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배우는 경영 통찰력(시리즈 20)...하인즈 케첩 광고가 주는 교훈

▲ 김병희 교수

[외부 기고=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제품을 더 크게 부각시켜요”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마다 광고 창작자들이 광고주로부터 가장 자주 듣는 말이다. 광고 창작의 기본 원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광고 시안에 제품 패키지를 꽤 크게 제시했는데도 자사 제품이 보이지 않는다며 광고 프레젠테이션 현장에서 불만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그런 태도를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지만, 브랜드나 제품을 크게 제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광고 아이디어에 따라 제품의 배치나 크기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고, 아예 제품 패키지를 보여주지 않았을 때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미드 드라마 <매드맨(MAD MEN)>의 시즌6(2013)에서는 광고 프레젠테이션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었다. 이 드라마에서는 유명한 광고 제작자의 일과 사랑 그리고 권력욕을 그려냈는데, 2007년의 시즌1부터 시작해서 2015년에 시즌7로 끝날 때까지 에미상과 골든글러브상을 수상할 정도로 수작이었다. 핵심 내용은 1960년대 뉴욕의 매디슨가에 밀집된 광고회사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광고회사 스터링 쿠퍼 드레이퍼 프라이스(Sterling Cooper Draper Pryce)의 광고기획자인 돈 드레이퍼(Don Draper)의 성공 욕구와 내적 방황이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 돈 드레이퍼가 하인즈 경영진에게 프레젠테이션 하는 장면(매드맨 시즌6, 2013) /사진=김병희 교수 제공

2013년에 방영된 <매드맨>의 시즌6에서 돈 드레이퍼(존 햄)는 하인즈 경영진을 대상으로 하인즈 케첩(Heinz Ketchup)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프레젠테이션의 핵심 아이디어는 제품 패키지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 돈 드레이퍼는 광고에서 제품을 보여주지 않고 “하인즈 좀 건네줘(Pass The Heinz)”라는 헤드라인만으로 제품을 떠올리게 하자고 제안한다. 다 보여주지 않고 여운을 남겨야 오히려 소비자들이 더 잘 기억한다는 것이 전략의 요체라는 것. 하지만 듣고 있던 경영진들은 그의 제안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곧바로 일어서 버린다.

그는 광고주의 제품을 기억하게 하는데 기여하는 최고의 것은 사진이나 그림이 아닌 소비자의 상상이라고 주장한다. 상상은 예산의 규모나 시간 제약도 받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의 상상 공간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온종일 광고를 하는 셈이나 마찬가지라는 것. “케첩을 보지 않아도 온종일 케첩을 생각하게 되겠죠(You’re going to be thinking about ketchup all day, and you didn’t even see it)”  그는 마지막까지 이렇게 말하며 광고 아이디어를 설명하지만 광고주를 설득하는 데 끝내 실패한다. 여기까지가 드라마에서 구성한 프레젠테이션 상황이다.

 

▲ 하인즈 케첩 인쇄광고 '치즈버거'편(2017) /사진=김병희 교수 제공
▲ 하인즈 케첩 인쇄광고 '프렌치프라이'편(2017) /사진=김병희 교수 제공
▲ 하인즈 케첩 인쇄광고 '스테이크'편(2017) /사진=김병희 교수 제공
▲ 하인즈 케첩 옥외광고 '프렌치프라이'편(2017) /사진=김병희 교수 제공

이제부터는 실제 상황이다. 하인즈 케첩은 드라마에서 50년 전에 광고주가 거절했던 아이디어를 2017년에 다시 되살려냈다. 광고회사 데이비드 마이애미(David Miami)는 <매드맨> 10주년을 기념해 승인받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되살리자고 제안해 치즈버거, 프렌치프라이, 스테이크를 소재로 세 편의 인쇄광고를 만들어 <뉴욕 포스트>에 신문광고를 게재했다. 그리고 뉴욕시 우체국 벽면에 옥외광고도 하고, 소셜 미디어 채널을 통해 잊혀진 광고 아이디어의 부활을 알렸다. 광고에 케첩 제품은 보여주지 않고 “하인즈 좀 건네줘(Pass The Heinz)”라는 헤드라인만 썼다. <매드맨>의 프레젠테이션 현장에서 제시했던 것과 똑 같은 광고다. 굳이 제품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하인즈 케첩만의 자신감이 느껴진다. 브랜드 이름을 생략함으로써 오히려 제품에 대한 열망을 창출하는 전략을 시도한 것.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샤프스버그에 헨리 하인즈가 1869년에 작은 상점을 열어 어머니가 담근 고추냉이 피클을 판매하면서 시작된 하인즈의 자신감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광고였다. 

드라마에 제품을 협찬해 자연스럽게 브랜드를 노출하는 것을 제품 배치(PPL)라고 한다. 반대로 하인즈 광고는 드라마에서 구성한 상황을 실제 광고로 부활시킨 역사상 최초의 역PPL(reversed PPL)의 사례이다. 2017년의 하인즈 경영진은 광고회사의 제안을 진지하게 경청한 다음, 제품 패키지가 보이지 않는 광고 아이디어를 승인했다. 드라마에서와는 다른 의사결정이었다. 아이디어를 승인받는데 50년이 걸렸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이 광고에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조사 결과, 이 광고는 26억번 노출되었으며, 광고비의 투자수익률(ROI)은 4540%에 이르렀다. 여러 광고 전문지에서는 그동안의 하인즈 캠페인 중 가장 효율적인 캠페인이라고 평가했으며, 2017년 칸의 창의성 축제(칸라이언즈)에서 옥외부문 금상, 인쇄부문 은상, 엔터테인먼드부문 동상 등 3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제품을 크게 부각시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자기 자랑을 크게 부각할수록 소비자들은 외면할 수도 있다. 경영자들이 자기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제대로 경청하지 않은 탓에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아이디어가 셀 수 없이 많을 터. 이전에 없던 낯선 제안일지라도 진지하게 경청하고 차분히 생각해본 다음,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해도 늦지 않다. 경영자들이여, <매드맨>에서의 하인즈 경영자들처럼 프레젠테이션 현장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말아야 한다. 기업 경영에서도, 일상생활에서도, 말하기보다 듣기가 더 중요하다. 들으려면 제대로 들어야 한다. 그냥 듣는 것(hearing)은 무의미하다. 상대방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listening)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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