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경제민주화...불독처럼 조용한 행정 아쉬워

자고로 세무조사나 세금추징, 금융기관 검사 등은 남모르게 조용히 하는 게 상책이다. 대외적으로 떠들어 가며 하게 되면 피검 기관이나 피감기관이 미리 손을 써 증거를 인멸하게 되고 나아가 사회적 불안을 조장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 정부들어 세무당국을 비롯한 일부 힘있는 기관이 ‘경제민주화’한답시고 행정편의나 전시행정 차원에서 무작정 “세금 낼 일 있으면 알아서 신고하라”는 식의 공문부터 보내거나 대외적으로 공포감을 주는 발언을 일삼아 기업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14일 서울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A사장은 최근 국세청으로부터 난데없는 안내장을 받고 가슴을 쓰러내려야 했다. ‘증여세 신고-납부에 대한 안내말씀’이라는 내용의 서류를 받아든 순간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걱정부터 앞섰다고 했다. 그러나 안내문 내용을 자세히 훑어보고 난 뒤에야 자신과 상관없는 공문이라는 걸 알고 안도했다고 한다.

그런데 A사장이 받아든 안내문 첫 장의 참고사항(수증자 신고안내용)이란 문구가 기막히다. “증여세-신고 납부 안내는 국세청에서 신고편의를 위해 관련 법인에서 제출한 법인세 신고서 등을 검토한 후 과세 요건을 갖춘 것으로 보아 안내문을 보내드린 것으로 실제 내용과 다를 수 있다”면서 “귀하께서 관련 법령에 따라 과세해당 여부를 면밀히 검토한 후 과세요건을 충족하지 아니한 경우 증여세를 신고할 필요가 없다”고 적혀 있었던 것이다. 아울러 이미 신고한 경우 본 안내문을 폐기해 달라는 요청도 함께 표기돼 있었다.

이와 관련, A사장은 국세청이 “대기업에서나 일어날 일을 갖고 중소기업에까지 서류를 보내는 등 많은 기업에 묻지마식으로 증여세 자진납세 요청 공문을 보낸 것 같다”며 “이는 행정편의의 전형이자 기업들을 겁먹게 하는 행위에 다름아니다”고 지적했다. 꼭 필요한 기업에 한해 필요한 서류를 보내 는 등의 세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게 A사장의 지적이다.

그런면에선 관세청도 비슷하다. 백운찬 관세청장은 최근 한 일간신문에 나와 “지하경제 양성화는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조세정의다”면서 “현재 관세청은 457명의 지하경제양성화 추진단을 앞세워 조세정의를 실천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물론 백 청장의 이같은 발언은 우선 관세청이 물리적 역량을 공개해가며 엄포를 놓을 경우 탈세나 밀수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아래 이뤄졌을 수 있다. 그러나 관세청 역시 조용한 행정을 통해 소리없이 경제정의를 실천하는 게 더 좋은 방법일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 뿐 아니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도 틈만 나면 경제민주화를 내세워 기업들 군기잡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 9일에도 “대기업에서 돌발 사고가 많이 나는 것은 독점에 따른 방심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면서 기업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한 전직 기획재정부 고위관료는 “힘있는 국가기관일수록 겸손하고 조용하게 그러나 원칙적으로 엄정하게 일처리를 할 필요가 있다”며 “따라서 힘있는 기관장들이 지나치게 대외적으로 엄포를 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고 일침을 가했다. '불독처럼 조용한 행정이 최고'라는는 게 이 전직관료의 충고인 셈이다.

 

국세청이 A사장 앞으로 보내온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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