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최근 페이스북에서 많은 사람들이 ‘역사적 경험에 비춰 일본을 무시하면 안된다’는 내용의 기사를 공유하는 것을 봤다.

글을 쓴 기자는 예전에 나와 같은 출입처에서 취재한 적이 있는 사람이다. 당시 경쟁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그의 기사들은 상당한 취재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 글 역시 마찬가지다.

나 또한 예전에 일본사에 대해 진지하게 알아보고자 책을 한권 사본 적이 있다. 그런데 처음에는 황당한 책을 산 것으로 착각했었다. 주제넘게 일본사를 중국사 구도에 꿰맞춰 과장한 것 아니냐는 거부감이었다.

일본이란, 자체 문화도 없어서 중국 것을 한국 거쳐 주워 받듯이 가져가고 먹을 것이 부족하면 주변나라에서 해적질이나 하다가 운 좋게 서구문물을 빨리 받아들여 오늘날 선진국이 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마음을 고쳐 잡고, 차분하게 읽어가다 보니 나의 오랜 생각은 근거 없는 편견임을 깨닫게 됐다. 벌써 500년 전에 오늘날의 선물거래에 해당하는 문서가 남아있는 일본이다. ‘Gift’라는 뜻의 선물이 아니라 파생상품인 ‘Futures’에 해당하는 선물이다.

17세기의 쇼군은 ‘개 쇼군’이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개 같은 폭군’이 아니라 남달리 개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길에서 두 마리 개가 싸우면 다치지 않도록 물부터 끼얹어서 뜯어말리는 것을 법령화했을 정도라고 한다. 웃기는 사례 같으면서도 지금의 현대사회가 중시하는 동물 보호 개념까지 일본사에서 자체적으로 형성되고 있었다.

일본은 치열한 내부 경쟁과 함께 자기 완성도를 지향한 역사를 우리에 절대 뒤지지 않을 만큼 오래 갖고 있었던 것이다. 내부의 경쟁이 너무나 치열해, 우리 역사에서는 후삼국 시대 50년 정도에나 잠깐 엿 볼 수 있는 것을 수 백 년 간 지속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사회 곳곳을 치밀하게 관리하고 있는 일본인의 꼼꼼함은, 한국인들이 보기에 너무나도 부러운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일본인들의 그런 치밀함에 대해 ‘지구상에서 일본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라며 웃음거리로 여기는 경향을 보인다. 그 사람들은 ‘변태스럽게(?)’ 별 것에 다 장인정신을 가지고 덤벼드는 캐릭들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일본사를 더듬어 보면, 이 나라에서는 그런 노력이 없다면 생존 자체를 보장할 수 없는 치열한 삶이 지속돼 왔던 것이다. 이것이 아직은 어설프지만 내가 얻은 중간 결론이다.

그래서 앞서 소개한 사람의 일본 관련 글에 절대적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의 글이 본 내용과는 별개로 대중들 사이에서 약간 변질된 맥락으로 읽히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때가 때인 만큼, 일본에 관한 글이라 역시 위안부 문제, 특히 소녀상과 관련한 ‘용감한 소수의견’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글을 찾고 있던 사람들에게 좋은 빌미가 될 만한 문장이 한두 개 있기는 했다.
 

▲ 부산 일본 영사관을 바라보고 있는 위안부 소녀상. /사진=뉴시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 사람들이 일본을 우습게 여긴다면, 한국인들이 이웃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또 한편으로, 이것은 제대로 평가를 못 받는 일본사람들한테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병법에 허허실실이라고 해서, 어리석어 보이다가 기습을 해서 상대를 제압하는 전략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은 서로 잘 모르는 상대에게나 통하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처럼 360년 동안 두 번의 대규모 침략과 피침을 겪은 사이에서는 무엇을 숨기고 감출 여지도 없다. 자잘한 해적 침입이나 왜변 말고도 1592~1598년의 대규모 전쟁, 1895년 명성황후 시해부터 1945년까지의 국권 침탈로 한민족에 두 번이나 치명적인 범죄를 저지르고도 한국인들이 일본을 우습게 여긴다면, 일본인들 스스로도 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한국 사람들은 당대의 강자에 대해서는 아낌없는 존경을 표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최근 소녀상 문제를 냉정하게 얘기한다면, 외국 공관마다 찾아다니며 그 나라 범죄를 규탄하는 기념물을 조성하는 것이 우방국간의 합당한 예의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은 맥락이 있는 정치 사회 현상을 단면만 뚝 잘라 얘기하는 태도다. 전혀 문제 해결에 도움 될 것이 없는 자세다.

