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 엔비디아 등 다양한 반도체 기업 등장해 인텔의 독주 위협

▲ 지난해 4월에 열린 VR 익스피리언스 데이 /사진=뉴시스

 

[초이스경제 김완묵 기자]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모멘텀이 될 인공지능(AI)의 부상은 반도체 시장에서 새로운 다양성을 창조하면서 이 분야 최대 기업인 인텔에는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또 이런 변화가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는 어떤 시사점을 던져줄지 주목된다.

영국의 유력 경제 전문지인 이코노미스트는 28일자 분석 기사에서 엔비디아의 GPU를 비롯한 새로운 컴퓨팅 칩의 성공은 IT 환경에 있어 급속한 변화를 나타내 보이며 기존 기업들에 기회와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컴퓨터 반도체 업체인 엔비디아는 마이크로 프로세서와 관련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기업으로 최근 매출이 급성장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난 분기에 엔비디아의 매출은 22억 달러에 달했고, 주가는 지난 12개월 동안 거의 네 배 상승했다.

엔비디아가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PC를 고속의 게임기기로 전환해주는 그래픽 처리장치(GPU-Graphics Processing Units)라 불리는 칩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GPU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발생시키는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를 한 번에 소화하는 유력한 처리장치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이같이 GPU 매출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IT 산업의 장기적인 변화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조짐이라는 분석이다.

반도체의 데이터 저장 능력이 2년 주기로 2배로 증가한다는 인텔의 창업자 무어의 법칙이 깨지고, 클라우드 컴퓨팅과 인공지능이 급부상하면서 컴퓨터 시스템의 구성이 무너지자 인텔의 주도권도 영향을 받고 있다는 지적도 곁들였다.

그동안은 PC나 서버에서 중앙처리장치(CPU-Central Processing Unit)를 통해 모든 종류의 전산작업을 할 수 있었다. 특히 인텔은 PC 프로세서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서버 시장을 독점에 가깝게 지배해왔다. 이 같은 독과점 체제로 2016년에 인텔의 매출은 600억 달러에 육박했다.

하지만 인텔이 독주하는 세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훨씬 더 많은 전력을 소모하는 머신러닝(machine learning)과 다른 인공지능 응용 프로그램들이 나타나 더 많은 데이터를 더 빠르게 처리할 필요성이 생기면서다.

이에 인텔의 고객사인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등은 인텔이 아닌 다른 기업이 개발한 전문적인 프로세서를 선택하고 있고, 자체적으로 부팅을 하는 방법을 고안해 내고 있다.

엔비디아의 GPU는 여기에 해당하는 한 가지 사례인데, 엔비디아의 GPU는 쌍방향의 동영상 게임이 필요로 하는 거대하고 복잡한 계산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GPU에는 수백 개의 전문적인 ‘코어’(프로세서의 두뇌에 해당)가 들어가 있는데, CPU에는 몇 개 안 되는 강력한 코어만 들어가 있기 때문에 전산작업을 연달아 할 수가 없다.

실제로 엔비디아의 최신 프로세서에는 3584개의 코어가 들어가 있는 데 반해 인텔의 서버용 CPU에는 최대 28개의 코어가 들어가 있다.

엔비디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거의 문을 닫을 뻔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기회가 됐다. 당시 헤지펀드와 연구기관들이 금융위기 파고를 넘기 위해 복잡한 투자 및 환경 모델을 제시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에 엔비디아의 칩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금융기관들은 CUDA라고 불리는 코딩 언어를 개발했는데, CUDA는 고객사의 프로그램과 프로세서가 동시에 다른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 게다가 클라우드 컴퓨팅과 빅 데이터, 그리고 인공지능이 각광을 받으면서 엔비디아의 칩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대규모 온라인 기업들이 제공하는 인공지능 서비스가 의료 영상에서 인간의 언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의 데이터를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 엔비디아의 GPU를 활용하고 있다.

