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한반도 정세를 논할 때, 러시아는 한동안 사라진 존재였다. 중요한 일이 터질 때마다 제3자의 논평을 내는 역할만 맡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최근 미국의 북한에 대한 강력한 경고와 중국의 호응, 북한의 4.15 열병식과 미사일 발사, 그리고 미국 항공모함 칼빈슨 호의 소재를 둘러싼 논란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이 모든 움직임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 러시아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러시아는 아무 것도 안 보여준 것이 아니라 엄청난 것을 보여줬는데, 아는 사람만이 이를 알아본다는 것이다.

러시아 국영언론인 스푸트니크 뉴스는 19일 한글판 기사의 톱뉴스에서 북한이 지난 15일 열병식에서 “중요한 프로그램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고 보도했다.

일부 국내와 서방언론이 열병식에서 이탈한 전차 등을 사례로 해프닝 위주의 보도를 한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이다.

스푸트니크는 “북한이 새로 선보인 미사일 발사대 중 하나는 중국의 DF-31 고체연료 대륙간 탄도미사일과 매우 유사하며, 또 하나는 러시아 RT-2 토플 이동식 대륙간 탄도미사일과 매우 흡사하다”고 전했다.
 

▲ 북한의 지난 15일 열병식에 등장한 미사일 발사대. /사진=뉴시스, 조선중앙TV 캡쳐.


동아시아 시사전문가인 방세현 시사정책연구소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토플식 미사일이라면 이는 매우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세현 소장은 “현존 전략무기의 최정점에 있는 것이 러시아의 토플 미사일”이라며 “이와 유사해 보이는 무기가 북한의 열병식에 등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러시아는 이를 다른 나라에는 제공한 적이 없는데, 일부 기술지원을 내비치면서 러시아가 자신들의 입지를 강조하는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스푸트니크는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중거리 미사일 또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매체는 토플식으로 보이는 미사일을 공개한데 대해 대북제재에 대한 협상카드로 장거리 미사일을 먼저 보여준 후 이를 포기하겠다는 의미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 첫 해, 항공모함 전단을 한국 해역으로 보낸다고 발표하는 등 전례 없이 강경한 입장을 드러내는 데 대해, 북한은 핵실험이나 다른 강경대응으로 맞받아치기보다 자신들이 보유한 카드를 더 많이 보여준 것이라고 방세현 소장은 분석했다.

그는 “미국의 전문가들이 고민해야 할 것이 많아진 북한의 열병식”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이미 미국과 북한의 관계에 소리 소문 없이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었다. 러시아는 지난달 크림반도 병합 3주년을 기념하는 시점에 북한의 벌목공 등 노동인력을 수입하는 것을 법제화한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이같은 조치는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제재를 무력화시킬만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러시아가 이처럼 고립될 수도 있는 북한을 적극 후원하면서 동북아시아에서 절대 사라진 존재가 아님을 과시하고 있다.

방세현 소장은 “전통적으로 북한은 중국과 더욱 혈맹관계였지만, 최근 북중 관계는 러시아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격상시킬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이전과 달리 앞으로 동북아시아 문제에 적극 개입할 가능성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이 4.15 열병식을 겉모습으로나마 제한적으로 치른 것은 강경일변도 입장을 공언해 온 트럼프 대통령이 기본적인 성과를 확보한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다음날인 16일 미사일 발사 실패에 대해 미국의 교란성공 가능성을 주장하는 것은 미국 중심적인 희망사항의 표현일 뿐으로 지적되고 있다. 미사일 실패가 결과적으로 북한에게 많은 부담을 덜어줬다는 점을 주목해야 된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까지 예상했던 전망과 달리 열병식만으로 끝냈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압력에 일방 굴복한 결과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미사일 발사를 강행함으로써 굴복했다는 인상을 피했고, 이 발사가 실패함으로써 미국을 자극하는 일도 피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보다 더 강한 입장을 들고 나오기는 여러 방면에서 여건의 제약이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당장 동아시아 뿐만 아니라 중동지역에서도 미군의 군사행동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다 당초 알려진 바와 달리 칼빈슨 호가 19일 현재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드러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 문제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와 달리 단 한 명의 병사도 동원하지 않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갈수록 존재를 키우고 있는 현재 동북아시아 정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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