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세월에 법원이 “고유한 상표성 인정” 했다는 건...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빙그레 ‘항아리 우유’는 참으로 옛날부터 생김새나 맛이 한결같다.

내가 이 우유를 매일 도시락으로 싸들고 다닌 적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니까 1975년이다. 42년 전인 그 때도 있었던 상품이란 얘기다. 노란 항아리 생김새와 바나나하고는 전혀 다르지만 아무튼 특유의 그 맛 그대로 오늘날까지 유지하고 있다.

우유를 싸가지고 학교를 갔다는 것은 점심 도시락으로 밥이 아니라 빵을 싸갔다는 얘기다.

특별히 빵을 좋아한 건 아니지만, 도시락으로 밥 대신 빵을 가져갈 때 좋은 점이 하나 있었다. 혼분식 검사에서 완전히 자유롭다는 점이다.

지금 40대 가운데 많은 사람들도 경험해 본 적이 없겠지만, 1970년대만 해도 한국은 쌀이 부족했다. ‘제발 쌀 소비를 늘리자’며 온갖 쌀 관련 제품도 만드는 지금의 모습은 당시로서는 “부족한 쌀을 낭비 한다”며 온갖 지탄을 받을 행위였다. 학교 벽에는 백미 쌀밥만 먹으면 늙어서 더욱 약해지고 야맹증 등으로 고생한다는 게시물이 큼직하게 붙어있었다.

점심시간이면, 당번들이 아이들의 도시락에 보리 등 잡곡을 30% 이상 섞은 밥을 가져왔는지 검사했다. 이럴 때 빵을 꺼내서 당번들이 그냥 통과할 때면 마치 우수학생으로 우대받는 기분도 좀 있었다.

그러나 검사면제라는 특권을 누리는 데는 상당한 댓가가 따랐다. 프라이팬에 버터하고 같이 구운 빵을 싸오는 건데, 하루도 아니고 매일같이 이걸 먹으니 물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젊은 시절, 회사에서 주는 식권으로 매일 순대국을 먹었다는 분이 나중에는 순대국 근처에도 안가다가 수 십 년 세월이 지나서야 모처럼 한 그릇 먹어보고 예전 생각을 했다는 얘기도 있다. 향긋한 순대국도 매일 먹으면 사람이 질리는 법인데, 버터 바른 빵을 저리 먹고 입맛이 멀쩡할 수가 없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무슨 까닭에서인지 이런 식생활을 최소 한 달은 한 것 같다. 그 때 빵과 함께 가져간 것이 바로 이 바나나 우유였다.

맛이나 생김새는 지금과 똑같지만 하나 다른 점이라면 당시 빙그레는 퍼모스트라는 상표를 쓰고 있었다.

빵을 싸가는 동안 내가 제대로 배운 점이 하나 있다. 밥과 김치가 얼마나 향기로운 음식이냐는 교훈이다. 다른 아이들이 그냥 김치, 총각김치 이런 거를 꺼내먹는 것을 바라볼 때 빵을 먹어야 하는 내 처지는 바늘방석에 앉아서 참선 수행하는 처지 같았다.

이런 ‘입맛 고행’의 기억과 함께 남아있기 때문에 한동안은 항아리 바나나 우유 근처에도 가지 않게 됐다. 그 한동안이라는 기간이 수 십 년이다. 앞서 소개한 순대국 아저씨 경험과 거의 비슷할 것이다.

정확히는 빵에 대해 질렸기 때문인데, 이 기억이 바나나 우유 맛에 대한 것도 결부돼 버렸다. 대학 들어와서 가끔 이 항아리 우유를 누가 먹을 때, ‘저걸 어떻게 저렇게 맛있게 먹을까’ 하면서 쳐다보기만 했다.

항아리 바나나 우유를 다시 먹은 건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 지원요원으로 군 복무할 때가 아닌가한다. 야외 작업에 동원돼 일을 하면서 간식으로 지급받았는데 허기진 상태에서 먹으니 예전 기억을 따지지 않게 됐다.

▲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 /사진=뉴시스.

지금은 주로 커피우유를 먹으면서도 “예전 항아리 맛!”하면서 가끔씩 사다먹기는 한다. 대부분 우유가 200ml 인데 항아리 바나나 우유 용량은 240 ml 인 점 역시 우유 애호가들이 이끌리는 면모다.

하지만, 이제 나이 들어 고지혈증 약을 매일 먹는 처지가 되다보니 먹고 싶은 대로 마음껏 우유를 먹기는 어렵게 됐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빙그레는 최근 타 회사의 제품이 이 ‘항아리 우유’를 모방했다고 해서 소송을 낸 재판에서 승소했다.

재판부는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는 외관 형태, 디자인 등이 독특하고 이를 1974년 출시 이래 일관되게 사용해 온 점, 지속적인 마케팅 활동을 통해 자사 제품 중 매출 비중이 가장 높은 점 등을 비추어 볼 때 상표의 주지·저명성을 획득했음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항아리 우유가 세상에 나온 다음해 내가 도시락으로 싸들고 다녔던 것이다. 한때는 “이 우유 초코우유보다 맛있네” 하면서 매일 먹다가 어린아이 입맛의 싫증으로 수 십 년을 멀리 했었다. 그러다가 옛 기억 찾아 간간이 ‘항아리 우유’를 다시 찾는 사람의 속마음과 그다지 다를 것이 없는 판결문이다.

특별히 이 회사에 대한 호불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 초등학교 시절 제품이 그 모습 그대로 오늘날에도 남아있는 ‘항아리 우유’다. 지금 아이들이 즐겨 먹는 식품들 중에는 나중에 이들이 장년에 접어들었을 때 얼마나 남아있을까.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맛과 안전성, 그리고 상품가치 면에서 성공한 식품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사족이라면, 그해 다시 밥을 싸들고 다니다가 교실바닥에 엎는 바람에 먹지도 못하고 바로 다음 야외수업 시간에 쫓겨 간 적이 있다. 다음날 교사로부터 수차례 왼쪽 뺨을 맞았다. 맞은 건 왼쪽인데 오른쪽 얼굴에 퍼렇게 멍이 들었다. 맞으면서 밀려 벽에 부딪힌 때문이다. 우리 자랄 때는 학교에서 혼나고 오면 집에서 더 맞았는데 이날만은 좀 분위기가 달랐다. 만약 그때도 빵과 항아리 우유를 싸들고 다녔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인가 한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