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완화는 어디까지나 미국을 위한 정책...한국엔 득보다 실이 커

미국의 양적완화(QE, 돈풀기정책)는 이제 그 소멸시기만 남겨놓고 있다. 미국시장에선 여전히 노동지표나 물가지표 등 관련지표가 발표될 때마다 양적완화 축소가 지연될 수 있다며 환호하지만 한국시장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다르다. 한국시장에서 볼땐 양적완화가 9월에 축소되나 10월에 축소되나 아니면 12월에 축소되나 크게 다를 게 없다. 단지 중요한 것은 ‘한식이냐 청명이냐’하는 수준의 차이일 뿐이다. 우리에겐 ‘미국 양적완화 축소시기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 단 한가지 사실만 중요할 뿐이다. 양적완화 축소 및 종료가 우리시장에 미칠 영향이 아주 클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양적완화 종료시대 임박을 앞두고 이것이 우리에게 미칠 파장과 대응책을 시리즈를 통해 진단한다. <편집자주>

 

[QE퇴장시대 6] 美QE 축소에 한국도 다급해졌다

그동안 한국 증권전문가들이 줄곧 고개를 갸우뚱 대던 일이 있었다. 다름아닌 ‘미국 주가는 껑충껑충 뛰어 오르는데 왜 한국시장은 늘 제자리걸음이냐’는 이른바 디커플링(decoupling, 탈동조화) 불만이 그것이었다. 올들어 7월까지 미국 증시는 양적완화 정책의 영향으로 사상 최대의 고공행진을 펼쳤건만 한국 증시는 어쩐 일인지 여기에서 철저히 외면만 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같은 디커플링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은 한국을 위한 정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국 자신만을 위한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양적완화이후 선진국과 신흥국 간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정책이었기에 한국 금융시장엔 오히려 변동성만 키우는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 양적완화 정책이 추진될 때 우리시장에선 오히려 양극화의 피해를 줄이는 일에 더 고민했어야 옳았다. 양적완화가 우리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키우는 동시에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 경제를 견제하기 위한 측면도 없지 않은 까닭이다.

이처럼 한국에게 미국 양적완화 정책은 한마디로 얻는 것은 적고 잃는 것은 많은 정책일 가능성이 크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물론 미국 양적완화는 한국 경제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이다. 미국 경제가 회복되면서 그나마 대미 수출이 크게 위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적완화 추진이후 삼성전자를 비롯한 첨단 IT수출 실적이 특히 돋보였다. 실제로 미 상무부가 최근 발표한 ‘국제무역 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중 우리나라가 미국에 판매한 첨단기술 상품액은 총 81억 9,7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반면 수입액은 57억 6,000만 달러로, 우리나라는 첨단기술 상품 무역수지에서 24억 3,700만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반면 작년 상반기에 우리나라 첨단기술 대미 수입액과 수출액은 각각 71억 100만 달러와 69억 7,3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다시 말해 작년 상반기엔 미국이 첨단기술 상품 무역에서 1억 2,700만 달러 이익을 봤지만, 올해엔 손해를 본 셈이다.

미 상무부는 올 상반기중 전체 한국 상품의 수입액은 314억 900만 달러, 수출액은 203만 5,100만달러로, 한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적자는 총 110억 5,100만달러로 집계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세계에서 8번째로 많은 것으로,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 독일 멕시코, 사우디아라비아, 아일랜드, 캐나다의 뒤를 이어 미국을 상대로 한 무역에서 높은 수익을 올린 국가로 기록됐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미국 때문에 한국은 지금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미국이 양적완화 축소에 들어갈 경우 중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외국계 자금이 급속히 이탈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은 대만과 함께 자본시장 개방 폭이 아주 큰데다 유동성이 풍부하고 환금성도 높아 외국인들이 비상시에 자금을 회수하기 가장 좋은 시장으로 간주하고 있을 정도다. 최근 영국계 펀드회사와 파이낸셜타임즈(FT)가 한국은 매력적인 시장이나 돈을 빼내가기 쉬운 시장 구조를 가진 것이 단점이라고 지적했을 정도다. 아울러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들이 한국 채권을 130조원어치나 보유하고 있는 점은 ‘큰 우환거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 뿐 아니다. 양적완화 출구전략으로 우리의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 경제가 타격을 받을 경우 한국은 간접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무디스가 지적한 한국 경제의 명과 암은 양적완화 축소를 앞두고 그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큰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무디스의 한국 경제 진단의 변수 속엔 미국 양적완화 이슈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무디스에 따르면 한국은 내년 4~5%대 성장을 목표로 각종 경제정책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양적완화 축소와 중국 경착륙 우려, 일본 엔저 등)외부요인이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무디스는 그중에서도 한국 경제는 미국과 중국의 영향에 아주 민감해질 것이며 이런 외부요인을 감안할 때 내년 4%대 성장은 무리가 뒤따를 것이라고 진단했다.

무디스의 토마스 번 부사장은 우선 한국 경제의 딜레마가 간단치 않다고 했다. 수출의존도는 높은데 미국과 중국의 상황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마 이는 중국 경착륙 우려와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그리고 갈수록 심화하는 보호무역주의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토마스 번은 이어 한국의 금융 인프라 전반이 취약한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전체 대출 중 가계 대출비중이 워낙 커 인플레이션 변화에 민감하고 나아가 선진국들과의 대출구조가 아주 다른 것도 한국 금융 불안을 야기할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의 양적완화는 한국에 있어 변동성만 키워준 정책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걱정할 일만도 아니라는 지적도 뒤따른다. 알려진 악재는 더 이상 큰 악재가 아닐 수도 있는 까닭이다.

지금부터 한국이 해야 할 일은 금융체질을 강화하는 일이다. 그간 웅진사태와 STX 불안 등의 여파로 한국계 은행의 부실채권이 급증하고 대손충당금 적립 부담도 크게 늘었지만 앞으로 남은 부실기업들의 구조조정만 잘 하면 악재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부실징후 상태에 있는 기업들에 대해 선제 구조조정을 잘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가뜩이나 금융부실 위험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STX에 이어 거대기업이 하나만 더 쓰러져도 은행들은 그야말로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무디스가 지적한 대로 수출시장을 점검하고 나아가 금융체질을 보완하는 일, 이것이 양적완화 축소를 앞둔 현시점에서 한국이 해야할 가장 시급한 숙제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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