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통위원 결정에 한은이 반발, 부총재가 '소수의견' 남긴 사례도

▲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모습. /사진=뉴시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요즘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처럼 한 마디 한 마디를 조심하는 사람은 달리 찾기 어렵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 뭔가 전보다는 확실하게 얘기한다싶으면 바로 “그런 의미는 아니고”라는 부연 설명이 붙는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이주열 총재는 지난달 29일 한국은행 출입기자단 워크숍에서 “경기 회복세가 지속되면 지금 물가수준에 국한하지 않고 중기적 흐름에서 완화 정도의 조정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한국은행의 2.0%에 미달하더라도 기준금리를 현재의 1.25%보다 높일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될만한 얘기다. 이는 상당히 긴축적인 발언이 된다.

그러나 이 총재는 곧이어 “두세 달 전에 언급한 메시지와 달라졌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얘기를 듣고 있는 기자들에게 곧 금리를 올릴 것처럼 기사를 쓰지 말아달라는 당부다.

지금 한국 금융시장에서 기준금리 1.25%가 적정한지 아니면 너무 낮은지는 물가뿐만 아니라 가계부채, 그리고 금융시장 자금흐름 등을 통해 판단해야 한다.

특히 외국인의 자금 흐름은 지난 6월 이후 거듭해서 매우 강력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6월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가 연방기금금리를 1.00~1.25%로 올렸을 때다. Fed의 금리인상으로 인해 한국과 미국의 금리격차는 0~0.25%포인트로 축소됐다.

Fed는 올해 한 차례 더 금리를 올릴 의사를 갈수록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미간 금리격차의 역전이 임박한 것이다.

외국계 금융회사 또는 국부펀드 중심으로 한국 채권을 대량으로 매각하는 일이 6월 이후 몇 차례 시장금리 폭등을 초래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중앙은행(ECB), 영란은행(BoE) 등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긴축전환 가능성을 밝힌 후다.

일부에서는 전적으로 지정학적 불안 때문이라며 애써서 내외금리격차 축소 때문인 것을 부인하고 있지만, 주어진 요인에 대한 반응이 이전보다 더욱 거세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통화정책을 맡고 있는 한국은행에게 선택의 여지는 매우 좁혀져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런 선택을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내년 말 3월 끝나는 이주열 총재의 임기와 관련돼 있다는 지적이다.

만약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지 않았다면, 그의 임기는 내년 2월 끝났을 것이다. 이주열 총재는 이때로부터 한 달을 더 근무하다 물러나게 돼 있었다.

그러나 정치상황이 급변해 박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파면이 확정됐고, 문재인 대통령이 5월 취임했다.

청와대는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지만, 기획재정부가 금리인상을 싫어한다는 ‘불변의 진리(?)’는 역시 변화가 없었다.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기준금리가 너무 낮다”는 발언을 하자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즉각 “한국은행 독립성을 침해 말라”고 반박했다. 김 부총리가 이 발언을 하는 옆자리에는 이주열 총재가 앉아있었다.

한국의 현실에서,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리려고 할 때는 한국은행 총재의 탁월한 대외조정능력이 발휘돼야 한다. 지금의 이 총재에게는 상당히 힘에 벅찬 일이다.

남은 임기 6개월에 금통위 회의는 네 번 정도 더 열릴 것으로 보인다. 절대 짧다고만 할 수 없는 기간인데, 그의 대외 설득능력이 관건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의 ‘빚내서 집사라’ 정책을 자동문 금리인하로 호응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이 총재다. 심지어 중앙은행 발권력을 동원해 국책은행 자본금을 확충하는 일에도 ‘입은 반대하되, 행동은 찬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문제에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그것 참 좋은 정책인 것 같다”며 노골적으로 통화정책에 간섭을 했었다.

이런 처신으로 일관해 온 이 총재가 정권이 바뀌어서는 긴축을 하는 중앙은행으로 돌변하기가 여의치 않은 것이다. 과거는 과거일 뿐, 하루하루 금융시장의 긴박함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원칙을 보여주면 될 일이겠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이처럼 총재가 진퇴양난이라면, 금융통화위원들이 한국은행의 고충을 덜어주는 고민을 해 볼 필요가 있다. 명목상이라 해도 한은 정책은 어디까지나 총재가 아닌 금통위원들의 합의로 결정된다.

당연직인 이주열 총재와 윤면식 한은 부총재를 제외한, 5명 금융통화위원의 합의로도 충분히 금리인상을 결정할 수 있다. 물론, 그래도 기재부는 매우 못 마땅해 할 것이다. 김동연 부총리는 그런 속내를 이미 충분하게 금융시장에 전달해 놓은 상태다.

총재 부총재 빼놓고 금통위원들이 합심해 금리를 결정한 것이 전례 없는 일도 아니다. 4명의 금통위원들이 금리를 내리려고 하는 것을 한은 총재와 부총재가 반대하다 마침내 부총재가 의사록에 반대의견을 남기는 어처구니없는 사례가 한은 역사에 남아있다. 10년을 조금 넘은, 13년 전의 일이다.

당시 금통위원들은 ‘아무개 사단’이라는 인맥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무개는 당시 경제부총리의 이름이다.

이런 비슷한 일을 또 벌인다는 건 매우 매끄럽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상황에서 한은이 무장해제 상태로 있다가 더 큰 난국을 초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