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칼럼] 영화 ‘대부2’는 속편이면서도 보기 드물게 전편의 명성에 걸맞게 성공한 작품이다.

하지만 팬들은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커다란 아쉬움 하나를 갖고 있었다. 전편에서 꼴레오네 가문의 맏아들이자, 마이클(알 파치노)의 형 산티노로 열연했던 제임스 칸을 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대부2의 마지막 장면은 내내 속편을 지켜보고 있던 팬들의 아쉬움을 달래주고 있다. 시간이 전편으로 거슬러 올라가 산티노 큰 형의 ‘열폭’하는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지랄 맞은’ 성격의 산티노는 “내 동생들은 아무도 못 건드린다. 오직 나만 때린다”는 사람이다. 한국인들의 정서에 담겨있는 ‘큰 언니’의 모습과도 흡사하다.
 

▲ 영화 '대부2'의 마지막 전편을 회상하는 장면. 마이클(맨 오른쪽. 알 파치노 연기)이 미군에 자원입대했다고 하자 큰 형인 산티노(가운데. 제임스 칸 연기)가 화를 내고 있다. 테시오(산티노와 마이클 사이. 에이브 비고다 연기)와 패밀리의 사무장 톰(왼쪽. 로버트 듀발 연기)이 말리고 있다. /사진='대부2' DVD.


이 장면은 형제간 살육이 난무하는 2편과 달리 우애 가득했던 전편의 시절이다.

일본이 진주만 기습을 감행한 날, 미국 젊은이들이 앞다퉈 자원입대하는 것을 산티노는 “남의 나라를 위해 싸우려고 한다”며 냉소하고 있다. 산티노는 자신의 조국을 이탈리아로 여기고 있다.

마이클이 이에 반박하자, 큰형은 “그럼 너도 대학 그만두고 입대해”라고 대꾸한다.

마이클로부터 “오늘 입대원서 냈어”라는 말을 듣자 잠시 어안이 벙벙해져 있다가 저렇게 폭발하고 말았다.

아버지와 자신이 동생들과 가족들에게 평온한 삶을 주기 위해서 살벌한 마피아 패밀리 사업을 하고 있는데, 공부만 할 줄 하는 대학생 동생이 전쟁터를 자원하다니 산티노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장면에는, 대부 인물들의 성격차이와 함께 당시 이민 2세대의 변하는 모습도 담고 있다. 영화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다민족 사회가 안고 있는 이슈 또한 보여주고 있다.

상당수 미국인이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일본의 혈통을 갖고 있는 미국인데 어떻게 이들 국가를 상대로 한 전쟁에 나설 수 있었냐는 질문이다.

미국은 실제로, 전쟁기간 일본계 국민들에 대해서는 상당히 가혹한 수용조치를 실시해 ‘암흑의 역사’를 남겼다.

어떻든, 이런 가문의 청년들 또한 전선에 투입돼, 다른 혈통의 병사들과 전혀 다를 바 없이 미국과 연합군의 승리를 위해 싸웠다.

다양한 혈통을 애국심 하나로 통합시킨 근본의 힘은 밥 딜런의 노래제목 “신은 우리들의 편(with God on Our Side)”에 담겨 있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18세기 독립전쟁과 19세기 남북전쟁에서 미국은 항상 신의 정의를 인간에게 펼친다는 명분으로 싸워 승리했다. 이것이 20세기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세계는 미국과 중국이 최대 강국의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남중국해에서는 미국 해군함정을 중국 해군이 포위하는 일도 벌어졌다. 양국 해군들은 덕담이나 안부의 교신을 주고받았지만 우호적 대화만 오갔다고 해서 양국 해군이 대치한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만약 이 때 미군 함정에 중국계 2세나 3세 장병이 타고 있었다면 그는 어떤 입장일까.

하지만 이런 질문은 절대다수의 미국인들에게는 실없는 것이다. 이제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대부 산티노와 마이클과 같은 조국 논쟁은 찾아볼 수도 없다. 영화 속 마이클의 사고방식은 이미 당시에 점점 늘어나는 이민 2세, 3세의 성향을 대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보편의 정의를 실현하는 면에서 미국은 가장 신의 편에 가까운 나라인 것이고, 이런 나라는 조상의 국적을 떠나서 지킬 가치가 충분하다. 미국은 이런 신념으로 인해 지켜지는 나라다.

그래서 최근 미국에서 벌어지는 몇 가지 인종과 관련한 소동이 예사롭지 않다.

에어비앤비의 한국계 미국인 예약 취소나 유나이티드 항공의 예약 승객 축출은 모두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피해자다. 단순 해프닝 몇 차례지만, 그 내막에는 이 사람들을 만만하게 보는 정서가 담긴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현재 인터넷이나 유투브에는 이런 알려진 사건들 말고도 다른 많은 차별 사례를 담은 모습들이 떠돌고 있다.

미국 내에서 비교적 말썽이 적은 가운데 학업이나 일에 열중하는 아시아계인데, 최근의 배타적 차별주의에 가장 먼저 피해를 당하는 모습이다.

‘신의 편’에 서서 강해진 나라인데 신의 정의를 저버리고 강한 나라를 유지할 수는 없다. 내 나라가 정의롭지 못하다면, 아버지 나라와 할아버지 나라에 새삼 눈길이 돌아가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다만 하나 감안을 한다면, 미국은 사상 처음으로 흑인 대통령의 치세 8년을 지냈다. 중요한 진보의 이정표를 또 하나 세운 과정에서 이에 대한 반동 역풍도 형성된 모양이다. 작용과 반작용 속에 점점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의 현상일 뿐이라면, 이 또한 시간과 함께 사라질 소동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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