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의원 출신 정치인 장관이면서도 '적폐'논쟁에서는 자유로워

▲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지난달 5월31일 이낙연 국무총리(오른쪽) 취임식에서 이 총리와 나란히 앉아있다. /사진=뉴시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던 지난 5월1일, 유일호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재부 확대간부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오늘 이 자리가 이번 정부(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성한 정부) 마지막 확대간부회의일 것”이라며 참석자들에게 그간의 노고를 감사했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이 유력하던 시점에서 유 전 부총리가 미리 이임사를 남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과 함께 자리를 떠나기는커녕 오히려 국무회의까지 주재해야 되는 더 큰 자리를 맡게 됐다. 국무총리 대행의 임무까지 수행했기 때문이다.

거의 한 달 동안 청와대조직법에서부터 출발해 장관 후보자 제청까지 문재인 정부의 사실상 첫 번째 ‘재상’ 역할을 수행했다.

유일호 부총리는 박근혜 전 정부의 남아있는 장관 가운데 10일 가장 먼저 임무를 마쳤다. 김동연 신임 부총리가 10일 임명장을 받으면서 유일호 부총리는 이제 전 부총리가 됐다. 가장 먼저 떠나지만 가장 홀가분한 입장이기도 하다.

그는 옛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 재선 국회의원 출신이지만 정책 수행에서는 정치색을 크게 띠지 않았던 장관으로 평가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적하는 ‘전 정권의 적폐’ 논쟁에서 상당히 자유로운 입장이다.

그의 경제부총리 직무 수행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후에 오히려 더 존재를 나타냈다.

그가 2015년 3월 국토교통부 장관에 임명됐을 때, 2016년 총선 출마를 위한 경력 관리용이라는 일부의 의혹을 피하기 어려웠다. 이런 의혹과 달리, 그는 총선 직전인 2016년 1월 경제부총리로 승진하면서 총선 출마를 포기했다.

하지만, 전임자인 최경환 전 부총리가 구축해 놓은 소위 ‘초이노믹스’의 기본 골격 속에서 유 전 부총리가 나름의 정책을 펼 여지는 크게 제한됐다.

설상가상으로, 총선과정에서 당시 새누리당이 ‘한국판 양적완화’를 꺼내들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그것 참 좋은 방안”이라며 중앙은행 통화정책까지 노골적으로 간섭을 하는 마당에 유 전 부총리가 이를 마다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한국판 양적완화는 미국 유럽의 양적완화와 전혀 성격이 다른,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의 부실자본 확충 방안인 것이 곧 밝혀졌다.

국회에서는 유승민 이혜훈 등 여당의원들이 야당의원들과 함께 국채발행을 승인할 테니 발권력을 쓰지말고 국채 발행으로 바꾸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이 때만 해도 ‘최순실 국정농단’이 불거지기 전으로, 박 전 대통령이 간섭한 정책을 뒤집는 건 상상도 어려웠다.

박 전 대통령 퇴임 후 경제 상황이 오히려 개선되는 조짐이 나오면서 유 전 부총리의 행보도 더욱 ‘생산적’이 됐다.

올 들어  외환시장에서는 간혹 역외에서의 불안 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1월말 설 연휴 때는 역외에서 원화 선물환율이 15원 이상 치솟았다.

하지만 이 혼란은 연휴가 끝나고 서울시장이 열리자마자 말끔히 사라졌다. 휴일인데도 유일호 당시 부총리가 특별히 인천의 수출업체를 방문해 “연초 수출이 매우 잘 되고 있다”고 자신감을 피력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국내 외환딜러들이 부총리 발언에 힘입어 역외 혼란을 일축할 수 있었다.

원엔환율이 2월 중순 1000원대로 내려가는 원화의 과도한 절상도 유 전 부총리의 한마디로 해소됐다. 100엔 대비 원화환율이 1000원 아래로 낮아지는 것은 한국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심각하게 저하되는 것을 의미한다. 원엔환율은 2월16일 999.26 원으로 내려갔다가 유 전 부총리가 “이 상황이 지속될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는 이례적인 한마디를 남기자 바로 다음날 1005.34 원으로 올라갔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9일 당선되고 황교안 국무총리가 이틀 후 사임하자, 유 전 부총리는 국무총리 대행으로 장관급 인사에 대한 제청권을 행사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추천이 첫 번째 제청권 행사였다.

대통령 선거가 진행될 동안에는 간간이 “1분기 경제성장이 예상보다 좋다”는 등의 발언을 시장에 전달해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위기론에 대응했다.

예전 정부의 각료로 새 정부와 함께 손발을 맞추는 모습이 1997년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 긴밀히 협조했던 임창열 경제부총리와 일견 비슷한 면도 있다. 한 때는 ‘범박’으로까지 분류됐으면서도 무난한 성향으로 인해 ‘적폐’와도 거리가 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만, 유 전 부총리는 여전히 야당의 당적이 있는 사람이어서 순수 관료였던 임 전 부총리와는 입장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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