 백지화될지도 모른다. 이런 예측 불가능성은 경제를 흔드는 큰 요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실패에서 우린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대통령의 탄핵 문제는 최종적으로 헌법재판소(헌재)가 판단할 몫이지만 국민의 대다수는 이미 마음속으로 대통령을 탄핵했고, 정치권은 벌써 조기 대선을 기정사실화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만일 개헌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헌재가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릴 경우 정치권과 국민은 곧바로 2개월 뒤에 실시될 대선으로 눈을 돌릴 것이고, 박 대통령 파면을 초래한 사태의 원인이나 배경은 망각의 늪 속으로 묻혀 버리게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2012년 총선,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조윤선 현 문화체육부 장관과 함께 당 중앙선대위 대변인으로 활동했던 이상일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20일 “박 대통령 대선 승리 4주년을 앞두고 국회의 탄핵이 이뤄져 참으로 참담하지만 박 대통령이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행 대통령중심제를 유지하든, 개헌을 통해 다른 제도를 도입하든 나라를 이끄는 정치지도자라면 박 대통령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란 이유에서다.

이상일과 조윤선. 두 사람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다는 중앙선대위 대변인직을 수행했다. 이상일은 주로 당에서 당과 후보의 공약과 비전을 알리고, 야당의 정치공세에 대응하는 일을 했다. 각종 회의 결과를 브리핑하고 성명, 논평을 직접 써서 발표하고, 내외신 기자들의 취재에 응하는 활동을 했다. 조윤선은 전국을 도는 박근혜 후보를 수행하면서 후보의 일정 소화를 도왔고, 옷 코디를 비롯한 후보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일도 거들었다.

박 대통령의 대선 승리 후 두 사람은 다른 길을 걸었다. 조윤선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을 거쳐 여성부 장관, 청와대 정무수석, 문화체육부 장관으로 승승장구했다.

이상일은 당에 남았다. 대변인,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다, 20대 총선 때 용인정 지역 후보 경선에서 승리해 공천을 받고 출마했으나 공천파동 등의 여파로 낙선했다. 두 대변인의 명암이 엇갈린 데 대해 당 안팎에서는 “이상일이 쓴 소리를 많이 한 때문”, “선거 땐 표를 얻어야 한다는 절실함이 있으니까 쓴 소리도 들었겠지만 대통령 자리에 오른 뒤에는 본래의 마음이 발동한 것”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박 대통령은 2013년 2월25일 취임사에서 “깨끗하고 투명하고 유능한 정부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출범부터 순항을 하지 못했다. 야당의 강력한 반대로 정부조직개편 작업이 지연된 데다 총리와 장차관 인사에서의 실패가 잇따라 발생했기 때문이다. 큰 기대를 걸었던 국민들 사이에선 “저런 인사를 누가 추천했나”, “수첩인사를 한다고 하는데 인재 풀이 이렇게 빈약한가?”라는 등의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때 이상일 대변인은 여당 대변인으로선 이례적으로 청와대의 부실한 인사검증을 비판하는 논평을 몇 차례 발표하며 청와대의 각성, 책임자 문책을 요구했다.

당시 주요 언론은 ‘여당 대변인이 청와대를 비판한 건 매우 드문 일’이라며 상세히 보도했다. 한 일간지는 ‘연일 청와대 강공하는 이상일 대변인, 기자본색?’이란 제목으로 그를 분석했다. 이상일 전 의원은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워싱턴특파원, 정치부장, 논설위원 출신이다.

본지는 20일 이상일 전 의원을 만나 현 시국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 2012년 총선과 대선 등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3월 청와대를 비판하는 논평을 거듭해서 낸 계기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에서 51.6%를 얻어 당선됐지만 그를 찍지 않았던 국민들도 박 대통령이 잘해주길 바랬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는 첫걸음이 인사다. ‘인사가 만사’라고 항상 얘기했던 박 대통령이 인사의 뚜껑을 열자마자 각종 문제로 낙마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국민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여당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건 국민을 바라보고 정치하는 공당답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청와대의 각성을 촉구하는 논평을 몇 번 냈다. 더 이상의 실패사례가 나오지 않았으면 논평 한 번으로 끝냈을 텐데 실패가 줄을 이어 몇 번 더 낸 것이다. 맨 처음 비판했을 때 청와대에서 경고사인이 왔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청와대가 정말 잘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비판논평을 몇 차례 발표했는데 청와대로선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다.”

