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배우는 경영통찰력(시리즈 8)...미국 공익광고 '꼬리표 편'의 교훈

▲ 김병희 교수

[외부기고=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모두 기억하겠지만 2016년 5월 28일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다. 벌써 1년! 열아홉 살 새내기 노동자가 혼자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다 사고사를 당했다. 가방 속 컵라면 하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과 슬픔이 집약된 상징적 장면이었다.

경영자들은 비용 절감 등 여러 이유를 들어 비정규직 고용을 선호하지만, 직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는 많은 차별이 존재한다. 1998년의 외환위기 때 기업의 구조조정을 위해 한시적으로 도입했던 제도가 관행으로 굳어져 버린 탓이다. 그동안 수수방관해 온 정치권도 비정규직 양산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다음 일자리 창출에 진력하는 건 크게 환영할 만하다. 그렇지만 취업 자체만 강조하다보니 노동자의 작업환경 개선이나 차별대우 해소는 뒷전으로 밀렸다는 느낌도 든다. 정규직이 되더라도 일자리의 질이나 직업의 안정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원인의 90퍼센트는 경영자들이 산업안전보건법의 의무를 지키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는 통계도 있다. 알바로 고생하는 청년들이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일터에서의 차별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공익광고 한 편을 보며 차별의 종식을 꿈꾼다면 지나친 기대감일까?
 
미국 공익광고협의회(Ad Council)의 ‘꼬리표’(2015) 편은 바이럴 캠페인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미국 공익광고협의회는 2015년 3월 3일부터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사랑엔 꼬리표가 없다(Love Has No Labels)’는 제목의 광고를 게재했다.

광고는 이렇게 시작된다. 도심 공터에 대형 스크린이 세워지고,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며 무대의 엑스선(X-rays) 스크린을 주시한다. 스크린에는 해골이 포옹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잠시 후 관중들의 박수를 받으며 사람의 커플이 등장하는데 놀랍게도 동성이다. 동성 부부가 화면 앞으로 나오는 순간 “사랑엔 성차가 따로 없다(Love has no gender)”는 자막이 뜬다.

 

▲ 미국 AC 2015 사랑차별광고 /사진=김병희 교수 제공
▲ 미국 AC 2015 사랑차별광고 출연자들 /사진=김병희 교수 제공

 

화면에 다시 춤추는 해골 모습이 등장하는가 싶더니 무대 앞으로 사람들이 걸어온다. 이제는 피부 색깔이 다른 친구끼리 등장하고 “사랑엔 인종이 따로 없다(Love has no race)”는 자막이 뜬다. 장애인과 친구, 노인 부부, 종교가 다른 친구가 스크린 뒤에서 서로 포옹하고 춤추는 장면들이 계속 반복된다. 화면에 알맞게 “사랑엔 장애가 따로 없다(Love has no disability)”, “사랑엔 나이가 따로 없다(Love has no age)”, “사랑엔 종교가 따로 없다(Love has no religion)” 같은 자막이 떠오른다. X-선으로 비춰지는 대형 스크린에 뼈대만 보이던 사람들의 진짜 모습이 공개되자 사람들은 모두 열광하며 환호성을 보낸다.
 
이 밖에도 흑인 여성과 히잡을 쓴 이슬람 여성의 포옹, 장애가 있는 어린이들의 인사, 노부부의 깊은 키스, 백인 남성과 흑인 여성의 수줍은 입맞춤, 휠체어에 앉은 여성과 남성, 레즈비언 연인들이 스크린에 등장한다. 노부부는 진한 키스를 나누며 “우리의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네요”라고 말한다. 레즈비언 연인은 “사랑이란 상대가 누구인지 뭐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게 아니죠”라고 말한다. 휠체어에 앉은 여성을 곁에 둔 남성은 “저는 휠체어를 보지 않고, 제 인생의 사랑을 봐요”라고 말한다. 이 광고에서는 “사랑에는 꼬리표가 없다”는 카피로 마무리하면서, 사랑에 있어서 어떠한 차별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광고의 성공 요인은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영상에 담아 사실성을 높였다는 데 있다. 빅 모델을 쓰지 않고 보통 사람들이 무대에서 행동한 장면을 영상에 담았는데 연출하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보통 사람들이 실제로 경험한 내용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증언형(testimonials) 기법에 담아 낸 진솔한 메시지가 깊은 울림을 주었기에 광고가 성공할 수 있었다. 이 광고는 2015년 3월 3일 유튜브에 공개된 이후 현재까지 4700만 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호평을 받았다. 해골과 실제 사람을 엮어낸 아이디어가 탁월한 이 광고는 2015년 칸광고제에서 사이버 부문의 수상작에 그 이름을 올렸다.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편견과 무관하다 생각하지만 인종, 나이, 성차, 종교, 출신 지역 등 외적 편견에 따라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부터 차별이 시작된다. 일터에서의 차별은 더더욱 심각하다. 사실 일터에 얼마나 많은 차별적 시선과 직종이 존재하는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일반직과 기술직, 관리직과 영업직, 취재직과 업무직 등 이름도 다채로운 직종의 구분 앞에서 좌절하는 직장인들이 많으리라. 일의 성격상 직종 구분이 꼭 필요해서 나눴다면, ‘가’ 직종에서 일을 가장 잘 하는 사람과 ‘나’ 직종에서 가장 일 잘 하는 사람을 똑 같이 최고의 전문가로 예우해야 한다. 직종만으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뿐인가?

업무 능력에 따라 인사고과 평가를 한다고 하면서도, 술자리에서 상사보다 먼저 갔다거나, 애경사를 챙기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승진이나 연봉에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는 얼마나 많았던가. 이 광고는 경영자들에게 ‘어때야만 한다’는 꼬리표(차별)를 가지고 직원들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좋은 직장을 만들려는 경영자라면 자신이 찍은 직원일수록 사랑으로 보듬어줘야 한다. 찍혔다고 생각하는 직원 스스로가 달라질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사랑도 증오보다는 위대한 법이니까. 어디 직장뿐이겠는가? 일상생활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차별의 종식, 꼬리표(labels)는 옷에만 남겨두고 마음속에서는 떼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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