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배우는 경영통찰력(시리즈 9)...애플 광고가 던져주는 교훈

▲ 김병희 교수

[외부 기고=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기업의 마케팅 활동이 갈수록 더 중요해지고 있다. 다들 상품을 잘 만들기 때문에 상품의 품질에서는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럴 땐 시장을 나누는 마케팅 활동이 필요하다. 마케팅이 그토록 중요하다면서도 우리말 번역어는 왜 없는지 의문이다. 혹시 마케팅을 시장(market)이 지속되게 하는(ing) 경영 활동으로 해석하면 안 될까? 이런 맥락에 따라 소비자 입장에서 마케팅을 번역하면 ‘장보기’가 아닐까 싶다.
 
경영자들은 경쟁사보다 좋은 상품을 개발해 자사 상품이 더 낫다고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장보기’를 즐겨하는 소비자들은 새로 나온 상품들을 ‘도긴개긴’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경쟁사보다 더 나은 제품이라고 말하기보다 차라리 어떤 상품 범주에서 처음 나왔다고 소개하는 쪽이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지만 경영자들은 새로운 상품 범주에서 전혀 반응이 없으면 어쩌나 싶어 망설일 수 밖에 없다. 위험을 감수하는 결단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안전한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다소 위험해도 모험적 결단을 할 것인가?

애플 컴퓨터의 론칭 광고에서 경영자의 뚝심을 배워보자.  
 
미국 현지 시간으로 1984년 1월 22일, 텔레비전 시청자들의 시선은 프로풋볼리그(NFL) 결승전인 슈퍼볼 중계방송에 쏠려 있었다. 애플은 슈퍼볼 중계방송 시간에 매킨토시의 탄생을 알리는 ‘1984년’ 편을 내보냈다. 기존에는 주로 30초 광고가 나갔는데, 애플은 60초짜리 광고를 선보여 세계의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플로리다주의 탬파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제18회 슈퍼볼에 초대된 팀은 LA레이더스와 워싱턴 레드스킨스였다. 이날 LA레이더스가 최초로 슈퍼볼의 승자가 되었지만, 사람들은 애플컴퓨터 광고와 스티브 잡스를 더 기억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 사진=김병희 교수 제공

 

이 광고는 사람들이 극장에서 멍하니 대형 스크린을 응시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모두들 경직된 자세로 앉아 표정이 굳어 있어 숨이 막힐 것만 같다. 대형 스크린에서는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울 정도로 얼굴을 부각시킨 한 남자가 열변을 토하고 있다. 마치 ‘빅브라더(big brother)’ 같다. 이때 갑자기 금발머리 여성이 통로를 가로 질러 뛰어온다. 경찰이 제지했지만 그녀를 막을 수 없다. 그녀는 제지 선을 뚫고 강당으로 뛰어와 해머를 뱅뱅 돌리더니 스크린을 향해 힘껏 내던진다. 대형 해머는 빙빙 돌며 화면을 향해 날아가더니 스크린을 산산이 부숴버린다. 그 순간 다음과 같은 카피가 흘러나온다.
 
“1월 24일, 애플 컴퓨터가 매킨토시를 소개합니다. 당신은 1984년이 왜 ‘1984년’과 같지 않은지 알게 될 것입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로 유명한 리들리 스콧 감독이 광고를 제작했는데, 그는 당시에 세계시장을 지배하던 IBM PC를 빅브라더로 묘사했다. 광고 자막에 따옴표까지 해가며 소개하는 “1984”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을 의미한다. 모두가 알다시피『1984년』은 전제주의 지배 체제에서 한 개인이 저항하다 어떻게 파멸해 가는지를 생생히 묘사하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오세아니아의 권력기구인 당은 허구적 인물 빅브라더를 내세워 사람들의 사생활을 철저히 감시한다. 애플은 IBM PC를 빅브라더로 설정했다. 매킨토시가 기존의 컴퓨터 세계를 끝장내고 전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
 
이 광고가 슈퍼볼 중계방송에 노출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애플 컨퍼런스에서 호평을 받았지만 애플 이사진들은 광고 표현이 위험한 메시지라며 슈퍼볼 광고 금지령을 내렸다. 이때 잡스와 함께 애플을 창업한 워즈니악은 모험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이사회가 금지하면 자비로라도 슈퍼볼 때 매킨토시 광고를 하겠다고 맞섰다. 우여곡절 끝에 방송된 이 광고는 46.4%라는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며, 매킨토시를 새로운 범주의 컴퓨터로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하마터면 1980년대의 명작 광고 하나가 용도 폐기될 수도 있었지만 두 경영자의 뚝심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셈이다.
 
이런 장면은 우리나라의 경영 현장에서도 얼마든지 많다. 놀라운 아이디어가 분명한 데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반대하는 간부들이 의외로 많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알 리스와 잭 트라우트는『마케팅 불변의 법칙』(1994)에서 22가지의 마케팅 법칙을 제시했는데, 두 번째가 범주의 법칙(law of the category)이다. 어떤 범주에서 첫째가 되기 어렵다면 기존의 상품 범주에 들어가기보다 어떤 시장에 최초로 뛰어들어 첫째가 될 새로운 범주를 개척하라는 것. 신상품이 경쟁사의 것보다 얼마나 좋은지 생각하기보다 어떤 범주에서 처음이 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라는 뜻이다.
 
애플의 ‘1984년’ 편은 단 한 번만 방영되었지만, 애플을 당시 컴퓨터 업계의 골리앗이었던 IBM에 대적하는 ‘다윗’으로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기존의 IBM보다 더 진화된 컴퓨터라고 주장하지 않고 전혀 다른 스타일의 컴퓨터라는 새로운 범주를 모색한 잡스와 워즈니악의 뚝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 광고에서는 광고 내용에서도 배울 게 많지만, 이사진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집을 피운 두 사람의 일화에서 배울 점이 더 많다.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는 애플의 슬로건이다. 문법적으로는 “Think differently”가 맞지만, 광고회사 샤이엇데이(Chiat/Day)에서는 일부러 부사를 형용사로 바꿔 다르게 표현했다. 그래야 눈에 걸리고 귀에 걸린다는 이유에서다. 이 역시 숱한 반대에 부딪혔지만 광고 카피라이터가 고집을 꺾지 않았기에 불멸의 슬로건으로 자리 잡았다.

따라서 회사에서는 고집불통도 필요한 법. 예스맨만 좋아했던 경영자라면 이제 ‘아니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더 눈여겨보시기 바란다. 우리네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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