 

- 박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당한 사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참담한 마음 금할 수 없다. 국민들껜 참으로 송구스럽고 죄송하다. 입이 열 개, 백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박 대통령은 사심이 없는 분, 부정부패에서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분으로 생각했는데 우리가 봤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대통령의 면모가 이번에 드러나 큰 충격을 받았다.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로, 천막당사를 이끌던 시절인 2004년 회의에서 ‘모든 걸 투명하게 하면 잘못이 발붙일 데가 없다. 그게 대세이고, 시대정신이다’라고 강조한 적이 있다. 그랬던 그가 국정운영은 정반대로 한 것 아닌가. 국정의 많은 사안을 비밀에 부치고, 비선실세에 의존했으니 박 대통령의 사심 없음과 애국심에 큰 기대를 걸었던 국민들의 실망은 얼마나 컸겠나. 대통령의 국정실패에 대해 여당 전체가 공동책임을 느껴야 한다.”

 

- 박근혜 정부에 대해 쓴 소리를 한 것은 이미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인가?

“2014년 1월24일 전남일보에 쓴 ‘집권세력은 양심의 자기검열을 해야 한다’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때 국민을 향해 다가갔던 그 간절한 마음, 그 초심이 많이 무뎌진 것 같다는 생각에서 피타고라스가 제자들에게 강조했던 ‘양심의 자기검열’, 즉 성찰과 반성을 박 대통령과 여권 전체가 해야 한다는 취지의 칼럼을 썼다.

박 대통령이 선거 때 ‘100% 대한민국’이란 슬로건을 내세운 것은 당신을 지지하는 사람이나 반대하는 사람 모두와 함께 하겠다는 뜻에서였고, 사회 지역 계층 세대 갈등을 최대한 줄이고 국민을 대통합하는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각오의 표출이었다.

하지만 청와대에 입성한 뒤의 국정운영 방식은 국민에게 다가가기보다 ‘나를 따르라’는 식이었다. 또 인재를 골고루 기용해 대통합의 길을 열기보다는 특정지역 출신, 소수의 측근에게 권력을 맡기는 친위부대 중심의 통치방식을 선택해 국민적 에너지를 결집시킬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봉쇄했다.

이런 점이 안타까워서 선거 때의 초심을 상기시키는 칼럼을 썼다. 박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하면서 수시로 ‘양심의 자기검열’을 했다면 오늘날 국회에서 탄핵당하고 헌재의 파면 심판대에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 변호인단은 헌재에 보낸 탄핵소추 답변서에서 ‘대통령이 탄핵당할 사유도 없고, 관련 증거도 없다’고 했다. 그리고 ‘대통령은 최순실의 범죄를 인식하지 못했다’며 탄핵소추가 각하 또는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그건 헌재가 판단할 몫이다.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는 게 그래서 중요하다. 대통령은 그간 세 번에 걸친 사과와 담화에서 일관된 입장을 밝혔다. ‘최순실이란 사람을 잘못 관리한 데 대한 책임은 있지만 내가 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라는 것이다. 대통령이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에 대해 정치적, 도의적 책임은 지겠지만 법적으론 책임질 일이 없다고 주장해 온 것이다. 이것은 검찰 수사 내용과 완전히 상치되고, 관련 증인들의 증언과도 배치된다.

때문에 헌재가 명확하게 판단을 내려줘야 한다. 검찰 뿐 아니라 특검까지 수사하게 된 이 사태에서 대통령이 법적으로 책임질 게 없다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헌재가 탄핵심판을 통해 엄정하게 가려줘야 한다. 이번 사안에 대한 헌재의 판단은 앞으로 영원히 역사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고, 후임 국가 지도자의 국정운영에도 큰 교훈을 줄 것인 만큼 헌재가 어떤 결정을 하는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필요가 있다.”

 

- 박 대통령의 실패에서 지도자들은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가?

“박 대통령은 ‘투명하면 잘못이 발붙일 데가 없다’고 했지만 그 옳은 말을 행동으로 실천하진 못했다. 국정을 비밀주의로 운영하면서 비선실세가 끼어드는 것을 허용했고, 청와대 참모나 내각의 각료 등과 문제를 긴밀하게 논의하는 시스템을 가동하지 않았다. 최순실씨나 문고리 3인방보다 경험도 많고, 전문성도 높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데도, 이들과의 소통, 토론을 바탕으로 한 공적 국정운영 시스템을 제대로 가동하지 않았다. 야당은 물론 여당도 멀리 했으니 민심을 정확히 들을 기회도 대부분 차단해 버린 셈이다.

여당은 대통령이 결정해서 지시한 사항이나 국회에서 잘 이행하면 된다는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했으니 대통령에겐 창의적이고 좋은 아이디어들이 전달되지 못하고 사장되어 버렸다. 박 대통령의 리더십을 ‘만기친람형’, ‘깨알지시형’이라고 하지 않나. 대통령이 모든 걸 챙기고 지시하다보면 아랫사람들은 그걸 잘 받아 적고, 이행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이런 풍토에서 창조가 자랄 수 있겠는가. 결국 대통령의 불통이 문제인 것이다.

