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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도 쫓아낸 인현왕후의 개들
장경순 기자  |  sixyello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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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17  16: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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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경제 장경순 만필] 18세기의 고전 문학작품 ‘인현왕후전’은 정치적으로는 아주 저급하고 비열한 프로파간다의 색채가 농후하다.

왕후에서 5년간 폐위됐던 인현왕후의 애절한 생애를 전한다고는 하는데, 본심은 정치판에 있는 것인지 서인의 반대세력인 남인들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비방을 곳곳에 섞어놓고 있다. 훗날 노론-벽파 등으로 끊임없이 분화되는 서인 강경세력이 궁녀라는 익명으로 글놀림을 한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이 글은 한국문학사에 있어서만큼은 너무나 많은 공헌을 하고 있는 귀중한 작품이다. 정치놀음을 배제한 인현왕후의 고난 가득한 일대기는 너무나 생생히 묘사돼있다. 물론 이것이 정말로 인현왕후를 모셨던 궁인의 기록이냐는 점은 의심안할 수 없다. 글 중에 영종대왕(영조)이란 묘호까지 등장하는 것은, 이 글을 인현왕후 사후 최소 75년이 지나 썼다는 얘기다.

그래도 글의 묘사가 너무나 훌륭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개와 관련된 부분이다.

인현왕후가 장희빈에게 왕후의 자리를 빼앗기고 안국동 친정에 돌아왔다. 통곡하며 왕후를 맞은 부부인, 즉 어머니의 위로마저 “죄인의 몸이라” 뿌리치고 내보내 그날로 집의 내외문을 모두 봉했다.

이때가 1689년이다. 인현왕후로서는 207년 전, 연산군의 생모 폐비윤씨의 운명을 생각안할 수 없는 위태위태한 처지였다. 조금이라도 불온한 기색을 보인다면, 어느 날 갑자기 대문을 박차고 금부도사의 사약이 들이닥칠 수 있는 날들이었다.

색깔 있는 옷과 몸단장을 멀리함은 물론이요, 큼직한 저택의 마당과 뜰을 전혀 정돈하지 않아 집은 잡풀에 뒤덮이고 말았다. 인적도 없는 집이니 밤이 되면 귀신이 나올 법도 해서 ‘날이 저물면 이매망량과 허다잡물이 사람 다니듯’ 했다.

어느 날 난데없는 개 한 마리가 들어왔는데, 생김새가 매우 추했다. 가뜩이나 우울한 집안에 못생긴 개까지 들어오니 왕후를 모시는 궁인들이 쫓아냈지만 개는 쫓겨나면 또 들어오기를 거듭했다.

마침내 왕후가 나와 보고 “그 개 출처 없이 들어와 쫓아도 가지 않아 기이한지라 버려두라”고 했다.

궁인들이 개를 거두어 밥을 먹였더니 십 여일 후 새끼를 세 마리를 낳았다. 네 식구 견공은 밤이 되어 도깨비 자취만 나타났다하면 온 가족이 힘을 합쳐 짖어대니 망량들이 감히 왕후를 범하지 못했다.

인현왕후전은 이에 대해 ‘대개 무지한 짐승도 도움이 있거늘 하물며 신민이냐. 후(后) 폐출하신 후로 조정에 기뻐하는 소인이 많으니 도리어 금수만 못 하더라’고 논평했다.

하루 앞의 운명을 가늠할 수 없는 속에서도 오갈 곳 없는 생명을 맞아들인 덕택에 밤중에 괴기한 기운을 물리쳤다는 건, 인현왕후와 그를 모시는 사람들이 개 기르는 정성으로 시름을 덜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런 세월을 5년을 보내고 인현왕후는 다시 왕후로 복위돼 대궐로 돌아갔다. 하지만, 유폐된 세월 속 심신을 혹사시킨 그는 복위한지 6년 만에 서른다섯의 젊은 나이로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어떻든 잡초 가득한 마당을 다시 헤치고 무수한 궁인들의 영접을 받으며 대궐로 돌아가 전에 못받았던 남편 임금의 자애를 받게 된 순간의 감격은 5년의 거친 세월에 대한 일말의 보상이었다. 200년 전, 금삼 자락에 피 묻은 사연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폐비 윤씨와는 다른 방법으로 친정집을 다시 떠날 수 있었다.
 

   
▲ 청와대 진돗개 5마리가 지난 2015년 태어난 직후의 모습. /사진=뉴시스.


한 때, 청와대의 인기스타였던 진돗개 9마리가 갑자기 집 잃은 신세가 됐다. 원래 떠돌던 개를 맞아들여 험한 고난의 세월을 이겨나갔던 인현왕후다.

있던 집이 사라진 진돗개는 지금 인현왕후의 개보다 더 딱한 처지가 됐다. 누구든 갈 곳을 잃은 개들을 맞아들여준다면 이 또한 고난을 함께 이겨나갈 복덩이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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