서울에만 있던 소녀상이 부산 일본영사관 옆에도 등장한 것은 2015년 말의 위안부 합의 때문이다.

아베 신조 총리의 일본 정부는 박근혜 정부와 합의만 하면 전쟁범죄를 그대로 덮어버릴 수 있을 것으로 본 모양이지만, 그들이 철석같이 믿었던 박 대통령은 그로부터 1년도 안 돼 탄핵이 되고 말았다.

인류사에도 한 장을 기록할만한 전쟁범죄를 특정 정권과 합의만 하면 덮을 수 있다는 판단의 몰상식 자체가 일본과 같은 큰 나라 정부의 판단으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인구로 세계 11위, 경제규모로 세계 3위 대국인 일본 정부가 1년도 못 버틸 상대 정부와 ‘밀실 합의’를 한 것이다. 언젠가는 탈이 나도 단단히 탈이 날 수 밖에 없는 건데 그 기간이 생각보다도 빨리 닥친 것 뿐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사람들의 시민의식이나 문명수준에 비춰 일본은 참 훌륭한 나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 훌륭한 나라가 바로 이웃나라 한국과의 관계는 단추가 대단히 잘못 채워져 있다.

일제의 한국 강점기 총독부 어용지 경성일보에 근무했던 도쿠토미 소호가 자신의 저서에서 쓴 글은 상당히 눈길을 끈다. 360년 전의 임진왜란, 그들 표현으로는 조선역에 관해서다.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면서 조선을 통치하는데 제일 곤란을 느끼는 것 중의 하나는 조선역의 기억이다. 거의 모든 조선인은 이것을 기억하고 있다. 조선의 모든 지방에는 조선역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석비나 액자, 묘지, 서적, 전설 등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이 기념물을 하나하나 인멸하려고 해도 도저히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다.”

1592년의 7년 전쟁 기억이 400년 가까이 지나서 이 정도다. 35년 강점기의 기억이 60년 지난 현재 시점에서는 어떨 것인가.

일본은 서구와 지리적 이점으로 먼저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도 했지만, 일본인들의 탐구적 태도가 이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급속도로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강대국이 됐다.

그러나 그렇게 얻은 힘으로 더 많은 기회가 넘쳐나는 바다로 뻗어나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거꾸로 지기(知己)가 돼야 할 한국, 그리고 중국에 일시적으로 우세한 힘을 행사하는 선택을 했다. 그렇게 해서 오늘날 얻은 것은 원한뿐이다. 이제 다시 길을 바꿔 바다로 나가려하기엔 너무나 뒤통수가 불안하게 됐다.

일본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서구 아닌 지역의 유일한 열강 국가로 끌어올린 사람들과 패전국이 돼서 전범재판을 받게 만든 사람들이다. 미세한 분야에서는 치밀함이 돋보이는 사람들이지만 큰 틀에서 공동체의 전략을 세울 때는 그다지 우리보다 앞서는 것 같지 않다.

최근 블룸버그가 각국 혁신 정도를 평가한 것을 보면, 상위 50개국에서 한국이 1위, 일본이 7위다. 연구개발비를 많이 쓰는 것이 이런 평가를 이끌었다.

그런데 두 나라가 똑같이 지지부진한 항목이 있다. 생산성이다. 한국이 32위, 일본은 28위다. 돈은 많이 쓰는데 다른 나라가 같은 돈을 썼을 때의 효과를 못 내는 것이다. 여전히 위에서 아래로만 내려가는 기업문화만큼은 두 나라가 ‘이웃사촌’이란 말이 실감 날 정도 아닐까.

한국과 일본 사회의 비슷하게 꽉 막힌 담론 구조가 이런 평가를 만들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랜 문화접촉을 통해 한국 사람들은 몇가지 중요한 점에서 일본 사람들이 자신들과 비슷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 아마 이 때문에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본을 우습게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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