여기서 GPU는 전문 프로세서로 알려진 일종의 ‘가속장치’라고 할 수 있다. 가속장치는 클라우드 컴퓨팅 기업들이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칩을 짜 맞추면서 그 사용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주문형 반도체인 ASIC(Application Specific Integrated Circuits)도 가속장치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다. 수십 개의 스타트업 회사들이 이미 내장된 인공지능 알고리즘과 더불어 이를 운용하는 ASIC 칩을 개발하고 있다. 구글 역시 'TPU(Tensor Processing Unit)'라고 불리는 언어인식용 ASIC를 개발하고 있다.

요즘에는 FPGA(Field Programmable Gate Arrays)라는 프로그램이 가능한 비메모리 반도체가 뜨고 있다. FPGA는 프로그램이 가능한데, 이는 유연성이 확대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다루기가 까다롭긴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FPGA를 활용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인텔은 ASIC나 FPGA를 개발하는 대신 훨씬 더 강력한 CPU 프로세서를 개발하는 데 집중해 왔다. 하지만 가속장치가 빠르게 부상하고 있는 것은 인텔에 악재인 것으로 보인다. 가속장치를 기반으로 한 전산작업이 늘어날수록 CPU를 기반으로 한 전산작업은 줄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인텔은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인수합병(M&A)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2015년에 인텔은 FPGA 제조회사인 알테라를 어마어마한 액수인 167억 달러에 인수했다. 또 그해 8월에는 3년 된 스타트업 회사이자 소프트웨어에서 칩에 이르기까지 전문적인 인공지능 시스템을 개발하는 너바나(Nervana)를 4억 달러에 인수했다. 인텔은 전문 프로세서를 위협이 아닌 기회로 보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인텔의 데이터센터 부문장인 다이안 브라이언트는 “새로운 전산 작업은 종종 처음에는 전문 프로세서에서 처리가 되고, 나중에는 CPU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암호화 작업은 과거에는 분리된 칩에서 이뤄지곤 했지만, 현재는 인텔의 CPU에서 간단한 지시를 받고 이뤄진다. 인공지능과 같이 새로운 유형의 작업량을 가속장치에서 계속 처리한다는 것은 초과 비용이 들고, 작업이 더욱 복잡해질 수도 있다.

그러한 통합에 대비해 인텔은 주변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인텔은 엔비디아와 맞붙기 위해 올여름에 새로운 프로세서를 판매할 계획을 갖고 있다. 또 인텔은 어느 시점에는 자사가 개발한 CPU와 알테라의 FPGA가 결합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경쟁자들은 그러한 미래를 다르게 바라보고 있다. 엔비디아는 이미 자체적인 컴퓨팅 플랫폼을 만들었다고 보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엔비디아의 칩을 기반으로 인공지능 응용 프로그램이 돌아가도록 하고 있고, 엔비디아는 또 다른 영역인 시각화와 가상현실(VR)을 가능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위한 소프트웨어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컴퓨터 대기업인 IBM 또한 인텔을 더욱 어렵게 만들려 하고 있다. IBM은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를 모방해 2013년에 '파워(Power)'라고 불리는 프로세서 구조를 개방했고, 이를 통해 파워는 칩 플랫폼 개발의 기본이 되었다. 전문적인 칩을 만드는 기업들은 개발한 칩을 파워 CPU와 더욱 쉽게 결합할 수 있게 됐다.

시장 연구기관인 IDC에 따르면, 이 같은 대결구조가 상당 부분 인공지능의 개발 방식에 달려 있을 것이라고 한다.

즉 인공지능이 불과 몇 년 만에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혁명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다면, 인텔에는 좋은 기회일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계속해서 10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 파문을 일으킨다면, 다른 종류의 프로세서가 확고하게 자리를 잡을 가능성이 더 높아지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인공지능 기술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적용될 것인지를 감안해 본다면, 후자가 현실로 나타나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예상했다.

[기사 정리=초이스경제 김완묵 기자/ 기사 도움말=골든브릿지증권 이동수 매크로 전략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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