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경제담당 여기자의 짠한 추석이야기...돈보다 인연 중시하는 추석됐으면

[초이스경제 이영란 기자] 추석이다. 다들 추석이라고 고향에 간다. 고향을 찾아가는 기자에게 반겨줄 부모님은 이미 안 계신다. 시부모님도 모두 세상을 떠나셨다.

시부모님은 10남매를 낳아 기를 만큼 금슬이 좋은 편이셨다. 시아버님은 젊어서는 더러 큰소리도 치셨다고 들었지만 막내며느리인 내가 결혼할 때는 완전히 달라진 분위기였다. 말끝마다 “너네 시어머니가 말이다~” 하는 식으로 시어머님을 위하셨다.

그런 시어머님이 늘그막에 위암 수술을 하고 다행히 완쾌되셨으니 얼마나 좋으셨을까. 조금 몸이 좋아진 시어머님은 시아버님 생신을 이틀 앞두고 장을 보러 나섰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사고 직후 119로 병원에 옮겨졌지만 회복 불능 판정이 났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셨다.

시어머님이 당신의 생신 준비를 하다가 사고를 당하신 일 때문에 시아버님은 몹시 가슴아파 하셨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시아버님은 차츰 아픔에서 회복되셨고, 자식들이 많았음에도 시골 생활을 고집하셨다.

그로부터 2년 후. 시아버님은 늘 다니던 경로당에 자전거를 타고 나가셨다. 때마침 윷놀이 판이 벌어졌고, 시아버님도 당연히 어울리셨다. 윷놀이를 하면서 막걸리를 두 잔 정도 드셨다고 한다. 다른 어른들의 얘기를 나중에 종합해보면 이러했다.

“그 사람(시아버님)이 갑자기 집에 가야 한다는 거여. 오후 3시밖에 안 됐으니 이번 판이나 끝내고 가라고 했더니만 안 된다고, 그냥 간다는 거야. 지금 당장 가봐야 할 급한 일이 있대. 급한 일이 있기는 뭐가 있어.”

윷놀이 판을 뒤로 한 채로 시아버님은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하셨다. 보통 저녁밥을 먹을 때가 돼서야 돌아오는 분이 그날은 일찌감치 경로당을 나선 것이다. 정말 급한 일이 있었다면 몰라도 집에서 처리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시아버님은 결국 집에 돌아오지 못하셨다. 경로당에서 10여분 동안 자전거를 몰았을까. 몇십 년을 달리던 익숙한 길에서 자전거와 함께 뒹굴고 말았다.

흙으로 만든 둑이었다면 툭툭 털고 일어나거나 다리를 다치는 정도였을 것이다. 하필이면 시아버님이 넘어진 장소는 며칠 전 콘크리트 타설을 마친 둑이었다. 자전거가 구르면서 머리를 콘크리트 벽에 부딪친 시아버님은 의식을 잃었다. 시골 길이어서 그로부터 두세 시간이 지나서야 지나가던 행인에게 발견됐다. 시아버님은 시어머님처럼 119에 실려 병원으로 가셨다.

일흔이 넘어서도 건강하셨던 시아버님의 사고 소식은 자식들은 물론 시골 동네에서도 큰 충격이었다. 특히 시아버님이 대낮에 왜 황망히 경로당에서 나섰는지가 가장 큰 의문이었다. 막걸리 두어 잔에 술이 취할 리도 없고, 하필이면 콘크리트 둑에서 자전거를 들이박았을까.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시아버님의 임종을 위해 급하게 병원을 찾은 자식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시아버님이 누워계신 병상이 공교롭게도 시어머님과 같은 병원, 같은 병실, 같은 침상이었던 것이다. 119에서 그 병원만을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두 분이 같은 병실, 그것도 6개의 침상 가운데 똑같은 침상에 모셔질 확률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주위에서는 “돌아가신 시어머님이 바깥에서 모셔갔다”는 얘기가 돌았지만 현실주의자인 남편은 “우연함이 겹친 결과”라고 잘라 말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우연의 일치라고 설명하기는 어렵다는게 기자의 생각이다. 정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작용했던 것일까.

이번 추석은 경제적으로 형편이 좋든 아니든, 가족 친지간 인연을 소중히 하는 추석이 되었으면 하는 게 기자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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