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회, 예산낭비 감시하되 정당한 사업은 적극 지원했으면...

▲ 김용기 위원

[초이스경제 김용기 칼럼] 정부와 국회도 마찬가지지만, 지방의회도 지방자치단체의 예산과 감사의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런 만큼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 기관인 문화재단도 지역의회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지역의회는 예산 편성권을 갖고 있고, 또 특위를 구성해 감사를 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핵심을 구성하는 제도로 당연한 것이다.

원칙은 그렇지만,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 의회의 예산권 때문에 겪는 고충은 별개 문제다.

각 문화재단 입장에서 보면 귀중한 혈세를 사용하는 것이니 시의원, 구의원을 설득하는 일을 절대로 불필요한 고생으로 여길 일이 아니고 그만한 보람이 있는 과정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벽에 부딪치는 것을 절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느 신생 재단의 얘기다. 이 재단의 사장은 ‘문화사업’을 새로 시작하기 위해 지역의회를 찾아가 “해당 문화사업은 긴 시간을 보고 투자하고 가꿔 줘야 열매를 거둘 수 있다”고 간곡히 설득했다. 그는 “굉장히 비전 있는 사업인 만큼 앞으로 문화재단이 스스로 운영해 갈 수 있는 ‘먹거리’도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재단은 당초 재단설립 준비팀에서 이 사업의 예산으로 3억 원을 신청하면서 이 예산만 주어지면 재단도 1억 원을 벌어들일 수 있다고 보고했다. 물론 재단설립 준비팀은 공무원으로 구성된 비전문가 들이다.

그러나 이 사업에 대해 실제 배정된 예산은 1억1000만원으로 줄었다. 예산이 3분의 1로 축소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당초 재단이 벌어들이기로 한 1억원의 수입도 달성할 수 없게 됐다.

그런데 이것이 올해 화근이 됐다. 지역 의회가 예산을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나선 것이다. 이유인즉 “1억 원을 벌기로 했으면서 왜 못 벌었느냐”는 것이었다. 3억 원 예산편성을 전제로 벌어들이기로 한 것이 1억 원 수입이라면, 1억 원으로 예산이 줄어든데 따른 수입 기대도 3분의 1로 낮추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이런 이치는 통하지 않았다. 의회는 정치에 따른 대결이 펼쳐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무조건 ‘혈세를 낭비했다’는 정치공세를 펼치면, 여기에 일하는 사람들이 당해 낼 재간이 없다. 설상가상 지역 언론까지 찾아와 ‘왜 돈을 못 벌었냐’는 비판까지 가해 해당 재단은 더욱 난감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고 한다.

일부 재단에선 오케스트라 공연 때 악보 복사비 문제로 소동을 겪는 사례도 있다.

말이 ‘악보 복사비’지 사실은 ‘편곡 비용’이다. 비록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진 곡이지만, 매번 공연 때마다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 등 수 많은 악기들을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대해서는 그때그때 편곡이 이뤄져야 한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상당하다. 문화계에 몸 담은 사람이 아니면 알기 힘든 내용이긴 하다.

의회에서 이 ‘악보 복사비 100만원’이 소동을 초래했다. 수 백 년 된 작품이니 지적재산권도 없는데 왜 복사비가 100만원이나 들어가느냐는 것이었다. 의회에서는 “다른데다 이 돈을 쓰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해 왔던 것이다.

사실 ‘편곡비’에 해당하는 ‘악보 복사비’가 100만원이면 거저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내용을 미리 관계자들에게 물어봤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소동이었다.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공세를 펴니 문화사업을 펼치는 사람들은 그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면서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 또한 지역문화를 꽃피우면 그 지역이 발전하고 상권도 발달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문화재단에 발을 들여놨었다. 그런데 막상 문화재단 사장으로 와서 보니 정치적 진영논리 싸움에 재단이 희생양이 돼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또한 이러다 보니, 상당수의 문화재단 사장들이 적극적으로 사업을 펼치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하지만, 지역 정치인들이 왜 이렇게 사사건건 재단하는 일에 반대를 앞세우게 됐는지, 역으로 생각하면 거기에 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문화재단 뿐만 아니라 복지재단, 시설관리공단을 만들 때마다 의회에서 강한 반대가 나온다.

반대하는 논리는 ‘지역단체장이 당신 사람 거기다 심어놓을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반대를 무조건 틀렸다고 할 수 없는 것이 현재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대부분 문화재단 사장들이 지역단체장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다 보니 문화재단의 사업이 사사건건 반대에 부딪히는 것은 자업자득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진짜 문화전문가로 온 사장들도 함께 의심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이처럼 혈세를 강조하는 지역의원들의 애국심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지방자치 제도가 시행되고 지역의원들은 무보수 명예직 이었던 것으로 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보수를 가져가고 또한 지역의회 의장이면 승용차와 기사가 배치된다고 한다. 이는 전국으로 치면 많은 예산이 소요되는 일일 것이다. 이를 두고 우리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