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TBC 금토드라마 '품위있는 그녀' 박복자 역의 배우 김선아 /사진=뉴시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서울에서는 1980년 봄이 5공화국 신군부가 집권하기 전, 잠시 활짝 피었던 민주주의를 누린 ‘서울의 봄’이었다. 미국 국민들에게는 나라 안팎으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시절이다.

소련과의 패권경쟁에서 미국의 세력권이 눈에 띄게 줄고 있었다. 미국의 뒷마당이라고 불리는 중남미의 니카라과에서 좌익 혁명이 일어나 친미 독재정권이 축출됐다. 이란에서는 회교혁명이 일어나 친미왕정이 붕괴됐다. 새로 집권한 세력이 소련의 동맹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반미 성향만큼은 가장 강경한 국가 중 하나가 됐다. 마침내 1979년 11월부터는 무려 400일을 넘게 끈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 인질사태가 발생했다.

경제도 우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인플레이션이 13~14%에 달하는데, 일본 자동차에 밀린 미국 자동차기업들은 공장 문을 닫아가고 있었다. 국제정세에서는 반소, 경제에서는 반일 감정이 치솟고 있었다.

이처럼 국가 안팎으로 시름이 가득한 미국인들을 TV 앞으로 붙들어 맨 드라마가 있었다. CBS의 ‘댈러스(Dallas)’다. 한국에서는 TBC가 ‘달라스’라는 제목으로 방영했다.

이 드라마의 시즌3 최종회는 미국에서 9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청했다. 시청자의 76%에 달하는 놀라운 숫자다.

석유재벌인 주인공 J. R. 유잉이 두 발의 총격을 받는 마지막 장면과 함께 시즌이 끝났다. 다음 시즌이 6개월 후 시작될 때까지 ‘과연 누가 J. R.을 쐈나’는 미국 방송계 최대의 관심사였다.

유잉 역을 맡은 래리 해그먼은 한국의 시청자들에겐 낯설지 않은 배우였다. 댈러스에 앞서 한국에 소개된 시트콤 ‘내 사랑 지니’의 남자주인공인 공군 장교였다. 그러나 댈러스에서 그의 모습은 선량한 지니의 주인일 때와 전혀 달랐다.

냉혈한 욕심으로 주변 사람들을 이용하고 전혀 죄책감을 갖지 않는 그에게 점점 원한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주요 등장인물 대부분이 유잉을 쏜 범인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구도였다.

최근 JTBC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품위 있는 그녀’의 박복자(김선아 연기)가 유잉과 같은 최후를 맞을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박복자는 첫 회에서 그의 죽음을 예고하고 시작했다는 점이다.

자신의 탐욕을 위해 냉정하고 빈틈없는 행보를 보이는 점에서 박복자는 J. R. 유잉과 닮은 점이 있다. 그리고 박복자를 헤친 범인이 주변 인물 그 누구라도 스토리가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많은 원한을 사고 있는 점도 비슷하다.

다만, 박복자는 시청자들에게 한 순간 극도의 통쾌함을 선사해서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그가 불륜녀 윤성희(이태임 연기)에게 응징하는 장면에서 대다수 시청자들이 ‘정의 실현’의 대리만족을 체험했다. 또 기업 현장에서는 직원들의 열정까지 이끌어내는 카리스마도 보여줘 과연 ‘드라마에서나 존재할 법한’ 완벽한 인물을 살짝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창업자를 속이고 기업을 팔아넘긴 죄 값을 이기지 못한 탓인지, 그는 작가로부터 바로 첫 회 죽게 될 운명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 됐다. 매 회 진행될수록, 박복자 살해 용의자가 하나씩 추가되는 양상이다.

과연 박복자의 최후는 댈러스의 J. R. 유잉처럼 누구 소행인지 미스터리로 남을 것인지? 하지만 이런 처리는 높은 시청률로 호응해준 시청자들의 격렬한 반발을 초래할 소지가 다분하다.

1980년의 시즌3 이후 11시즌을 더 이어갔던 댈러스와 달리, ‘품위 있는 그녀’는 후속시즌의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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