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업인의 트레킹 이야기(5)...탄광 광부들 떠난 자리엔 '검은 흔적' 아득

▲ 박성기 대표

[외부 기고=박성기 도보여행가, 도서출판 깊은 샘 대표] 2017년 9월 17일. 가을로 접어드는 길목에 ‘일에 지친’ 직장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길이 있다. 필자가 종종 찾는 정선의 '새비재 가는 길'을 떠올려본다.

이제 단풍이 드는 철이 한 달도 남지 않았기에 붉게 물들 가을, 아름답고 멋진 길을 함께 누렸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길을 소개해 본다.

운탄길은 한국의 차마고도((茶馬古道)라 불린다. 구름도 쉬었다 갈 만큼 높은 산 위를 석탄을 가득 실은 차가 탄가루 풀풀 날리며 달리던 길이었지만, 지금은 그림처럼 아름다운 길이다.

사방에 거미줄처럼 얽혀있던 갱도를 메우고 흙을 덮었다. 사람들이 떠나간 그 자리엔 지나온 시간만큼이나 나무들이 자라 키재기를 하고 있다.

탄광이던 검은 흔적은 전설이 되어 아득해져간다.

7년 전 처음 만난 이래로 매년 두 번씩 걸었던 길이지만, 항상 경건하고 새롭다. 길은 태백과 정선, 영월사이의 함백산 만항재를 출발해 백운산과 두위봉을 돌아 새비재까지 36킬로미터 길게 이어간다.

▲ 백운산 자락 하늘이 높고 푸르다. /사진=박성기 대표 제공

길을 걷다보면 치열한 삶을 살아왔던 광부들의 흔적들을 곳곳에서 만난다.

누구의 아버지였고, 형님이었던 이들이 걸어야 했던 힘든 고통의 길이고, 삶의 길이었다. 또한 가득 채워진 탄차가 1200미터가 넘는 천 길 낭떠러지를 옆에 두고 아슬아슬 지나갔던 아리랑 고개 길이었다.

오늘은 마운틴 콘도에서 출발하여 새비재까지 총 23킬로의 여정이다.

가을 하늘은 한없이 깊은 호수 같아서 만지면 깨질 것 같다는 상투적인 이야기가 어색하지 않다.

하이원 리조트 마운틴콘도 주차장을 지나면서 길을 시작한다. 길 따라 늘어선 나무들 이파리가 막 물들기 시작했다. 단풍은 고도를 높여가며 점점 짙어져간다. 시원한 아침공기를 맡으며 씩씩하게 산길을 따라 오르니 화절령(花折嶺, 꽃꺽기재) 삼거리다.

화절령은 정선 사북에서 영월 상동으로 이어지는 고갯길이다. 봄에 진달래꽃과 철쭉이 온 산에 가득하면 지나던 사람들이 꽃을 꺾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삼거리에서 좌측 길로 들어섰다.

도롱이 연못에 도착했다. 탄광 갱도로 인한 지반침하로 생긴 연못이다. 시커먼 연못으로 나무들이 아무렇게 쓰러져있고 낙엽이 가득하다. 나뭇가지 사이 시커먼 물낯에 비친 하늘이 바람에 살짝 일렁인다.

▲ 도롱이 연못 /사진=박성기 대표 제공

예전 광부의 아내가 남편이 무사하기를 도롱뇽에게 빌었다는 전설의 도롱이 연못은 노루, 멧돼지 등 야생동물들의 훌륭한 샘터로 환경생태계의 보고다.

도롱이 연못 앞길은 네 갈래이다. 오른쪽 아래로 100여 미터 내려가 산정 자연습지인 아롱이 연못을 보고는 다시 올라와 정자를 돌아 두위봉 방향으로 나아갔다. 두위봉(1,466m)은 산 모양새가 두툼하고 두리뭉실하여 두리봉이라고도 부른다.

두위봉 사거리다.