대통령이 들을 생각, 배울 생각은 하지 않고, 지시할 생각, 가르칠 생각만 하면 그를 보좌하는 사람들은 모두 수동적인 인간으로 바뀌어 버린다. 대통령의 이런 문제가 수차례 지적됐음에도 대통령은 바뀌지 않았다.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들과 장관들을 바라보며 ‘자꾸 대면보고를 받으라고 하는데 그런 것이 필요하다고 보세요?’라고 반문한 적이 있지 않은가. 본인의 문제를 본인이 모르기 때문에 그런 얘기를 한 것인데, 바로 그런 태도에서 비극은 싹이 트지 않았나 싶다.

무엇이든 비밀주의로 결정하고, 무슨 일이든 보안에 부쳐서 내용의 타당성은 제대로 검증하지 않는 대통령의 습관이 오늘의 국정농단 사태를 부른 것이다. 다음 지도자들은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공적 보좌 시스템도 활발히 가동하면서 청와대나 행정부 밖에 있는 이들과 수시로 접촉하면서 보다 많이 듣고 토론하고, 아이디어도 얻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처럼 소통을 활발하게 한다면 박 대통령처럼 참담한 상황을 맞이하지는 않을 것이다.”

 

- 2012년 총선, 대선 과정에선 박 대통령이 토론을 통해 의견을 듣는 경우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박 대통령이 그땐 중요한 사안에 대해 토론의 장을 직접 마련한 경우도 있었다. 본인이 대선에 내세울 슬로건을 정하기 위해 핵심 관계자 30여명과 오찬을 함께 하며 토론을 했다. 회의가 열렸을 때 당의 중진이자 그의 핵심 측근이 ‘기다려 온 대통령’을 슬로건으로 삼자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준비된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좋은 슬로건이라고 주장하면서다.

나는 즉각 반대발언을 했다. ‘너무 오만한 느낌을 주는 슬로건으로, 그걸 내세우면 지지후보를 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기 어렵다고 본다. 확장성에 보탬이 안 되는 슬로건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또 다른 핵심 측근 두 사람이 잇따라 ‘기다려 온 대통령’을 주장했다.

그때 나는 ‘아! 이 분들이 박근혜 후보와 짜고 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그 슬로건은 좋은 슬로건이 못된다고 계속 반박했다. ‘그 슬로건을 내세우면 언론이 매우 비판적으로 쓸 거다. 내가 기자 출신인데 이 예감은 결코 틀리지 않을 거다. 언론의 비판을 일제히 받으면 그 슬로건을 결국 못쓰게 될 것이고, 다른 슬로건을 찾아야 할 텐데 오늘 슬로건을 정하기보다 좀 더 시간을 생각을 해 보자’고 했다.

그랬더니 몇 분이 내 말에 동조해 주었고, 박근혜 후보도 동의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결정된 슬로건은 국민 각자의 꿈이 실현되는 세상을 만들자는 뜻의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였고, 당시 호평을 받았다.

이처럼 토론을 통해 집단지성을 구하면 큰 실수나 실패를 예방할 수 있다. 그런데 그때 ‘꽤 괜찮은데’라는 소리를 들었던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라는 슬로건도 지금은 놀림감이 되어 버렸다. 국민 각자의 꿈이 이뤄지는 게 아니라 ‘최순실 꿈이 이뤄지는 나라’가 되어 버린 것 아니냐는 비아냥을 듣게 됐으니 허망하기 짝이 없다.”

 

-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선출된 다음날인 2012년 8월 21일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이 있는 봉하마을로 내려가 참배했다. 그 아이디어를 내게 된 계기는?

“박 대통령이 대통령후보로 선출되기 열흘 전쯤 ‘후보의 첫날 일정을 어떻게 정해야 하느냐’를 놓고 회의를 했을 때 내가 이 아이디어를 냈다. ‘아침 일찍 서울 현충원을 찾아 현충탑에 분향하고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참배하자는 데엔 이의가 없을 걸로 본다. 문제는 그 이후의 행보인데 나는 후보가 봉하마을로 가서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도 참배하고 권양숙 여사에게 인사를 하는 일정을 소화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국민대통합 의지를 실천으로 보여주는 행보를 하자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랬더니 많은 분들이 ‘말이 안 돼’라고 했다. 나는 ‘말이 안 될 것 같은 것을 해야 국민 마음 속에 감동이 생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만 해서는 지지층을 넓히기 어렵다’고 했다. 그럼에도 반대가 많았으므로 회의를 한 번 더 열어서 논의를 하자고 했고, 이틀 뒤 회의에서 이 계획을 후보에게 건의하기로 결정했고, 후보는 그걸 채택했다.”

