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장 내정... "그가 변한 게 아니라 재벌이 변한 것"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참여연대 등에서 재벌 지배구조 개선과 소액주주를 위한 운동을 펼쳐온 인물로 유명하다.

‘기업 경찰’인 공정위원장으로 김상조 교수가 등장하는 것에 대해 재벌들이 지레 겁부터 먹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하지만 흐르는 세월에 강산이 변하듯, 김 교수의 모습 역시 10여 년 전 그대로는 아니다. 이는 김상조 교수만의 변화가 아니라 재벌들의 변화에 대한 상대적인 것이기도 하다.
 

▲ 공정거래위원장에 내정된 김상조 한성대 교수. /사진=뉴시스.


오랜 세월 삼성그룹의 변칙 상속을 강하게 비판하던 참여연대는 2004년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본격적인 반격에 나섰다. 김상조 교수가 주총 참여 일행에 동참했다.

하지만 이들은 주총장의 안전요원에 의해 축출되고 말았다. 주총장 밖으로 끌려나온 김 교수가 분노를 담아 일갈하는 사진이 당시 한 언론에 의해 전해졌다.

김 교수는 다음해인 2005년 또 다시 삼성전자 주총에 참석했다. 송호창 변호사, 김기식 참여연대 간사(두 사람 모두 전 국회의원)도 있었다. 한 해전의 불상사로 인해 이때 엄청난 기자들이 주총장에 집결했다. 기업에 큰 일이 생기면 경제기자들이 다 모이지만, 정말 큰 일이 생기면 사회부기자들도 나타난다.

김 교수는 김인주 사장 선임에 대해 반대표결을 신청했다. 1년 전과 달리 주총을 진행한 윤종용 부회장은 참여연대의 요구를 절차에 따라 수용했다. 안전요원은 이들을 몰아내지 않았고, 발언 신청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이크를 들고 분주히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사측은 훨씬 개선된 모습을 보였지만, 노년 또는 일부 중년의 소액 주주들은 극심한 추태를 보였다. 이들은 김 교수 등 참여연대 사람들이 손만 들어도 온갖 욕설을 뱉어냈다.

3.75% 지분에 불과한 참여연대가 표결에서 이길 리는 없었다. 절대 열세와 온갖 욕설이 쏟아지는데 굴하지 않고 김상조 교수는 요구사항을 제기해 패배한 결과를 받아들였다. 주총이 끝난 후 윤종용 부회장은 이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와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참여연대에 욕설을 퍼부은 사람 가운데 몇몇은 며칠 후 열린 SK주총장에도 나타났다. 외국 투기펀드인 소버린이 SK에 대해 경영권 공격을 벌인 마지막 주총이었다.

소버린은 34.8%에 달하는 위협적인 지분을 주총에서 행사했다. 참여연대와 비교할 수도 없는 막강한 반대세력이었다. 그런데 주총장의 ‘노인들’은 참여연대와는 전혀 다르게 소버린에 대해 ‘경청’으로 대접했다. 소버린 측은 외국인 주주가 영어로 자기 의견을 말하고 한국인이 번역하는 두 배로 번거로운 절차를 구사했는데도 이들은 아무 욕설도 없었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은 단순히 소액주주들의 ‘공정성’ 요구 뿐만 아니라 기업의 경영권 방어에도 필요하다는 교훈이 한국사회에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지배구조 개선을 강요(?)하지 않는 정부가 들어섰지만, 세월이 흐르자 재벌 스스로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려는 모습도 일부 나타났다.

노무현 정부의 지배구조 개선을 기업 안보 위협이라고 비난하던 야당의원들은 여당의원이 되자 ‘경제민주화’ 운동을 강하게 전개했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강조하고 있던 2012년 8월, 본지는 김상조 교수와 돌발 인터뷰를 가졌다. 김 교수는 “앞으로 어떤 식으로 귀결될지는 입법과정과 특히 대통령 선거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그러나 이제 우리 사회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전진해 갔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호평했다.

삼성그룹은 2013년 사장단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 초청연사가 등장했다. 김상조 교수였다.

9년 전, 주총장에서 자신들이 안전요원을 시켜 바깥으로 끌어냈던 사람을 이번에는 그룹 지도층 회의에 ‘선생님’으로 정중하게 모셔왔다.

김상조 교수의 변한 모습이라고 하지만, 본질은 김 교수보다 기업들이 변해온 모습이다.

그래서 그가 소액주주 운동을 하겠다고 무모하게 덤벼들던 노력이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다. 김상조 교수가 공정거래위원장이 됐다 해서 기업들이 두려워할 일이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다만, 정책수행 경험이 부족하지 않냐는 지적은 제기되고 있다. 이런 지적은 정말로 김상조 내정자가 귀 담아들어야 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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