오던 길로 직진하면 두위봉으로 가고 좌회전을 하면 신동으로 넘어간다. 우측으로는 하이원 리조트 폭포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가는 길옆으로 아직도 예전 운락국민학교의 흔적이 남아있다. 해발 1200미터가 넘는 고지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곳임을 짐작케 한다. 지금에야 다색의 아름다운 세계이지만 당시에는 세상이 온통 검은 곳이었다. 멀리서 사내아이들의 공차기며 여자아이들 고무줄놀이 노랫가락이 들리는 듯하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서 우측 두위봉 방향 새비재를 향해 길을 잡고 나섰다.

두위봉 자락을 둘러가는 길은 40여분 오르막이다. 청명한 가을바람은 걷는 내내 내 등을 밀어댄다. 바람에 실려 오르막을 오른다.

언덕을 올라 첩첩한 산들이 연봉을 이루어 용이 꼬리치듯 휘몰아치고 치달리는 큰 모습을 본다.

▲ 두위봉 사거리를 지나 첩첩의 연봉들 /사진=박성기 대표 제공

“아~”, 끝없이 펼쳐진 광활함이여. 아무것도 거칠 것이 없는 광대무변이다.
수 천 수만 년 태초의 산들이, 산 넘어 산 또 산 넘어 산들이 짓쳐 내달린다.
카메라가 담기에는 너무 크다. 눈으로 모든 것을 담아서 큰 소리로 외쳤다.

“아~ 좋다”

길은 한 귀퉁이를 돌면 새로운 모습이 나오고, 또 한 번 돌면 다른 모습이 나오고, 홀린 것처럼 그렇게 가을을 마구 내뱉는다.

마주하고 자전거를 탄 무리들이 한때가 지나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운탄길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는 다운힐로 각광을 받는 길이다.

처음 이곳을 왔을 때는 사람 한 명을 만나지를 못했다. 농 삼아 길 중에 사람을 만나면, 특히 할머니나 어린 아이를 만난다면 분명 등골이 오싹할 거라 말했다. 마운틴 콘도 주차장을 출발해서 도착까지 인가가 전혀 없다. 23킬로를 걷는 동안 시설은 전혀 만나지 못한다. 그러기에 물이나 먹을 것들을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처음 간단히 준비했다가 크게 낭패를 본 기억이 있어서 이 길을 올 때는 더 준비를 많이 한다.

▲ 10km 지점의 물 마실 곳 /사진=박성기 대표 제공

10킬로쯤 걸으면 유일하게 마실 물을 만난다. 산 정상에서 길 위로 계곡을 따라 조그마한 폭포를 이루며 떨어진다. 길 중간 중간에 흐르는 물은 있으나 탄이 섞여 나오기에  마시질 못한다. 이곳 말고는 따로 마실 물이 없기에 식수도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길은 느끼지 못할 만큼 완만한 내리막길이다. 그렇게 해발 800미터를 내려가다가 다시 새비재가 가까워지면 완만하게 오르막으로 돌아선다.

아직 새비재에 도달하지 않았는데 산중이라 해가 지면 어둠이 스며들 듯 금세 어두워진다. 캄캄해지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 발걸음을 재촉해서 부지런히 나아간다.

시간이 지나가며 하늘에 별들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새비재 고개에 다다르자 벌써 앞이 안보일 정도로 캄캄하다. 광활하게 펼쳐진 새비재 고랭지 채소밭은 이미 눈에 보이지 않는다.

▲ 새비재에 다다를 즈음 해가 지는 모습 /사진=박성기 대표 제공

밤하늘은 벌써 수많은 별들로 가득하다.

새비재 고개를 넘으며 한동안 산자락에 걸터앉은 북두칠성과 같이 걸었다. 어릴 적 집 마당에 누워 별들과 대화를 나눴던 시절이 불현 듯 떠오른다.

내 꿈을 갖고 떠났던 별똥별은 돌아와 다시 내 마음을 가지고선 저쪽 하늘로 쉭- 지나간다.

7시 50분 엽기소나무가 있는 타임캡슐 공원에 도착했다. 오전 11시 30분에 시작했던 길이 오후 7시 50분에 끝이 났다.

자연은 위대하다.

석탄을 캐가고 난 자리에 온갖 나무와 풀들이 뿌리를 내리고 새롭게 생명을 잉태시키며 아름다운 힐링의 숲길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태고적 신비를 간직한 새비재 가는 길은 고요하고 장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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