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광원 경제기자의 '추석 연휴' 이야기가 있는 길 걷기<시리즈-2>

[초이스경제 윤광원 기자] 기자는 트레킹이 취미다. 그렇다고 멀리 다니지는 않는다. 그저 수도권, 서울에서 대중교통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곳들을 열심히 찾아다닌다. 그것도 ‘이야기’가 있는 곳이어야 한다. 기자처럼 직장인이 손쉽게 닿을 수 있는 ‘경제적인 코스’ 들을 걷고 있다. 열흘에 달하는 긴 추석연휴, 기자의 ‘경제적인 발걸음’ 들을 10편의 시리즈로 옮겨본다. <필자 주>

인공하천에도 자연과 생명이 살아 숨 쉰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청계천을 만나지만, 최상류인 청계광장에서부터 최하류인 한양대 뒤쪽 중랑천과 만나는 지점까지, 풀코스를 제대로 걸어본 사람은 많지 않다. 

과거 비가 쏟아지던 날, 청계천을 걸어본 필자는 이 하천의 비밀을 하나 알았다. 

상류는 비가 많이 오면 통제되지만, 하류지역은 걷기에 큰 문제가 없다. 상류는 폭이 좁고 양쪽이 벽으로 돼있어 비가 많이 오면 금방 물이 불어 위험하지만, 하류는 폭이 넓어 천변 갈대밭 일부와 징검다리 정도만 잠길 뿐이다. 

복원된 청계천은 하류에서 다시 물을 끌어올려 상류에서 재방류한다. 그 양을 조절하면 하류는 폭우가 와도 물이 급격히 불지 않는다.

청계천은 너무 인위적으로 복원된 하천이지만, 하류지역은 시골 자연하천 비슷한 풍경이다.

지하철 2호선 한양대역 3번 출구로 나오면 성동교가 보인다. 그 옆에 하천변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고, 오른쪽으로 보물 제1738호로 지정된 조선 초기의 아름다운 돌다리 ‘살곶이 다리’가 중랑천을 가로지르며 놓여 있다.

살곶이 다리는 한자명으로 전곶교(箭串橋)라고 한다. 조선시대 다리로는 가장 길었으며 제반교(濟盤橋)라고도 불렀다. 중간 부분은 훼손된 채 양쪽 가장자리만이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1420년(세종 2년) 왕명으로 공사를 시작했으나 강의 너비가 너무 넓고 홍수를 이겨내지 못해 중단했다가 63년 후인 1483년(성종 14년)에 완성하였다. 길이 78m, 너비 6m 규모다.

‘살곶이’라는 명칭은 뚝섬이 왕실의 매 사냥터이자 말 목장 겸 기병들의 군사훈련장이었던 데서 비롯됐다. 왕들의 화살이 날아가 꽂힌 뚝섬 일대를 ‘살곶이 벌’이라 했고 그 앞 다리여서 살곶이 다리라 했다.

‘왕자의 난’을 일으킨 아들 태종 이방원에게 분노한 태조 이성계가 고향 함흥에 가 있다가 태종의 거듭된 귀환 요청에 돌아오던 중, 태종을 겨냥해 화살을 쏜 곳이라 해서 살곶이 다리라 했다는 설도 있지만, 이곳이 함경도와 연결되는 교통로가 아니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 청계천 하류의 풍경 /사진=윤광원 기자

살곶이 다리와 인근 살곶이 공원을 지나면, 청계천과 중랑천 합수지점이 나온다. 청계천을 따라가는 길은 왼쪽으로 고가도로와 자전거 도로가 지나고, 천변에는 넓은 갈대밭 사이로 좁은 산책로가 있다. 갈대밭 사이 산책로가 마치 시골의 오솔길 같다.

제법 넓은 하천은 왜가리, 황조롱이, 청둥오리, 원앙 등 각종 철새들의 낙원이다. 그만큼 생태계가 살아있다는 뜻이다. 곳곳에 가로놓인 징검다리를 오가며 천변을 따라간다. 건너편엔 신설동행 지하철 2호선이 지나고 있다.

첫 번째 다리인 ‘고산자교’ 인근 정릉천이 합류하는 지점을 지나면, 천변이 좁아진다. 왼쪽 도로 위로 이상하게 생긴 구조물이 보인다. 판잣집 테마촌이다. 지난 1950~60년대 청계천의 상징이던 판잣집 촌을 재현해 놓은 이곳은 색다른 볼거리다.

판잣집 테마촌엔 40~60 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연탄가게 ‘청계연탄’, 만화가게인 ‘또리만화’, 구멍가게 ‘광명상회’에다 당시의 방안과 교실 등을 꾸며놓았다. 

연탄난로 위의 양은주전자, 동그란 나무 밥상에 놓인 양은냄비와 노란 양재기, 벽에 걸린 까만 교복과 교모, 연탄과 연탄재, 벽장을 가득 채운 만화책, 오래된 영화포스터, 교실 안 나무 책·걸상, 교과서와 참고서들, 양은도시락, 실내화와 신발주머니, 가게 안 팔각형 유엔성냥, ‘맥콜’, ‘환타’, 남양분유, 번데기 통조림, 쫀드기와 달고나, 가게 앞에 세워놓은 리어카…

이곳엔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들 일색이다. 교복도 입어보고, 교실에서 사진도 찍으면서 학창시절로 돌아가 볼 수도 있다.

판잣집 테마촌 앞은 ‘청계천문화관’이다.

다시 ‘두물다리’를 건너 교각 밑으로 내려오면 ‘청혼의 벽’이다. 건너편에서 프로포즈를 하고 이곳에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두 사람의 이름을 새긴 철판을 달고, 남산타워처럼 자물쇠도 채워 놓는다. 서울시설관리공단에 연락하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좀 더 걷다보면, 과거 복개천 당시의 삼일고가도로 교각이 2개 남아있다. 어찌 보면 흉물스럽기도 한 이것들을 남겨놓은 것은 자연과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막개발’ 시대의 교훈을 잊지 말자는 뜻이리라.

여기서 성북천이 합류하고, ‘비우당교’가 있다. 이제 청계천은 하류보다 훨씬 좁아졌지만, 물길은 여전히 자연하천 분위기가 남아있다.

좀 더 가다보면, 왼쪽 벽에 작은 분수가 있고 그 옆에 ‘물 허벅(제주도의 물동이)’을 등에 진 제주여인의 석상이 서 있다. 청계천 복원을 기념해 제주도가 기증한 것이다. 제주의 상징 돌하루방도 빠지지 않는다.

두산타워와 ‘오간수교’가 보인다. 이제 상류가 가까워졌다.

이제 청계천은 어느 새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이 된다. ‘정조대왕 능행반차도’ 같은 벽화가 그려진, 인공적인 느낌의 하천이다. 

오가는 사람들도 훨씬 많아지고 각종 볼거리도 늘어난다.

‘버들다리’, ‘마전교’, ‘수표교’, ‘광통교’ 등을 차례로 지나면 청계광장이다. 이렇게 청계천 풀코스를 걷는데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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