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인니, 일본돈으로 위기 모면...장차 美中韓 모두 긴장시킬 듯

 “재빠른 일본”

 
일본이 최근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인도와 인도네시아 형제국에 긴급자금을 수혈해가며 위기 극복을 도와줘 그 배경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일본이 위기국의 구세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는 아시아 역내에서 일본의 위상을 크게 높여줄 뿐 아니라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의 환심을 사는 다목적용 카드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 주목된다. 아울러 일본의 이같은 보폭 확대는 한국에게도 경계의 대상이 되긴 마찬가지다.
 
10일 글로벌모니터에 따르면 아시아 위기국인 인도와 인도네시아를 향한 일본의 대응이 발빠르다. 지난 9월5~6일 러시아에서 열린 G20회의에서 여타 선진국들은 미국 양적완화 축소 여파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도와 인도네시아에 대해 위기 해소대책을 마련해주기는 커녕 두 나라를 질타하기에 바빴다. 그간 경상수지 적자 등 위기관리를 소홀히 한 탓에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만큼 지금이라도 건전한 거시정책과 구조개혁에 나서라며 이 두 나라에 채찍을 가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달랐다. 주요 20개국 정상회의가 열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일본은 위기에 빠진 인도에 슬그머니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인도와 맺은 통화스왑규모를 3배 이상 늘려주겠다는 내용의 협약을 맺어 준 것이다. 그리하여 인도로 하여금 최악의 경우 500억 달러의 외환을 가져다 쓸 수 있도록 했다. 엄청난 구원이다.
 
일본은 인도네시아에도 비슷한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지난 8월말로 만기가 된 일본과 인도네시아간 120억달러 규모의 스왑라인을 연장해 준 것이다. 
 
이로써 일본은 최근 미국 양적완화 때문에 어려움을 겪던 인도-인도네시아 형제국에는 하늘같이 고마운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이같은 일본의 태도는 지난 1997년 말 아시아 위기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행보다. 당시 한국도 외환위기를 맞아 일본에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었다.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던 김영삼 정부 조차도 국가가 어려움에 처하자 일본에 구원을 요청했으나 일본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었다. 
 
그런 일본이 이제는 아시아 위기국들에게 돈으로 환심을 사고 있는 것이다.
이와관련, 글로벌모니터는 “총보다 돈의 위력이 강하다”고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
 
물론 일본이 인도-인도네시아 두 나라에 선심을 쓰는 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인도와의 각별한 인연이다. 글로벌 모니터에 따르면 일본과 인도간의 사이가 보통이 아니다. 인도와 일본의 우호관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인도는 영국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하고 있었고 일본은 인도를 도왔다. 이를테면 인도는 제국주의를 물리치기 위해 다른 제국주의의 도움을 받았다. 영국이라는 공동의 적을 놓고 인도와 일본이 합세해 싸웠다는 것이다.
 
인도-일본간 우호관계의 하이라이트는 종전 직후 열린 도쿄 전범재판이다. 당시 영국령 출신의 판사 라다비노드 팔은 일본의 모든 전범들에게 무죄를 판시했다고 한다. 12명의 연합국 재판관중 유일하게 소수의견을 낸 것이다. 그는 이어 일본을 전쟁에 끌어들인 것은 미국이라면서 “전범 재판은 패자에 대한 승자의 복수일 뿐”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 지난 2007년 8월. 당시에도 일본 총리였던 아베 신조는 인도 방문길에 팔 판사의 후손들을 찾아 갔다고 한다. 사형을 면했던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이자 일본의 국가 원수 자격으로 아베 총리는 팔 판사의 후손에게 “오늘날에도 많은 일본인들이 팔 판사를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그로부터 6년 후 다시 총리자리에 오른 아베는 인도에 돈으로 보은을 하게 된 것이다.
 
인도네시아와 일본 간의 관계도 보통이 아니다. 인도네시아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유망한 신흥시장이었다. 인도네시아는 계속해서 사상 최대의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끌어들였다. 또 인도네시아에 가장 많은 돈을 투입한 곳이 일본이었다. 
 
하지만 이 FDI가 한순간 인도네시아의 국제수지를 가장 위협하는 요인으로 돌변했다. 인도네시아는 161억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FDI를 끌어들였지만 선진국들은 배당금 등 본원소득 수지에서 257억달러의 적자를 안겨주기에 이른다. FDI가 몰려드는 초기에는 돈과 일자리가 넘쳐나는 것처럼 보였지만 막상 일정 투자규모가 넘어선 뒤엔 새로 들어오는 돈 보다 배당금 등의 명목으로 빠져나가는 돈이 더 많아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인도네시아에 일본이 스왑을 연장하며 구세주 역할을 해 준 것이다.
 
그러면 일본이 이들 인도와 인도네시아에 이런 은공(?)을 베풀 수 있게 한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 
 
그 첫 번째는 국제 준비통화로서의 엔화가 갖는 막강한 지위다. 일본 엔화를 갖고 있으면 언제든 유로화나 파운드, 달러화를 일정 비율로 바꿀 수 있다. 따라서 인도나 인도네시아 입장에서 보면 엔은 금이나 달러와 같은 아주 소중한 통화다. 그런 점에선 일본은 중국보다도 강하다. 중국도 남을 도울 여력은 있지만 문제는 위안화가 아직은 국제 준비통화로서의 지위를 갖고 있지 못하다.
 
둘째는 자국 진출기업 보호이자 아시아 역내 위상강화다. 인도네시아의 예를 들어보자. 이나라엔 일본 기업이 수도 없이 진출해 있다. 인도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인도나 인도네시아를 돕는 것은 그 나라에 진출한 일본 기업을 보호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면 일본의 이런 행보는 아시아 국제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우선 중국을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 역내 주도권을 잡으려는 중국을 긴장케 할 뿐 아니라 중국은 이번 기회를 계기로 위안화의 위상 강화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으로부터는 당장 환심을 살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양적완화 축소로 인해 신흥국 위기가 현실화할 경우 미국이 욕을 먹게 돼 있는데 일본이 이런 리스크를 막아주는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미국에게도 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엔화가 너무 강해질 경우 달러화의 위상을 넘볼 수도 있는 까닭이다.
 
일본의 활개치기는 한국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의 주요 수출국이 일본의 수중에 넘어가게 되면 한국엔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모든 전제는 양적완화를 근간으로 한 아베노믹스가 100% 성공해 일본이 건재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IMF(국제통화기금)와 독일의 지적대로 잘못된 양적완화로 일본 경제가 망가지고 이것이 글로벌 위기로 전이라도 된다면 일본의 이같은 돈 공세를 통한 환심사기 전략도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