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버린-엘리엇 교훈...'이재용 위기' 냉정하게 극복해 국내 산업 보호해야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삼성 관련 뉴스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관심은 기사를 쓰는 기자들의 행태까지 주목하고 있다.

유감스런 일이지만, 일부 기자들 역시 오랜 세월 누적돼온 독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역시 그동안 일부 언론의 자업자득이라 하겠지만, 그래도 역시 중요한 것은 정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판단에 따른 기사를 전달하는 소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독자들의 ‘의혹’처럼 무턱대고 그룹 총수의 일신만을 위한 기사를 쓰는 것도 죄악이지만, 반대로 쏟아지는 갈채를 탐닉해 무조건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것 역시 본분을 외면한 죄악일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 경제가 겪었던 과거 경험에 비춰 예상되는 향후 문제를 지적하고 이에 대한 경각심을 강조하는 것이다.

한국 경제의 과거 경험이란, 14년 전의 일을 말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비자금 조성으로 수감되고, 소버린의 경영권 공격이 벌어진 일이다.

해당 그룹으로서는 뼈아픈 과거를 또 들춰내는 것이 괴로운 일이겠지만, 이 사태가 한국 경제에 주는 교훈이 워낙 막대하고, 특히 지금의 상황에서는 조목조목 치밀한 재검토가 절실하다.

개인적으로 이 때 가장 크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주요 외신 가운데 하나인 파이낸셜타임스의 사진이다. 죄수복을 입은 그룹 총수의 사진이 큼직하게 첫 장 한복판을 장식하고 있었다.

국내 언론 형편에서는 절대로 1면은커녕 지면 어디에도 들어가기 어려운 사진이었다. 현장에 있지 않고는 웬만한 국민은 평생 한번 보기도 힘든 재벌 총수의 불운한 모습이었다. 그런 사진이 외신의 첫 장을 덮고 있었으니 이번 일이 이만저만 심각한 일이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됐다.

국외에서부터 이 회사에 대한 불안이 조성되더니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SK 계열사 가운데 핵심 주력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회사에 대한 해외 펀드의 공격이 시작됐다. ‘금융 생태계의 하이에나’, 국제 투기펀드가 ‘피 냄새’를 맡고 공격을 시작했던 것이다.

여기서 SK의 순환출자 구조가 더 심각한 문제를 가져왔다. 이 계열사의 경영권이 넘어가면 텔레콤과 같은 핵심 계열사의 경영권도 위태해지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국적 자본에 대한 국가적 경각심이 상당한 시절이었다. 많은 백기사 주주들이 등장해 3년에 걸친 공방 끝에 소버린의 공격은 물리칠 수 있었다. 그러나 소버린은 무려 8000억원의 엄청난 시세 차익을 챙겼다.

한국 기업들에 지배구조의 중요성을 인식시켜 준 수업료로 그들은 막대한 이익을 챙겼던 것이다.
 

▲ 사진=뉴시스.


이번 사태에서 삼성의 무죄를 주장했던 쪽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실형 선고 이후 장기적인 경영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시장 경제’가 갖고 있는 ‘양날의 검’이란 속성에 비춰볼 때, 이런 우려가 가져올 수 있는 뜻밖의 부작용에 대해서 조심하는 사려 깊은 모습은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지금의 삼성은 14년 전 SK와 비교할 때, 핵심 주력제품이 사상 최고 실적을 이끌고 있다. 스탠더드앤 푸어스(S&P)와 피치와 같은 국제 신용평가기관은 이를 바탕으로 단기적 충격은 없을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하지만, 향후에 대한 우려를 지금 당장의 파탄인 것처럼 위기를 과장해 행여 이것이 지금의 시장에 충격을 주게 된다면? 심약한 일부의 투자자가 관련 주식을 팔기 시작한다면, 그 주식은 누구의 손에 들어갈 것인가.

14년 전의 소버린 사태와 하나 달라질 것 없는 국제 투자현실은 2015년 삼성그룹에서 또 한 번 확인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국내 주주들한테는 별 다른 이견 없이 넘어가는 듯 했지만, 엘리엇이라는 해외펀드가 등장해 발목을 잡았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의 찬반이 합병 성사의 핵심 요소가 됐고, 그것이 끝내 이재용 부회장과 문형표 당시 국민연금 이사장의 사법처리를 초래하게 됐다.

순환출자와 관련된 국내 재벌들의 지분동향은, 항상 이를 치밀하게 감시하고 분석하는 해외 펀드가 있다는 점이다. 이 펀드들은 해당 재벌 계열사 어느 곳의 주가가 빠지고 있다면 그 시점을 절대 놓치지 않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소위 ‘경영공백’에 대한 위기의식을 조성하는 목적으로, 삼성이 처한 고난을 침소봉대했다가 그것이 만약에라도 주가에까지 영향을 미칠 경우, 어떤 심각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느냐가 바로 한국 경제가 14년 전에 겪은 교훈이다.

오늘도 내일도 ‘그룹의 장래가 불안하다’는 ‘괴담’으로 가득한 뉴스를 가장 들뜬 마음으로 들여다 볼 세력은 과연 누구일지를 생각해 볼 일이다.

몇몇 재벌처럼 이미 순환출자가 해소됐다면 그나마 이런 걱정이 덜하겠지만, 현실은 상당수 재벌들이 아직 전환기에 놓여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지금의 고난을 겪게 된 것에 대해, 2015년 당시 시장경제의 규율을 너무나 가볍게 생각한 것 아니냐는 지적은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삼성과 같은 핵심 경제주체가 법 이전에 시장의 공동규율을 경시한 것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없이 넘어갈 경우 대신 책임을 지는 것은 한국 경제 전체가 된다. 지금의 주가 2000시대가 2005년 이전으로 퇴보할 소지도 안고 있다.

선대 창업주로부터 비롯돼서 그 누구도 손쓰기 어려웠던 난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3대 경영인이 고초를 겪게 됐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수난이 일신의 고초를 넘어 기업의 위기로 확대되지 않게 차단하는 것이다. 가뜩이나 신뢰가 저하된 ‘논객’들은 쓸데없는 호들갑으로 위기를 침소봉대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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