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국정감사 1] '관심 밖 증인', 일단 불러놓고 보자는 행태 근절해야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그는 원래 훌륭한 건물에 자신만의 집무실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들어오면 비서에게 잠시 방문객을 사절 한다 일러두고 눈을 붙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수 십 명의 사람들과 같은 방에 있는 지금은 작은 의자와 책상 하나가 그의 자리다. 책상에는 그의 이름을 적은 팻말이 놓여있다. 이 팻말 때문에 다른 자리로 갈 수도 없다.

식사 후 졸음이 쏟아지는 건 피할 길이 없어 가끔씩 고개를 떨궜다. 다행인 것은 아무도 그가 조는지 마는지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누가 말을 거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국회 회의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모 대기업 계열사 사장의 모습이다. 그는 이날 오전 10시에 출석해 오후 5시에 돌아갈 때까지 세 차례 질문을 받았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행여 말실수라도 하지 않도록 그의 신경체계는 초비상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졸음이 쏟아질 때는 꿈속에서라도 정확한 어휘를 골라야 했다.

한 의원이 “당신 그룹은 대단히 짜다”며 인색한 그룹임을 지적했다. 번개 같은 속도로 증언대에 나선 그는 “의원님께서 저희 그룹을 ‘보수적’이라고 평가하셨는데, 상당히 사세확장적인 경영을 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짜다’는 표현을 조건반사적으로 ‘보수적’이라는 한자어로 바꾸는 두뇌활동은 질문을 듣고 발언대에 나가는 5초 이내 시간에 이뤄졌다.

마침내 오후 5시 위원장의 선처가 이뤄졌다.

“더 이상 질문할 의원이 없으면 가셔도 됩니다.”

그는 국회를 떠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해봐서 유익했다”며 들뜬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사람이 어려운 순간에 닥치면 본능적으로 상황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높인다. 그래야 견딜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로부터 하루 이틀이 지나면, 정신 상태는 정상으로 돌아와 좁은 증인석에 묶여있던 것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내버리게 된다. 그의 몸과 마음에는 당시 자유롭지 못하게 얽매였던 기억이 가장 크게 남게 된다. 그래서 한번 국회 증인이나 참고인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후 한사코 국회 출석을 안하려들게 되는 것이다.

이 대기업 사장의 경우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어떤 증인은 국회에 불려나가 하루 종일 질문 한번 못 받고 돌아오는 사람도 있다.

이 증인을 신청한 국회의원이 과연 누군지, 질문 하나 못 받고 앉아있는 증인을 볼 때마다 드는 의문이다.

자기가 증인신청을 했으면, 멋쩍어서라도 아무 질문이나 하나 해야 마땅한데 지금까지 몇몇 국회의원들은 그런 상식조차 내버리기 일쑤였다.
 

▲ 국회 국정감사에서 증인이 답변하는 모습. /사진=장경순 기자.


이번 연휴가 끝나면 곧 올해의 국정감사가 시작된다.

국회의 국정감사는 국민들의 눈과 귀를 붙들어 매는 정치싸움의 와중에 소홀히 취급되는 국정 이곳저곳을 뒤지는 일이다.

몇몇 증인들이 일없이 불려나가서 무료하게 앉아있었다고 해서 국정감사의 의미를 모두 매도할 수는 없다. 또한 많은 의혹을 받고 있는 기업에 있어서는 국정감사장이 처벌을 받는 장소가 아니라 오히려 해명을 할 수 있는 기회의 자리다.

그러나 주요 사장급으로 불려나오는 증인들은 그 시간에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다. 그가 국회에 묶여있는 동안 그의 회사는 결재를 받아야 할 수많은 직원들이 일처리를 못하고 시간만 보내게 된다.

무엇보다 질문을 전혀 못 받거나 겨우 한 두 개 받을 증인이라면 굳이 하루를 모두 날려가며 국회에 부를 것이 아니라 별도의 공식 답변 장치로 대신할 필요가 있다.

어떤 국정감사장은 증인으로 불려나온 사장들이 너무 많아서, 사장의 답변을 돕기 위해 나온 직원들의 자리가 부족할 정도다.

몇몇 유명한 ‘회장님’들이야 한번 출석하면 의원들이 ‘뜨거운 관심(?)’을 보이니 질문 한번 못받고 돌아올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회장들은 오히려 지나치게 국회를 오지 않으려는 속마음을 감추지 못해 지탄을 받고 있다.

불려는 왔는데, 질문도 못 받는 사장들은 국회의원이 덮어놓고 ‘일단 불러보자’해서 온 경우다. 부르기는 했는데 막상 질문시간이 되니, 그에게 단 10초의 문답시간을 할애하기도 아까워진 것이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일해야 할 사람을 불러내는 일을 이제 그만 둘 때가 됐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