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칼럼] 금융을 취재하다 정치도 맡게 돼서 국회에 처음 취재를 간 지금부터 13년 전의 하루, 한 정당의 대변인과 대판 언쟁을 벌인 적이 있다.

당시 내가 있던 매체를 적대적인 곳이라고 판단한 이 대변인은 노골적인 취재방해를 이어갔다. 후배여기자가 당 간부의 브리핑에 참석하기 위해 당사에 갔는데, 오찬 간담회였다. 기자들에게 점심밥 대접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는 거였다.

그런데 우리 후배의 명함을 받아본 대변인은 과연 경악을 금치 못하더니 대변인실 직원들을 동원해 오찬에 ‘갈 수 있는’ 기자들에게만 귀띔을 하면서 이들을 데리고 사라졌다고 한다.

편집국으로 돌아온 후배로부터 이런 사정을 전해 듣고, 우리는 모두 한바탕 폭소를 터뜨렸다. 이런 날은 기사가 공짜로 굴러들어오는 날이 된다. 국회의원 100명이 넘는 공당이 이렇게 적나라한 행태를 오로지 우리 매체에만 보여줬으니, 이걸 전하는 기사의 가독력은 맨날 하는 ‘오찬 간담회’에서 받아 적는 기사의 몇 배를 초월한다.

그 후로도, 한동안 대변인실 직원들은 우리 회사 기자를 비롯해 자신들이 싫어하는 기자들 앉아있는 자리는 건너뛰면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냥 기자실 입구에 놔두면 되는 것을 일일이 자리 주인을 식별하면서 돌리고 다녔다. 안주는 보도자료는 안 쓰면 그만인 것이니 이 당을 출입하는 우리 기자들한테는 아쉬울 것도 없었다.

다만 이른 아침 당대표실에서의 브리핑을 출입 통제하는 것은 상당히 취재장벽이 됐다. 앞서 소개한 여기자 또한 나름 근성이 있는 사람이었다.

몸집도 그리 큰 편이 아닌데, 매일같이 “오늘은 취재를 좀 해야겠다”며 들어오지 말라는 곳을 들어갔다가 팔을 붙잡혀 끌려나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수면 아래의 해결책’을 찾아갔다. 들어가려는 사람, 끌고 나오는 사람 간에 미운 정이 쌓이더니 마침내 이 후배만을 위한 별도 브리핑을 해주는 당직자들이 생겼다.

이 때, 나름대로 부당한 일을 해소하기 위해 돕던 사람들이 나중에 국회의원 뿐만 아니라 당의 최고위직을 차지했다. 당시에 대변인보다도 앞장 서 호들갑 떨던 사람들은 현재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들은 바가 없다.

정치부 오기 전 출입처에서 타사 선배들로부터 배운 것은, 부당한 취재방해는 내 회사 남의 회사를 가리지 말고 철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치권의 언론 행태는 상당히 분위기가 달랐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은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를 24일(미국시간) AP가 보여줬다.

이날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비공식 기자간담회를 자신의 집무실에서 가졌는데, 도널드 트럼프 정권과 껄끄러운 언론의 기자들을 제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짜뉴스’라며 비난하는 가운데 스파이서 대변인의 간담회에는 뉴욕타임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CNN, 폴리티코 등이 입장 불허됐다. 이들은 스파이서 대변인의 집무실에 들어서려다가 제지를 받았다.

반면, 보수성향의 워싱턴타임스, 원어메리카뉴스, 브레이트바트 등이 NBC, ABC, CBS, 로이터, 블룸버그 등과 함께 참석했다.

스파이서 대변인은 “풀 기자단에 의한 취재”라고 변명했지만, 백악관 풀기자단 구성 관행과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언동에 비춰볼 때 편파적인 언론 선택임이 분명하다.

참석이 허용됐던 AP는 취재단 제한이 이뤄진 사실을 알고, 간담회 참석을 거부했다. AP는 성명서를 통해 “AP는 대통령에 대해 대중은 최대의 접근가능성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CBS는 “간담회를 녹화해 바로 백악관 기자단과 공유했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블룸버그는 출입기자가 타 언론사의 취재 제한 사실을 모르고 참석했다고 밝혔다.

한국에서는 마음에 안 드는 언론에 대한 정치권의 취재제한이 절대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사실이 여러 차례 입증됐다.

가장 큰 이유는, 이런 식으로 생산되는 기사가 그다지 눈여겨 볼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제공하는 뉴스는 별 기삿거리가 못 되는데, 그걸 굳이 차단하면서 벌어지는 물의가 더 큰 뉴스가 된다.

또한, 정치에서 치명적인 ‘밑바탕 본심 드러내기’가 돼 상대 정파가 집요하게 약점을 공략하는 계기도 된다.

한국에서도 여러 번 입증된 실패 사례를 트럼프 정권이 반복하고 있는데 미국에서는 어떨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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