 

- 총선, 대선 과정에서 박 대통령에게 종종 쓴 소리를 했고, 그것 때문에 레이저 눈총을 받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던데.

“내 생각을 진솔하게 말씀드리다보니 가끔 그런 일이 있었다. 레이저 눈총은 그다지 의식하지 못했지만 전화를 통해 듣기 싫은 소리를 했을 땐 음성을 통해 그 분의 노기를 느낀 적이 있었다.”

 

- 어떤 경우였나.

“대통령에 대한 예의상 자세히 말씀드리긴 어렵다. 2012년 7월 국회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 벌어졌는데 그에 대한 대처방식을 둘러싸고 후보와 전화로 논쟁을 하다시피 했다. 나는 당의 책임성을 강조하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후보가 ‘이제 50분이 지났으니 그만하자’고 하더라. 그래서 전화통화를 50분이나 했다는 걸 깨달았고, 그 50분이란 말은 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그 말씀을 듣고 나는 ‘당과 후보를 위한 충정에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라고 말하고 끊었다.”

 

- 박근혜 대통령에게 직언한 사례를 하나 소개한다면.

“2012년 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과정에서 김문수 당시 경기지사가 박근혜 후보를 거칠게 공격했다. 지역 순회 유세과정에서 김 지사가 고약한 영상물을 틀었다. ‘독재자의 딸과 농부의 아들’이란 주제의 영상물이었는데 내용이 너무 공격적이었다. 당사자라면 그걸 보고 화내지 않을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박근혜 후보와 캠프 관계자들은 모두 화가 많이 났지만 첫날은 참았다.

그런데 다음 유세에서 김 지사는 또 그걸 틀었다. 유세 후 김 지사를 공격하는 브리핑을 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는데 나는 참아야 한다고 설득했다. ‘경선은 조금 지나면 끝나고 박 후보가 당의 대통령 후보로 공식 선출될 게 틀림없는데, 그때 가서는 김 지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 화가 나도 참는 게 좋겠다. 박 후보가 대범하고 의연한 모습을 보이면 김 지사도 그 영상물을 틀다 말 것으로 본다’고 했다. 김 지사는 문제의 영상물을 한번 정도 더 튼 다음 다른 영상물로 대체했던 걸로 기억한다.”

 

- 지금 개헌을 하자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개헌을 하기 위한 적기가 도래한 건 맞지만 개헌 실현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 차기 대통령에 가장 근접했다고 생각하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다수 의원들이 반대하기 때문이다. 이 분들이 대통령 선거보다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개헌은 이뤄질 수 있다. 개헌에 대한 연구는 많이 되어 있기 때문에 권력구조에 대해 정치권이 합의를 통해 선택만 한다면 개헌은 충분히 가능하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는 모든 대통령의 임기 말에 출현한 만큼 이건 사람의 문제이기보다 권력이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제도의 문제라고 봐야 한다. 문재인 전 대표는 ‘사람이 문제이지 헌법엔 죄가 없다’고 말하지만 여야의 다수 의원들, 정치인 다수의 생각은 ‘대통령 권력을 분산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국가와 국민이 피해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 전 대표가 현 체제를 계속 지키려고 한다면 그의 뜻대로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에 따른 대선이 치러지겠지만 선거 과정에서 문 전 대표는 ‘앙샹레짐(구체제)을 옹호하는 기득권 세력의 대표’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인은 다음 시대,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 문 전 대표가 정치꾼이 아닌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 새누리당에 앞으로 필요한 것은 무언가.

“새누리당 세력이 갈라지지 않고 반성과 성찰을 통해 근본적으로 쇄신할 수 있는 길을 이정현 대표 등 친박 지도부가 봉쇄해 버렸다. 새누리당은 이제 의미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한다.

떠날 사람은 떠날 것이고, 남을 사람은 남아서 당을 바꾸려고 하겠지만 리모델링 수준의 변신을 해봐야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이정현 대표 등이 일찌감치 물러났다면 비상대책위원회가 대국민사과와 함께 혁신작업에 매진했을 텐데 늦어도 너무 늦었다.

새누리당은 해체돼야 하고, 560억원 가량의 당의 모든 자산은 국가에 헌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완전한 무(無)에서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민 신뢰를 얻기 위해 정치하는 것이지, 돈을 보고 정치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

그러나 친박 핵심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새누리당이 해체의 길을 선택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러니 보수의 중심가치를 지키고, 중도와 진보의 목소리도 경청하는 열려 있는 중도우파 정당을 만드는 게 국가의 발전이나 정치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본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중도우파 세력들이 중심이 된 정치결사체가 출현한다면 이 나라의 안보와 경제, 미래를 걱정하는 국민들의 상당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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