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칼럼] 북한은 지난 8월29일 사상 처음으로 일본 상공을 넘는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날은 경술국치일이기도 하다.

북한은 이날의 미사일 발사가 경술국치를 의식했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이런 사실이 별로 거론되지 않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포퓰리즘적인 엉뚱한 반응이 나오는 경우를 경계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상 처음으로 북한 미사일이 하늘 위를 통과한 일본의 충격은 말할 것도 없었다. 경보가 울리고 일부 지역의 대피명령은 물론이고, 일부 철도의 운행도 정지됐다.

북한의 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통과할 때는 대기권 밖으로 날아갔으니 영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떻든 자신들의 하늘을 지나갔다는데 무사태평할 수는 없다.

충격이 히스테리가 돼서 한국에 화풀이하는 조짐도 보인다.

최근 일본 언론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발언이라고 하면서 전하는 내용들이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단히 화를 냈다”거나 “불쾌감을 드러냈다”고 보도한데 대해 청와대는 한미 정상회담 배석자를 인용해 “그런 적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청와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기구를 통한 800만 달러 의약품 지원에 대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정도 반응만 있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일본 언론의 이런 보도행태를 의도적으로 보고 있다. ‘한미 간의 이간’과 함께 한국 내 여론 갈등을 일으켜 한국정부가 북한에 대해 강경해지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앞서 사학 비리 파동으로 인해 지지율이 29%로 급락했다가 북한 문제로 인해 최근 다시 50%로 반등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응은 미흡한데 아베 총리는 확고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식의 인식이 퍼지면 아베 총리에게 나쁠 것은 없는 형편이다.
 

▲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뉴시스.


일본 언론의 행태가 너무 심하다고 판단한 청와대에서는 연일 반박하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일부 관계자는 “백악관에 문재인 대통령 팬클럽이 생길 정도로 문 대통령의 대응 방식에 대한 신뢰가 커지고 있다”고 까지 말한 것으로 국내언론은 전하고 있다.

일본 언론이 전하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을 액면 그대로 다 받아들이기도 어렵고 그럴만한 가치를 찾기도 어렵지만, 팬클럽이 생길 정도라는 청와대 인사 발언 역시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즈니스에 오래 몸담은 사람으로, 역대 미국 대통령이 지녔던 외교적 관행을 쉽게 무시한다는 점이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이번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성명에도 이런 평가가 담겨 있다.

그런 사람이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내뱉은 단어들에 대해 집중보도하는 것은, 해당 언론들이 핵심적 문제에는 그만한 지면을 할애할 만큼 취재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갈수록 격화되는 미국과 북한의 갈등이 실력 충돌로 이어지는 경우를 가장 우려해야 되는 것은 마땅하다. 특히 한국의 입장이 그렇다.

그러나 진정으로 해법을 찾아내려면 궁극적으로 사태의 흐름이 어디를 향하는지를 냉정히 판단해야 한다.

현재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러시아가 특히 올들어 지속적으로 발언권을 강화하고 있다. 거기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까지 한반도의 평화적 해결 중재자를 맡겠다고 나서고 있다. 네 번째 총리 임기가 유력한 메르켈 총리는 독일의 최고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유럽의 정상으로도 주목되고 있다.

포퓰리즘의 폭풍이 한 풀 꺽인 유럽은 이제 메르켈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중심으로 세계 4강의 한축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북한이 이렇게 세계 4강을 전부 한반도 정세에 불러들이면서까지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미국으로부터 체제보장을 받아내겠다는 것이다.

만약 북한이 원하는 것을 미국으로부터 받아내고 나면 그 다음은 무슨 차례인가. 아마도 한국과,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 재정립이 될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지난 1970년대 중국과의 외교정상화처럼 미국의 행보를 뒤따라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일본에 있어서, 북한과의 외교정상화에는 피할 수 없는 매우 특별한 문제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대한 청구권 문제다. 한국과는 1965년 한일정상화 때 해결한 것이지만, 북한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북미 다음의 북일 관계는 또 어떻게 될 것인가. 경술국치일에 일본 하늘을 넘어간 북한 미사일이 이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 언론은 더욱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 언론까지 덩달아 호들갑을 떨 일이 절대 아니다.

앞으로 한국과 관련된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시나리오들을 살펴보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취재여력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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