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 "QE축소와 저금리 정책은 별개"라고 외쳤지만 시장은 안믿어

 금융시장이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을 탄핵하고 있다. 

 
버냉키가 그동안엔 양적완화(QE)가 축소되더라도 저금리기조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며 시장을 달래 왔지만 9월 QE 축소 결정시점이 다가오면서 버냉키의 약발이 전혀 듣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이후 시작된 미국 국채 투매가 시간이 흐를수록 심해지고 이것이 급기야는 신흥시장 위기로 전이돼 인도네시아 인도 남아공 브라질 등 신흥국 화폐가치마저 뚝 떨어뜨리며 전 세계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21일 국내외 금융계에 따르면 지난 1분기까지만 해도 채권투자자들은 미국 국채를 아주 선호했었다. Fed가 매월 450억달러씩의 국채를 사들였으니 미국 국채만큼 안정적인 투자처도 드물다고 투자자들은 판단했던 것이다. Fed집계 결과 지난 1분기 말 현재 미국 연방정부가 발행한 국채 11조7000억달러 가운데 48.6%에 해당하는 5조7000억 달러를 외국인이 보유한 것으로 나타난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벤 버냉키 의장이 양적완화 출구전략의 필요성을 제기한 지난 5~6월 이후 시장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 재무부에 의하면 버냉키 Fed의장이 “올해중 양적완화를 줄이기 시작, 내년 상반기 종료 하겠다”고 밝힌 지난 6월 한달 간 해외 민간투자자들이 미국 국채를 사상 최대로 순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중국과 일본의 투자자들이 각각 200억달러 이상씩을 투매한 결과 외국인의 미 국채 보유 잔액에 6월에만 565억달러나 급감했다.
 
이에 앞서 지난 5월에도 해외에 근거지를 둔 헤지펀드들이 513억달러 어치의 미국 국채를 투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써 지난 5월부터는 Fed가 매달 사들이는 450억달러 보다도 많은 미국 국채가 해외에서 순매도 됐던 셈이다. 양적완화 효과가 5월부터는 완전 사라졌던 셈이다. 
 
이에따라 양적완화를 축소할 경우 이것이 미국 금리상승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미국의 고금리를 좇아 해외에 있던 돈들이 미국으로 결집되면 자연 미 달러화가 강세를 보일 것이라던 시나리오도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오히려 Fed와 버냉키가 양적완화 축소를 언급, 또는 확언한 지난 5~6월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시장에서 탈출하면서 달러화가 예상과 반대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뿐 아니다. 9월 양적완화 축소 결정시기가 다가오면서 미국 채권시장 불안은 더욱 가중돼 이제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연 2.8%대까지 오르고 이런 시장 불안요인은 경상수지 적자국인 인도네시아 인도 남아공 브라질 터키 등으로 급속히 전이되는 결과까지 낳고 있다. 미국 양적완화 축소발 외환위기가 신흥국 시장에서 나타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한가지 그래도 다행스런 것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재정수지 적자와 함께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막상 양적완화 축소가 진행되고 Fed의장이 교체되면서 발생할 불확실성 까지 더해질 경우 시장 상황은 더욱 불투명해질 것으로 전망돼 앞으로 세계 금융시장은 불안의 연속이 될 전망이다. 
 
한편 미국 10년만기 국채 금리는 21일(한국시각) 현재 연 2.81%로 전일(2.88%)보다는 다소 떨어졌지만 Fed와 버냉키 의장을 향한 시위성 채권 매도속에 시장은 연일 불안한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다. 이로써 버냉키가 채권시장 불안을 막기 위해 그간 쏟아낸 “양적완화 축소와 저금리 정책은 별개다. 저금리 정책은 아주 오래 지속될 것이다”고 한 말은 채권투자자들의 투매로 그 효력을 완전 상실하고 말았다. 시장이 버냉키를 탄핵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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