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ve your logic at home"에 담긴 냉소에서 탈피해야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외국인 친구들에게 가끔 이런 얘기를 한다.

“너희는 한국에 올 때 논리를 집에 두고 오지 않았냐?”

대부분 이 말에 큰 공감을 한다. 사실 이것은 나도 다른 외국인에게 들은 얘기다. 그가 올 때, 앞서 한국에서 살아 본 친구에게서 “논리는 집에 두고 가는 게 좋다(Leave your logic at home)”는 조언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 사회와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해하려면, 논리보다 정서가 앞서는 한국 사회의 특징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정서의 논리 압도는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한국이 특히 심하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의 실생활 대화에서 ‘아주’와 ‘너무’, ‘다르다’와 ‘틀리다’가 자주 혼용되는 것은 논리보다 우선 감정을 불러일으키려는 행태의 한 단면일 것이다.

그런데 판단보다 감정이 앞서는 이런 사회는 가끔 경이로운 기적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불필요한 지출이 많은 단점을 갖고 있다. 그때그때 조금만 앞날을 따져서 미리 헤아리면 될 일을, 감정의 홍수에 파묻혀 내키는 대로 질러버리고 만다. 그리고 부작용이 발생하면 그걸 수습하러 많은 자원을 소모한다. 이런 부작용과 수습비용의 지출은 이미 다 예상한 사람들이다. 전 세계 모든 민족 가운데서도 특히 두뇌가 우수해서 절대 모를 리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똑같은 비효율을 반복한다. 알고도 그러는 것이다.
 

▲ 이른바 '진영논리'로 인해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이 마비되는 한국 사회에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전원책 변호사의 '썰전'은 그나마 차분한 대화가 오가는 프로그램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의 2016년은 ‘논리와 판단 없는 사회’가 초래한 지출의 대표적인 사례로 남게 될 것이다. 대통령 탄핵을 초래한 사건들 가운데 상당수는 사회 곳곳에 정상적인 판단이 작동했더라면 미리 막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탄핵이 되고 나니까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는 폭로는 왜 사전에 막지 못했을까. 막으려 했다면, 그는 몇 단계를 거쳐 ‘종북세력’으로 몰리는 것까지 각오해야 했던 것이다. 대통령을 수행한 외교 현장에서 있을 수 없는 추태로 쫓겨난 사람을 “종북 세력의 음해를 받았다”고 두둔하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사실 지금의 대통령은 정치사에서는 상당히 퇴행적인 인물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대통령급 정치인으로 성장해 당선이 되는 모든 과정에서 1960년대 ‘한강의 기적’에 대한 추억이 작용했다. 현실과 미래에 대한 냉정한 논리적 판단보다 과거의 기억이 가져오는 정서에 집착해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는 50대, 60대 몰표라는 기현상도 나타났다.

이런 퇴행정서가 너무 강해서, 심지어 그에게 투표하지 않은 사람 중에도 상당수는 그의 임기를 거쳐 갈 수밖에 없다고 여기기도 했다. 다른 사람을 뽑아 놓으면,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추억의 그 사람’ 생각하는 여론이 쏟아질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1987년 이후 사상 처음으로 과반수 득표를 한 대통령이 탄생했는데, 낙선자와의 격차는 2.6%포인트에 불과했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오차범위 이내 앞선 사람이지만, 정서로 따지면 과반수를 넘은 대통령이었다.

어떻든, 한국사에서 한 번은 거쳐 갈 수밖에 없는 인물이란 점에는 득표율 이상의 사람들이 공감을 했는데, 4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러서는 이 선택으로 지불해야 되는 비용이 당초 생각보다 훨씬 어마어마한 것이 뼈아프다.

논리보다 정서를 앞세운 행태는 정치뿐만 아니다.

한진해운이 가족의 경영권을 고집하다 해운사태를 초래한 것이나, 현대자동차가 10조원의 돈으로 삼성동 땅을 사들인 것,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등의 사례는 모두 이 사회의 합리적인 논리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삼성물산 합병으로 국민연금 이사장인 전직 장관이 구속된 것은 전대미문의 사태다. 국민연금의 무리한 도움 없이는 이 합병이 성사되기 어려웠던 것으로 지적된다. 합병에 반대하는 엘리엇의 목소리가 상당히 거셌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성과 같은 굴지의 글로벌 기업에서 저런 식의 합병이 엘리엇과 같은 반대세력을 불러들이리란 예상을 한 사람도 못했단 말인가. 믿기 힘든 얘기다. 그 많은 유능한 인재를 모았어도 논리적 판단이 ‘사주 중심의 정서’에 파묻힌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한국이 지난 2016년을 제대로 역사 속에 용해시키는 길은 논리부재 사회의 폐해를 뼈저리게 체감해 교훈을 얻는 것이다.

제 위치에서 옳은 판단으로 할 말 하는 사람의 위치를 절대적으로 보장해 주는 것이 첫째다. “바빠 죽겠는데 고상한 소리 좀 그만해”라는 태도를 한국사회는 고쳐야 한다. 미리 헤아릴 수 있을 때 손을 쓰는 것이 뒷날 수천수만 배의 낭비를 막아준다.

둘째는 행여 일시적으로 국기가 문란해져서 이런 사람이 불이익을 받았다면 그에 대한 보상과 배상을 철저히 하는 것이다.

전 국민이 기업 활동이 아니라 문화예술로만 먹고 사는 인구 수 만 명 이하의 국가라면 논리 없이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인구규모로나, 경제규모로 봤을 때 그러한 씨족국가가 아니다.

인류 보편의 기준을 무시해서는 더 이상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그런 경지에 든 지 오래다. 논리를 두고 와야 되는 나라가 아니라, 기본 논리는 보장돼야 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대한민국의 2017년은 ‘로지컬 코리아’의 원년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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