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혼란은 누구의 공백에서 비롯되고 있나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왼쪽)와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오른쪽)가 16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만났다. /사진=뉴시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청와대 관계자’가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싸움을 벌이고 있는 곳은 엉뚱하게 한국은행 텃밭이다. ‘청와대 관계자’라는 사람은 김현철 경제보좌관으로 알려졌다.

사건의 발단은 김 보좌관의 인터뷰다. 이데일리에 따르면, 김 보좌관은 지난 7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전 정부에서 “한은의 독립성을 존중하지 않고 고압적으로 기준금리를 너무 낮춰버리는 바람에 가계부채와 부동산 폭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인식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본지 또한 박근혜 전 대통령 임기 중 정부가 기준금리 뿐만 아니라 발권력에 이르기까지 통화정책에 노골적으로 간섭하는 행태를 비판했었다.

문제는 그 다음 발언이었다. 김 보좌관은 “(기준금리가) 1.25%인 상황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가 한 발언이 인터뷰로 보도가 된 이상은 명백히 허용범위를 넘어 선 발언으로 지적된다.

학자 출신 김 보좌관이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려고 무분별한 발언을 한 것은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금리인상은 가계부채 급증을 막는 수단도 되지만, 이미 가계부채가 어마어마해 진 상태에서는 폭탄을 터뜨리는 것과 같은 위험소지도 가득 안고 있다. 마치 ‘적폐를 일소하겠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절대 안되는 것으로 지적된다. 자칫하면 문재인 대통령 경제정책의 모든 성장동력을 날릴 수 있는 위험까지 제기된다.

김 보좌관의 발언은 구체적인 금리 수준까지 언급해 매우 심각하게 한은의 고유영역을 침범한 것에 해당한다.

“정부 당국자가 금리 문제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반박이 뒤를 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반박이 김동연 부총리의 입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김 부총리에 앞선 역대부총리 가운데는 통화정책에 대한 간섭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인물이 하나둘이 아니다. 이들은 노골적으로 금리 인하를 강요하거나 인상을 반대했다.

말로만 그친 것도 아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아무개 부총리 사단’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회의 결과를 뒤바꾸는 행동까지 보여줬다. 한은 부총리가 의사록에 ‘반대 의견’을 남기는 저질 코미디까지 초래했다.

이런 부총리들의 후배인 김 부총리가 금리 인상 발언이 나오자마자 발끈하고 나섰다. 결과적으로 그 자체가 기획재정부는 앞으로 행여 있을지도 모르는 금리인상에 대단히 불쾌하다는 심사를 드러냈다. 또 하나의 통화정책 간섭이 된 것이다.

부총리가 두 달만에 한은 총재를 또 만나는 이유가 ‘청와대에 맞서기 위해서’ 였다는 추정도 가능해졌다.

김 부총리 본인은 금리간섭을 이전에 한 적이 없는지 모르지만, 그는 기획재정부라는 부처 명칭으로만 따져도 제4대 부총리고 제7대 장관이다. 재무부 재정경제부 등 이전 명칭까지 따지면 수 십 명의 역대 부총리가 있다. 그 가운데는 이헌재 최경환 전 부총리 강만수 전 장관 등이 모두 포함된다.

부총리와 청와대가 진흙탕 싸움을 벌이게 된 것은 금융시장에서 한은 총재의 ‘카리스마’가 실종된 것에서 근본 원인이 제기된다.

이주열 총재는 지금도 최경환 전 부총리 시절 ‘빚내서 집사라’ 정책의 ‘컴비 플레이어’로 비판받고 있다. 거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나서서 국책은행 자본확충에 발권력을 동원하라는 요구에도 힘없이 굴복한 전력을 갖고 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한은이 갑자기 긴축기조로 돌아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참으로 우습게 된 형편이다. 중앙은행 총재 임기 보장이라는 막중한 명분으로 인해, 이주열 총재는 가벼운 처신을 할 수도 없는 처지다.

이래저래 지금의 한은은 내년 3월 이 총재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살아도 살아있는 조직 같지 않은’ 신세를 면키 어렵다는 우려를 사고 있다.

한심한 당국자들간에 제대로 된 질서가 형성될 때까지 극히 조심, 또 조심해야 할 사람들은 시장의 무고한 참여자들이다. 교란된 신호가 반복될 때마다 ‘3년 농사 하루에 접는’ 사람이 속출할 수 있는 아찔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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