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로 대우부실 쓰나미 덮치자 전 정부 나서 결단력 있게 해결

부실징후기업이 속출하고 있는 지금 우리가 과거 구조조정史에서 본받을만한 사례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단연 잊지 못 할 성과가 있다면 그건 바로 대우그룹 구조조정 사례일 것이다. 재계 서열 4위 그룹을 공중분해 시킬 정도로 우리는 뛰어난 구조조정 능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0년대 후반, 당시 우리 정부는 대우그룹을 해체한뒤 주요 계열사를 모두 살려내는 기지를 발휘했다. 대우그룹은 무너져 없어졌어도 대우조선해양, 대우건설, 대우인터내셔널 등 주력 계열사들은 그 후 모두 살아남아 지금도 그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이는 거대부실그룹이 생겨나더라도 구조조정만 잘 하면 얼마든지 많은 회사를 건강하게 회생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당시 대우그룹 해체과정은 그야말로 치밀하고도 과감하게 진행됐다. 정부는 한편으론 대우부실로 인한 금융시장 혼란을 차단해 가면서 다른 한편으론 주요 계열사 처리에 신속하게 들어갔다.
 
2000년1월 제 2대 금융감독위원장에 오른 이용근 전 위원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금융감독위원장에 취임하자 대우그룹문제가 가장 큰 현안으로 떠올랐다고 회고한다. 500%가 훌쩍 넘는 부채비율도 문제였지만 대우발 부실이 우리나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를 시한폭탄과도 같은 존재로 떠올라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고 했다. 대우채 환매문제로 투신시장은 일촉즉발의 붕괴상황에 몰리고 있었고 대우 주요계열사들 또한 돈줄이 막히면서 벼랑끝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전위원장에 따르면 대우문제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아주 심각했다. 1995년 138개였던 계열사 수가 무려 1999년 4월엔 289개로 불과 4년만에 151개나 늘어나 있었다. 주요 계열사의 재무구조가 급속히 악화되자 자회사 수를 늘리는 수법으로 부실이 노출되지 않도록 해 왔던 것이다.
 
게다가 대우그룹이 회사수를 급격히 늘리면서 회사채 발행을 남발했던 게 더 큰 문제였다.이들 대우채가 대거 투신권에 흘러들어갔고 이들 채권의 만기가 속속 돌아오면서 투신권에선 대량환매사태가 예견되고 있었다. 대우 회사채 중 일부가 해외투자자들의 손에 넘어간 것도 큰 문제였다. 대우채 처리방안을 늦췄다간 가뜩이나 외환위기 이후 치명타를 입었던 한국의 대외신인도에 다시한번 큰 금이 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1999년 말이 되자 대우채 만기일이 속속 도래하고 있었고 이것이 2000년 초부터 투신권 대우채 대량 환매사태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예고된 악재는 이미 악재가 아니었다. 정부는 우선 증권유관기관들을 동원해 36조원에 이르는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토록 했다. 이어 은행 등 타 금융권엔 금리인상시도는 물론 투신권 환매를 부추기는 어떤 행위도 하지 말도록 강력 경고했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은 주효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장 분위기도 차분해졌다.
 
아울러 다른 한편에선 대우구조조정위원회를 만들어 ㈜대우와 대우자동차, 대우중공업, 그리고 대우전자 등 문제의 4개 핵심기업 정리에 적극 나서도록 했다. 이들 핵심 계열만 잘 정리하면 급한 불은 끌 수 있다는 게 당시 정부의 판단이었다.
 
그 결과 대우차와 대우전자 매각이 성사됐고 ㈜대우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에 올려 은행들로 하여금 자금 지원에 나서도록 했다.
 
대우그룹은 이렇게 하나하나 정리되어갔고 국내 시장에서도 드디어 대마불사(大馬不死)의 논리가 깨지는 대표 사례로 기록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와관련, 당시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은 “대우그룹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수시로 총리와 대통령에게도 이 사실을 보고해야 했다”고 전한다. 또한 “금융감독위원회만으론 힘이 부칠경우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에 협조요청을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거대부실기업 구조조정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지대한 관심아래 추진되었고 필요할 경우 범 경제부처가 함께 나서는 형태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이같은 대우 사례에서 봤듯이 최근 웅진그룹에 이어 STX 등 거대부실기업이 속속 쓰러지고 있는 상황에서 범정부가 나서 치밀한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우그룹 구조조정 사례를 조목조목 더듬어가며 과거 경험을 살리면 우리 앞에 놓인 그 어떤 부실기업도 처리하지 못할 게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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