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역대 최고 한국은행 총재로 평가받는 고 전철환 총재의 업적 가운데 하나가 국채 유통시장 개척이다.

외환위기의 충격을 받은 한국 경제가 1998년 본격적인 극복 작업에 착수할 때 전철환 총재는 정부가 발행한 14조원의 국채 인수를 거부했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 둘째, 이를 계기로 채권유통시장을 제대로 만들면 한국 경제에 커다란 이익이 된다는 것이었다.

정부 또한 전 총재의 의견을 받아들여 드디어 한국시장에서 제대로 된 채권시장이 형성됐다. 국채와 관련한 많은 금융상품이 개발됐고 무수한 부가가치가 창출됐다. 이는 한국이 유전 10개를 갖게 된 것과 마찬가지라는 찬사도 나왔다.

국채는 나라의 빚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최고급 금융상품이기 때문에 국가 경제에 풍부한 자양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빚은 빚이다. 국채가 너무 많으면 국가 재정의 건전성이 악화되고 위기에 취약해진다.

한국은 아직 국채비중이 국내총생산(GDP)에 비해 높지 않다고 하지만, 국채 뿐만 아니라 다른 국공채를 모두 종합하면 무턱대고 금융시장 좋으라고 국채를 늘릴 수는 없는 형편이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선진국 경제는 특히 국채 증가에 민감하다. 경제위기를 탈피하기 위해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희생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당장 국채발행을 중단할 수는 없는 입장이니, 여러 가지 대안이 모색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GDP 연동 국채발행이다.

경제성장률, 즉 GDP 성장률에 따라 국채 규모가 늘거나 주는 것이다. 성장률이 좋아지면, 국채의 원금은 그대로 두되, 이자가 따라서 높아지는 방식이 있고 이자를 그대로 두고 만기 원금이 늘어나는 방식이 있다.

금융연구원의 김남종 국제금융연구실 연구위원은 10일자 금융브리프 금주의 논단을 통해서 한국 역시 고령화 및 저성장 체제에 따른 재정지출 확대 가능성에 대비해 GDP 연동 국채발행을 진지하게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남종 연구위원에 따르면, GDP 연동국채는 현재 영란은행(BoE) 등 선진국 중앙은행들과 국제통화기금(IMF) 출신의 전문가 등에 의해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많은 나라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융구조조정이나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지출을 늘리면서 GDP 대비 국채비율이 급증했다. 앞으로 저성장 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돼 국채비율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GDP 연동 국채가 주목되고 있는 것이다. GDP에 따라 국채 규모가 변동하니 중요한 국가재무건전성 지표인 GDP 대비 국채비율의 급격한 악화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국채는 경기 대응적인 지급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 정책당국의 입장에서 장점 가운데 하나다.

국가부채 비율이 높지 않은 국가의 경우는, 향후 경기침체기에 대비한 보험의 역할도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투자자들 입장에서 국채 투자의 수익률이 주식보다 낮다는 단점을 보완해 줄 수 있다는 기대도 가져오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누가 이 채권을 살 것이냐다. 경기 침체기에는 투자자도 돈이 더 필요한데, 받게 될 원리금이 줄어드는 이 채권의 매입자를 제대로 찾을 수 있느냐는 문제다.

아직 금융시장에 생소하다는 점도 문제다. 신규발행 프리미엄(novelty premium)으로 인해 발행비용이 급증할 우려가 있다. 물론, 이는 GDP 연동 국채가 금융시장에 순조롭게 정착되고 나면 사라질 문제다.

또한, 각국의 GDP에 대한 정확한 측정이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국가마다 GDP를 발표한 뒤엔 일정기간 후 이를 수정하는 일을 자주 볼 수 있다. 국채에 연동되는 GDP의 기준을 정하는 것에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김남종 연구위원은 한국과 같은 비기축통화국(달러 유로 엔화와 같은 기축통화를 쓰지 않는 나라)이 자국 통화로 발행할 경우 대외충격에 대응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김 연구위원은 GDP 연동 국채가 당장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향후 정책수단으로 활용될 경우에 대비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