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은행권에서 우리은행이란 명칭이 다른 은행들의 불만을 초래해 한때 법적 시비를 가린 적이 있다. 이때 집권당의 명칭이 열린우리당인데 약칭을 우리당으로 쓰고 있었다. 만약 우리은행 명칭이 문제가 된다면 이는 정치권의 논란으로도 이어질 소지가 있었다.

우리은행이란 상호에 법적 문제는 없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논란은 거기서 끝났다. 그러나 은행 고객들 입장에서는 ‘우리 은행’과 ‘우리은행’을 명확히 구분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다소 늘었다.

정당은 은행처럼 서민생활과 밀접한 것은 아니어서 ‘우리당’이나 ‘우리 당’을 굳이 구분할 필요성이 절실하지는 않았다. 한국국민 가운데 절대다수가 당적을 가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로서는 열린우리당을 우리당으로 호칭하면 회의가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내부적으로는 열린당이나 열우당으로 불렀다.

문제는 일부 언론까지 우리당이라는 정식 약칭을 놔두고 열린당이나 열우당 등을 기사에 표기했다는 점이다. 이는 언론의 정도에서 벗어난 치졸한 행위다.

노무현 대통령의 우리당 집권시절, 정권에 가장 비판적인 모 일간지는 의외로 열린당이나 열우당이라는 표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초창기 일부 있었는지는 몰라도 내부적으로 편집방침을 확고히 적용한 듯, 나중에 우리당이 통합민주당(민주통합당에 앞선 또 하나의 당명이었다)으로 바뀔 때까지 당사자들이 원하지 않는 약칭을 절대 쓰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리당으로 표기한 건 아니다. 이 일간지는 철저하게 열린우리당 전체 명칭 표기로 일관했다. 이것이 당명 표기에 관한 언론의 정도다.

최근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약칭으로 ‘한국당’을 쓰려고 하는데, 이에 대해 “국정농단으로 대통령 탄핵까지 초래한 정당이 ‘한국당’이 웬 말이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선관위가 나서서 ‘한국당’이라는 약칭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히기까지 했는데, 약칭은 법보다 관행이 더 앞서는 영역이니 이것을 굳이 선관위까지 나선 점은 개탄스럽다.

어떻든 당사자가 ‘자유당’이나 ‘자한당’을 쓸 용의가 없는 마당이니 이렇게 기사에서 표기할 수는 없다. ‘한국당’이라는 명칭에 걸맞은 자격 여부를 떠나서라도 ‘한국의 정당’이란 의미와 혼동할 소지도 피하고 싶다면 이 때는 ‘자유한국당’ 전체 명칭을 다 쓰는 것만이 정답이다.
 

▲ 사진=뉴시스.


앞으로 이 당의 명칭이 언제 또 어떤 것으로 바뀔지는 모르는데 두 글자 더 쓴다고 해서 그다지 수고로울 것도 없다.

오히려 두 글자를 멋대로 줄이려다간 5공 시대 부끄러운 언론의 전철을 밟게 된다.

전두환 정권이 철권통치를 하고 있던 1985년 2월12일, 한국국민들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군부통치에 의미심장한 반격을 가했다.

재야와 시민사회는 ‘관제야당’으로 비판받던 민주한국당이 아니라 신생 야당 신한민주당에 표를 몰아줘, 일약 제1야당으로 부상시켰다.

신한민주당은 약칭으로 신민당을 정했는데, 이 약칭마저 5공 정권이 트집을 잡았다. 전두환 정권은 1981년 출범과 함께 이전의 모든 정당들이 구태정치를 했다는 이유로 당명을 쓰지 못하도록 했다. 신민당은 1970년대 한국의 제1야당이요, 지금의 민주당이 역사적 뿌리를 두고 있는 곳이다.

신민당 약칭 또한 이러한 법에 어긋나니 못 쓴다는 것이 정권의 논리였는데, 이런 주장을 공영방송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총선을 전후해 한동안 방송에서는 신민당을 놔두고 ‘신한당’이라는 멋대로 약칭을 썼다.

그러나 곧 이은 정계개편으로 민주한국당의 의원들이 대거 신민당으로 옮겨가 100석을 넘는 사상 최대 야당의 탄생으로 이어지자 방송에서도 ‘신한당’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이들도 ‘신민당’으로 따라 불렀다.

짧은 며칠이지만, 중견 언론인들이 뉴스방송에서 ‘신한당’이라는 어휘를 입에 올리는 모습은 궁색하고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이때도 굳이 ‘신민당’이 싫었다면 ‘신한민주당’이라고 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신민당은 이후 5공 정권을 무너뜨리고 1987년의 민주화를 이끌어내는 교량역할을 하게 된다. 이렇게 중요한 정당을 굳이 계속해서 두 글자씩 더 언급하는 건 상당한 성대노동이나 지면할애가 됐을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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