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업인의 트레킹 이야기(3)..."(금강 소나무 길) 가노 가노 언제가노 열두 고개 언제가노"

▲ 박성기 대표

[외부 기고=박성기 도보여행가, 도서출판 깊은 샘 대표] 지난 주엔 울진 십이령 길을 걸었다. 우리 조상들이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치열한 경제활동을 했던 땀이 어린 길이다.

십이령은 보부상들이 바지게에 물건을 싣고 내성을 넘나들던 열두 고개이다. 울진 흥부장을 시작하여 열두 고개를 넘어 영주 소천장까지의 행로를 말한다.

울진, 죽변, 흥부장 등에서 산 소금과 어물, 미역 등을 바지게 가득 지고 십이령을 넘어 내성장(봉화), 춘양장, 소천장에 해산물을 풀고는 필요한 양곡, 포목 등을 가득 지고 다시 되돌아 오는 힘든 길이다.

길은 지나온 삶들을 겹겹이 쌓아놓고 새로운 삶을 받아들인다. 울진, 죽변 등에서 챙겨온 물목들을 바지게에 가득 지고 고달픈 걸음을 했을 선질꾼들의 노래를 되뇌이면서 걸었다. 요즘에야 “금강 소나무 길”이라고도 부르지만 옛 보부상의 숨결이 남아있는 “십이령 길”이 한결 애틋하다.

산허리를 한 구비 돌아들면 바지게를 세워놓고 쉬고 있을 바지게꾼들의 삶이 곳곳에 살아 어느 순간 내게 다가와 다정히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김주영 선생의 『객주』에 오롯이 살아나는 보부상들의 행로가 이 자리로 나를 이끌었다.

▲ 사진=박성기 대표 제공

두천1리 주막거리가 출발지다.

울진, 죽변, 흥부장 등에서 소금, 미역, 어물 등 온갖 물목들을 가득 싣고 모여서 출발을 점검했을 터다. 앞으로의 노정이 바릿재, 새재 등 열두 고개를 넘어 내성(봉화)장으로 떠나려면 만만한 일이 아닐 것이다. 또한 화적떼들에게 물목을 강탈당하고 목숨을 잃은 이가 한 둘이 아닌 지라 물건을 잔뜩 실은 바지게가 한결 무겁다.

돌다리를 건너 바라보니 정자각이 걷는 이들을 반긴다.

정자각 안에는 ‘내성행상불망비(乃城行商不忘碑)’ 두 기가 모셔져 있다. 철판에 글이 새겨진 철비다. 한 기는 ‘내성행상반수권재만불망비(乃城行商班首權在萬不忘碑)’이며, 또 한 기는 ‘내성행상접장정한조불망비 (乃城行商接長鄭韓祚不忘碑)’다. 선질꾼들의 안전한 통행을 도와준 내성에 살던 접장(接長) 정한조(鄭韓祚)와 안동사람 반수(班首) 권재만(權在萬)의 은공을 기리고자 세운 비다.

불망비를 출발하여 산기슭을 가파르게 오른지 얼마 안 되어 효자 비각이 있다.

효자비각에 이르러 효자 심천범 내외의 효심과 꿩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길을 나서 능선 길을 올라 50여 분 더 가니 바릿재다.

바릿재란 소에다 물건을 바리바리 싣고 다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소리 잘하는 선질꾼은 고개를 넘어갈 때마다 힘들어서 쉬는 일행에게 힘든 삭신을 풀어줄 노래 한가락 구성지게 불러봤겠다.

“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가노
지그라미 우는 고개 이 고개를 언제가노”

노래를 읊조리며 바릿재를 지나 내리막길을 재촉하며 걸어 내려갔다.

장평(長坪)이다.

너른 들이란 뜻의 장평에는 주막(酒幕)터가 있다. 이곳을 오고가던 이들이 잠시 들러서 막걸리도 마시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눴을 터다. 물목 지고 가던 바지게꾼이야 이곳에 들러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는 것은 사치였겠다. 바지게 가득 싣고 열두 고개를 넘나드는 그들의 삶에 이렇게 막걸리 편히 마실 호사가 주어졌겠는가.

▲ 사진=박성기 대표 제공

두 물이 만나는 합수 나달을 지났다. 산양이 산다는 곳도 지났으나 산양은 보이지 않았다. 인기척을 느끼면 산양이 숨어버리기에 만나기가 쉽지 않겠지만 개체수도 별로 안 남아 사람들 눈에는 거의 띄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임도가 길게 이어졌다. 구불구불 임도를 따라 한참을 들어가니 찬물내기 쉼터가 있다. 쉼터에는 마을에서 주민들이 나와 비빔밥을 내놓는다. 주린 배와 땀을 식혔다.

찬물내기부터는 산길이다.

길은 골 깊은 낭떠러지를 비켜 돌아 가파른 비탈길을 한동안 올랐다. 땀은 근질근질 머릿속을 헤집어 놓고는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다. 자꾸 눈으로 흘러내리는 땀을 훔친다. 가파른 고갯길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올랐다.

고개에 오르니 여기가 새도 힘들어 쉬어간다는 샛재(鳥岺)다.

산은 저만치 아래서 시원한 바람을 밀어 올렸다. 등골 시린 바람은 마음을 해찰케 한다. 이때쯤이면 힘들었을 선질꾼들은 하나 둘 소리를 내어 노래를 불렀을 게다. 나는 배낭에 얼려놓은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고, 땀 한번 훔치고는 다시 길을 재촉했다. 내려가는 길은 비단길 같다. 숲은 깊어 어느새 서늘하기까지 하다.

숲을 헤치고 길따라 내려가니 조령성황사(鳥岺城隍祠)다.

샛재를 힘들게 넘은 선질꾼들은 정성들여 준비한 제물을 놓고 성황신께 무사 안녕을 빌었다. 가족의 무사안녕이며, 횡액은 피하고 복만 들어오게 해달라고 정성들여 차린 음식을 놓고 제문을 읽었을 것이다. 나도 그들처럼 마음을 정갈히 하고는 손모아 성황신께 빌어본다.

성황사를 지나 너삼밭재를 이르렀다.

▲ 사진=박성기 대표 제공

너삼밭재는 큰 고개가 아니라 마치 평지를 걷듯 편하고 쉬운 길이다. 이제 목적지 소광2리 금강송팬션까지는 저진터재만 남았다. 목적지에 다 와가는데 맘은 벌써 나머지 고개넘어 영주 소천장을 향한다.

쉬엄쉬엄 걷다보니 저진터재다.

너무나 나무가 우거져 땅이 젖어있는 듯해서 생겨난 말 그대로 ‘젖은 터’란 뜻이다. 여기까지 힘들게 왔던 선질꾼들이 바지게를 세워두고 쉬어갔으리라. 오늘은 바릿재, 샛재, 너삼밭재, 저진터재를 지났다. 마음은 느긋해지고 벌써 나머지 고개들을 걸을 계획을 잡고 있다.

오늘 밤은 수많은 별을 벗 삼아 탁주 한 잔 하면서 선질꾼이 되어 노래 한번 불러보리라.
 

방천생을 눈뜬 고개 이 고개를 넘는 구나
가노 가노 언제가노 열두 고개 언제가노
지그라미 우는 고개 이 고개를 언제가노
가세 가세 어서 가세 이 고개를 어서 넘게
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가노
지그라미 우는 고개 이 고개를 언제가노
꼬불꼬불 열두 고개 조물주도 야속하다
가노 가노 언제가노 열두 고개 언제가노
지그라미 우는 고개 이 고개를 언제가노

(울진 십이령 선질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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