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의 '표창장 시비', 상식에 맞는 것인가

[초이스경제 장경순 칼럼]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1974년 하야하고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승계한 기간 한국의 판문점에서 북한의 도발은 더욱 거세졌다. 특히 1976년의 참혹한 도발은 한반도를 엄청난 전쟁위기로 몰아넣었다.

판문점 공동구역에서 가지치기 작업을 하는 일꾼들을 보호하던 UN군을 북한군이 습격해 도끼로 두 명을 살해하고 여러 명에게 부상을 입혔던 것이다. 북한의 의도는 그 해 실시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한 지미 카터 민주당 후보의 당선을 위한 것으로 풀이됐다. 한반도에서 불안한 사태가 발생하면 미국 내에서 주한미군 철수 여론이 높아질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로 전개됐다. 선거에서 열세를 면치 못했던 포드 대통령이 이 사태를 계기로 카터 후보의 주한미군 철수 공약에 대해 맹렬한 공격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해 7월만 해도 포드 대통령은 여론조사에서 29% 대 62%로 절대 열세에 몰려 있었다. 그러나 8월에 벌어진 이 사태를 계기로 맹렬한 반격에 나섰다. 지지율은 8월 36% 대 51%, 9월 40% 대 51%, 10월 45% 대 47%로 좁혀졌다. 선거에서는 카터 후보가 당선되긴 했지만 싱겁게 끝날 듯 했던 선거는 막판 엄청난 판세 급변을 거쳤던 것이다.
 

▲ 제럴드 포드 전 미국 대통령. 그는 1976년 대통령 선거에서 지미 카터 민주당 후보에게 일방적으로 열세에 몰려 있었다. 그러나 그해 8월 판문점에서 북한군이 미군을 살해한 사건을 계기로 막판 맹렬한 추격전을 펼쳤다. /사진=미국 백악관 홈페이지.


미군이 살해됐다는 소식은 주한미군 철수 여론을 확산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미국인들의 분노를 초래했다. 포드 대통령은 미국 특유의 방식으로 항공모함을 파견하는 등 군사 보복 위협을 높여갔다. 주한미군 또한 언제든 즉시 지상전을 벌일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기자는 비록 어린 나이지만 매일 뉴스를 통해서 북한군이 개성 이남으로 배치됐다는 등의 소식을 들었다. TV와 라디오에서 긴급뉴스, 속보 등 많은 소식을 쏟아내는 것을 들으려 한 것이 아닌데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쟁이 임박한 듯한 무시무시한 나날을 경험했다.

한없이 고조되던 긴장이 고비를 넘은 것은 북한이 사과문을 전달하면서다. 즉각적인 전쟁위협은 가라앉았지만 극도로 경색된 한반도 분위기는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전쟁위험은 피했지만, 주한미군은 사태의 발단이 된 미루나무 절단 작전으로 위력을 과시했다. 중무장한 미군 병사들이 총이 아닌 도끼를 들고 미루나무를 향해 구보해가는 사진이 당시 일간지에 실렸다.

이 미루나무 절단 작전이 이번에 한국의 주요 뉴스에서 다시 거론됐다. 더불어민주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자신의 공수부대 복무 시절 사진을 공개하면서 관련 작전에 참여했던 사실을 공개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데서 소동이 벌어졌다. 문 후보가 열심히 군 복무를 해 여단장 표창도 받았는데 당시 여단장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던 것이다.

당내 일부에서는 어떻게 광주항쟁의 주범인 사람으로부터 표창 받은 사실을 자랑하냐는 비판을 가하고 있다.

문 후보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이러한 비판에 대해 상당수 군필자들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특히 “표창을 즉각 버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군복무 경력이 어떻길래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따지고 있다. 문 후보가 보여준 몇 가지 진보편향적 행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하는 것과는 별개 문제다.

한국에서 1980년 신군부의 등장이 광주의 비극을 초래했지만, 이것은 4년 전의 사람들이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미래의 일이었다.

이때의 현실은 한반도 해역에 미국 항공모함이 들어오고, 주한미군은 언제든 휴전선을 뚫고 북진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고 북한군 역시 이에 맞서 남진하던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이런 시기에 군복무를 해본 사람들은 하루하루 더욱 고된 근무를 하고 심지어 전역일정까지 늦춰지기도 했다는 경험을 자주 얘기한다.

사람마다 모두 공수부대 해병대와 같은 최정예 부대에서 근무한 것은 아니지만, 공통점은 있다. 누구든 자기 나름대로는 하루하루 군 생활 힘들지 않게 보낸 사람은 없다는 점이다.

힘든 것을 겪어 봤기 때문에, 나보다 더 험난한 군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자발적인 존경심을 갖게 된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군필 국민들이 공유하는 ‘군심’이다.

한 개인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반란수괴라는 법의 심판을 받은 것이 분명하지만, 1976년의 공수여단장은 특히 살벌한 정세에 빠져 있던 대한민국을 지키던 장군 가운데 한 명이다. 그 사람의 이름 석자가 무엇이든 간에 이는 변치 않는 사실이다.

심지어 생명까지 국가에 맡기는 심정으로 군복무를 해서 받은 표창을 “버리라”고 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든 참 이해가 안가는 말이다. 이 표창을 받은 후보의 언동에 대해 절대 공감하기 힘든 것들이 여럿 있지만, 남달리 고된 군 생활을 하면서 받은 표창 자랑도 하지 말라는 얘기는 일반의 정서와는 참으로 동떨어진 것이다.

특전부대 표창이 이럴 정도면, 전 전 대통령 재임 7년 동안 수여된 모든 공무원 훈포장 또한 취소되어야 한단 말인가. 

국민의 상식 수준에서 아무 문제도 아닌 건데, 아무데나 자기 존재를 과시하려는 사람들이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것 아닌가. 그것이 이 소동에서 의심스러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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