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 재벌 총수를 욕보이듯... 이 기회에 국민연금 손발을 묶자?

▲ 블룸버그의 12일 오후 톱 뉴스는 국민연금 기사였다. /사진=블룸버그 홈페이지 화면캡쳐.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지금부터 14년 전과 판박이다.

블룸버그는 12일 오후 초로의 남성이 죄수복을 입고 호송되는 사진과 관련 기사를 내보냈다. 문형표 국민연금 이사장이다. 보건복지부 장관도 지낸 사람이 수감자 차림을 한 모습이 전 세계 독자들에게 전달됐다. 블룸버그는 ‘세계3위 연금펀드가 스캔들에 강타 당했다’고 전하고 있다.

2003년 파이낸셜타임스에 최태원 SK 회장이 죄수복을 입고 호송되는 사진이 크게 실렸던 때와 흡사하다. 당시 SK글로벌의 분식회계에 대한 수사 결과 최 회장이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마치 ‘이 때가 기회’라는 듯 외신이 한국의 재벌총수를 최대한 욕보이는 것이라는 불만도 제기됐다. 파문은 재벌 총수에 대한 사법처리로만 끝나지 않았다.

이때부터 외국 투기펀드 소버린이 SK그룹의 경영권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경영권 공방은 2년여에 걸쳐 진행됐다.

14년이 지난 현재는 전직 장관이 죄수복을 입고 외신의 대문을 큼직하게 장식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 금융시장에서 국민연금의 손발을 묶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대단히 흡족하게 보고 있을만한 사진이다.

국민연금의 손발을 묶는다는 것 또한 한 쪽 편의 입장에서 하는 얘기다. 국민연금 자체의 관점에서는 이번 일이 새옹지마가 될 수 있다. 여기서 교훈을 제대로 받으면, 앞으로 투자 원칙에 어긋나는 정치권의 압력도 단호히 배격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상당수 금융전문가들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지난해로 모든 후폭풍을 다 해소하지 못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투자원칙을 저버린 것은 전 세계 투자자들을 배신한 것에 해당한다. ‘한국시장에서는 합리적 판단에 따른 투자 결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불신을 초래하면 피해는 해당 기업에만 그치지 않는다.

앞으로 한국의 재벌들이 순환출자로 인한 취약한 경영권에 도전을 받을 때, 국민연금이 전처럼 호위대 역할을 해주기는 매우 어렵게 됐다. 하지만 국민연금에 노후를 맡기고 있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고마운 교훈’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시련은 도약의 계기도 된다.

2003년 최태원 회장의 죄수복 사진은 소버린의 SK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지만, 이는 지배구조 개선 운동의 계기가 됐다.

코스피지수는 600선을 맴돌다 2006~2007년 상승기를 통해 오늘날의 2000선으로 도약했다. 이 기간 몇몇 재벌 총수들에게는 지극히 험난했던 지배구조 개선 운동이 한국 금융시장 전체에 대한 신뢰도를 높였다. 믿고 투자할 만한 시장이 됐다는 평가가 주가 2000으로 표현됐다.

외신을 통해 굴욕적인 모습을 노출한 국민연금이 합리적 투자 기능을 회복하고, 국내 재벌들은 시장을 배신하지 않는 자기 방어 장치를 개발한다면 그것이 이번 파문에서 얻는 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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