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한동안 유럽이 극우 민족주의에 맞서는 유일한 보루였다.

스페인, 그리스 등 일부 국가의 경제위기로 인해 유로존이 흔들리고 영국 국민들이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했다. 여기다 미국에서는 극우주의자들과 많은 정서를 공유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다.

난민 수용 문제로 인해 독일 내에서 극우파의 거센 도전을 받기도 했지만, 메르켈 총리는 유럽 통합의 무거운 짐을 혼자 짊어지고 있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4월 선거에서 승리해 집권하면서 메르켈 총리는 든든한 우군을 만나고 고독한 싸움의 국면에서 벗어났다. 현재 유럽정치에서 극우정치세력의 위세는 크게 가라앉았다.

독일은 오는 9월 총선을 치른다. 이번 독일 총선에서는 예전과 달라진 모습이 엿보인다.

워싱턴포스트의 23일 보도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의 집권 기독교민주연합은 독일 국기를 구성하는 검은색과 붉은색, 노란색의 색조를 두드러지게 활용하고 있다. 국기를 전면에서 내세우는 선거운동의 통상적인 경우처럼 메르켈 총리는 이번 총선에서 애국심을 강조하는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선거기획 관계자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메르켈 총리가 이런 전략에 대해 “슬램 덩크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확실한 성공전략이라는 의미다.

독일 정치에서 독일국기가 강조되는 것은 이례적이다. 독일 국민들은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에 대한 심적 부담을 갖고 있다. 비록 지금의 국기는 나치 정권이 폐기했던 바이마르 공화국 때 쓰던 것을 종전 후 복귀시킨 것이지만, 독일의 애국심을 강조하는 자체가 다른 나라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경계심이 존재한다.

월드컵 축구와 같은 스포츠에서는 독일 국기가 휘날려도 아무도 여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좀 더 조심스러운 태도가 유지되고 있었다.

애국심을 강조하는 메르켈 총리의 선거운동은 미국과 독일, 그리고 유럽의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최근 흐름과 관련해서도 주목된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 5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참석한 G7 회담을 마친 후 독일의 맥주행사에서 “우리 유럽인들은 우리의 운명을 우리의 손으로 개척해야 한다”며 “남에게 크게 의지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나는 이를 최근 며칠 동안 크게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신뢰할 수 없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으로 인해, 메르켈 총리는 유럽이 미국에 종속되지 않는 독자노선을 확립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일단은 유럽주의를 강조한 것이므로, 극우파들의 고립주의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국기와 애국심이 강조되는 것은 극우파들이 흔히 활용하는 정치행태다. 이런 점에서 독일 내 좌파진영의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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