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 당선엔 적성국들이 불안, 트럼프에는 동맹국들이 불안

▲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사진=미국 연방정부, 위키백과.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공화당의 전임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과 자주 비교된다. 레이건과 트럼프 사이 공화당 대통령은 조지 H. 부시의 4년, 아들인 조지 W. 부시의 8년이 있다.

부시 가문을 건너뛰어 29년 전 퇴임한 레이건 시대와 트럼프 시대가 비슷하다고 하는 이유는 지출확대 경제정책에 있다. 트럼플레이션, 또는 트럼프노믹스가 레이거노믹스와 비슷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레이거노믹스가 초래한 강한 달러를 억제하기 위해 1985년 플라자호텔에서 주요국간 ‘플라자합의’가 이뤄졌다. 이 합의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이 호텔을 인수한 적이 있는데, 합의와 무관한 투자목적이었다.

그러나 방편적인 측면에서 비슷한 형태는 있어도, 근본적으로 트럼플레이션은 레이거노믹스와 같을 수가 없다.

이는 레이건 대통령 당시, 냉전의 최전선에 있었던 한국인들로서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다.

레이건 대통령이 당선된 1980년 미국이 처한 현실은 지금과 전혀 달랐다. 소련 블록의 팽창에 세계 곳곳에서 미국이 밀리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지미 카터 행정부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졌다.

1979년, 니카라과에서 산디니스타 혁명으로 우파 독재자 소모사가 축출됐다. 미국의 뒷마당으로 간주되던 중남미에 친소 국가가 추가됐다. 쿠바 하나를 제대로 상대 못하고 있었는데 새로운 적까지 등장한 것이다.

이란 혁명으로 팔레비의 왕정이 붕괴된 것은 이념대결이 아닌 종교 혁명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결과적으로 미국에는 엄청난 패배가 됐다. 강한 반미성향을 가진 이란의 회교정부는 관성적으로 소련 쪽으로 이끌릴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이란 시민들이 테헤란의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에 난입해 대사관 직원들을 444일간이나 인질로 억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는 미국 민주당의 지미 카터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한 결정적 요인이 됐다. 카터 대통령은 인질들을 구조하기 위해 특공대를 보낸 적도 있지만, 이들을 태운 헬기가 사막에서 폭풍으로 추락해 특공대원이 사망하고 대사관에는 접근도 못했다.

서방진영과 한국 일본 등 미국의 동맹국들은 전례 없는 소련권의 팽창에 전 세계 공산화를 두려워하는 상황이었다. 한국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피격 사망한 후, 전두환의 신군부는 이런 불안 심리에 편승해 정권을 장악했다.

곳곳에서 밀려나는 미국에 대한 실망감이 ‘강한 지도자’ 로널드 레이건을 탄생시켰다. 그가 당선된 직후 그토록 해결실마리가 보이지 않던 이란의 대사관 인질 사태가 바로 해결됐다.

레이건 취임 후, 미국은 중남미의 그레나다를 선제침공하고 재선된 후에는 리비아 폭격을 불사했다. 레이거노믹스의 지출확대는 단순히 일자리만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선제공격도 불사하는 미국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레이건의 호전적인 정책이 가능했던 것은 카터 시대 세계 곳곳에서 밀리는 미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염증이 컸기 때문이다.

트럼프를 당선시킨 지금의 미국인들은 36년 전 레이건을 당선시킨 사람들과 이 점에서 차이를 갖고 있다.

트럼프의 당선은 ‘지구 방위대장 미국’보다는 ‘안방주의’의 승리로 해석되고 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이탈, 즉 브렉시트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남 걱정 그만하고 나부터 잘 살고 보자’는 집단심리 발동이 오랜 미국의 우방 멕시코와의 사이에 장벽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그의 7개 회교국 국민들 입국금지 명령에 미국인들이 맞서는 모습을 보면서, 반미 공산주의 세력이 기승을 부린다고 불안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레이건의 경제정책에 논리적으로 맹점이 있어도 이것은 최강대국 미국의 위상을 다시 세우자는 명분으로 상쇄될 수 있었다. 8년 집권하면서 재정적자가 팽창하고 집 없는 노숙자가 늘었어도 부통령인 조지 H. 부시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킬 수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인들은 미국과 무관한 곳의 분쟁에서 이기는 것보다는 일자리를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그에 부응하는 공약으로 당선됐다. 그의 정책에 앞뒤가 안 맞는 요소가 있다면, 이를 덮어줄만한 경제외적 요소가 별로 없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한국인들에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겨준 사진은 1983년 한국 방문 때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10월 버마 순방 중 북한의 테러 공격을 받고 많은 수행원들이 순국한 직후다. 앞선 9월에는 대한항공 민항기가 소련 공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 격추돼 수 백 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모두 숨졌다.

남·북간, 미·소간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다. 비무장지대 철책 앞까지 가서 망원경을 들고 북한 쪽을 바라보는 레이건 대통령의 모습은 그가 어떤 대통령인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트럼프 대통령이 만약 한국을 방문했을 때,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모습을 취하더라도 레이건과 같은 이미지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레이건과 트럼프의 차이다.

레이건 당선 직후엔 적성국들이 불안해 했지만, 트럼프 당선 후에는 동맹국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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