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업인의 ‘추석’ 트레킹 이야기<12>...양동마을은 ‘상업화’ 덜 된 채 한국전통 잘 간직한 곳

▲ 박성기 대표

[외부 기고=박성기 도보여행가, 도서출판 깊은 샘 대표] 지나온 시간을 바라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과거로부터 이어온 마을의 역사를 수백 년 동안 지켜온 가옥을 통해 바라본다. 오랜 동안  흘러왔던 시간은 다시 우리의 후대를 위해 장구(長久)하게 흐른다. 오늘의 시간을 어떻게 담고 흘려보낼 것인가는 우리의 몫이다.

긴 추석 연휴다. 필자가 2016년 4월2일 다녀왔던 경주 양동마을을 소개하려 한다. 민속마을인 양동마을은 추석 연휴 분위기와 잘 어울릴 만한 곳 중 하나로 생각돼서다.

▲ 양동마을 전경. /사진=박성기 대표

양동마을은 조선시대 양반마을의 전형으로 안동하회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마을의 시작은 손소(孫昭) 선생이 이 마을에 들어와 정착하고, 또한 손소 선생의 맏 따님에 장가를 왔던 이번(李蕃)이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이후 500여년을 두 가문이 양동마을에 안거하면서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어 보기에도 거룩하다.

작년 안동 하회마을을 다녀온 이후 더 와보고 싶었던 곳이 양동마을이다. 다른 민속마을들이 상업화의 물결로 과하게 바뀌어 제 모습을 많이 잃었는데, 양동마을은 원래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비교적 늦게 알려져서 손이 덜 탄 것도 있겠지만 조상에 대한 양동마을 사람들의 자부심이 없었다면 여기도 다른 민속마을처럼 변했을 것이다. 본디 것을 지켜온 마을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품으며 천천히 노정(路程)을 시작한다.

밤새 한숨도 못 잤다. 전부터 기다렸던 것이어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지난 시간을 따라가는 발자취이기에 더 마음이 진지했는지 모른다.

아직 미명조차 보이지 않는 4시 30분 행장을 꾸려 집을 나섰다.

▲ 마을 풍경. /사진=박성기 대표

이른 아침 양동마을은 안개가 가득하다. 천천히 발을 옮기자 안개가 걷는 이의 발을 따라 마을로 걸음을 옮긴다. 자욱한 안개와 더불어 아득하게 보이는 초가집들 사이 골목길을 따라 조선을 시간여행 한다.

이내 안개는 아침 해의 재촉에 천천히 무산을 준비한다. 해가 머리만 내밀 때 들어서니 아침을 준비하는 몇몇 집들만 보일 뿐이다.

▲ 거림골 식당의 아침식사. /사진=박성기 대표

너무 일찍 도착해서일까 배가 몹시 출출하다. 둘러봐도 문을 연 식당이 없다. 무작정 마음이 가는 곳에 들어가 문을 두드렸다. 마음 좋게 생긴 아주머니가 곧 준비한다고 조금만 기다리란다.

얼마 지난 후 청국장이 나오고 게 눈 감추듯 정신없이 먹었다. 지금껏 먹어본 중 최고다. 기대하지 않았던 최고의 아침식사를 하였다. 거림골 식당은 내가 먹어본 최고 식당의 하나로 각인되었다.

▲ 양동마을 풍경. /사진=박성기 대표

양동마을은 하촌, 거림, 안골, 갈구덕, 물봉골 등 물(勿)자 형태의 네 골짜기를 따라 종택과 정자들이 오랜 세월을 두고 고고한 모습으로 길손을 반긴다. 형산강이 서남방향으로 휘둘러 안아 돌고, 마을 뒤의 설창산 문장봉의 산등성이가 물(勿)자 형국으로 뻗어 내렸다. 자유롭게 걷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내 발걸음의 흐름 따라 살펴보기로 했다.

▲ 심수정. /사진=박성기 대표

하촌의 심수정과 거림의 영당, 두곡고택을 따라 오른쪽부터 시작한 시간이 9시다. 마을을 감싸 안고 자욱하던 안개가 점점 물러나기 시작하자 하나씩 펼쳐진 집들이 눈에 가득하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고택들 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 마을길. /사진=박성기 대표

조선시대의 삶의 형태를 그대로 간직한 마을이다. 양반과 상민이 공존하는 마을의 형태는 여느 곳들의 양반집들과 달랐다.

심수정(心水亭)과 두곡 고택(杜谷 古宅), 근암 고택(謹庵 古宅), 사호당 고택(沙湖堂 古宅)을 둘러보고 마을 안쪽 높은 언덕에 자리 잡은 서백당 앞에 섰다.

▲ 서백당. /사진=박성기 대표

서백당(書百堂)은 양동마을의 중심이다. 하루에 참을 인(忍자)를 백번을 쓰며 인내를 기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자기를 되돌아보고 수양하는 선비의 고아한 정신이다. 손소 선생이 입향(入鄕)하여 이후 500여년을 이어왔다. 대문을 들어서자 오랜 세월 서백당과 같이한 600년 된 향나무가 우뚝하다.

▲ 서백당 600년 향나무. /사진=박성기 대표

문설주 하나에도 예스러운 삶의 흔적이 남아있는 월성 손씨(月城孫氏)의 대종가이다. 몇몇 남지 않은 15세기 조선의 가옥중 하나라니 귀중한 우리 보물의 보존의 가치를 새삼 되새기게 했다. 이곳을 외가로 둔 회재 이언적 선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서백당을 둘러보고는 계속 낙선당(樂善堂), 경산서당(景山書堂), 대성헌(對聖軒), 무첨당으로 길을 이었다.

▲ 무첨당. /사진=박성기 대표

무첨당(無忝堂)이다.

물봉골에 있는 가옥으로, 회재 이언적의 아버지 이번(李蕃)이 처음 터를 정하고 살던 집이다. 양동마을 가운데서도 서백당과 함께 풍수지리학적으로 가장 길지로 여겨지는 터에 위치해 있다. 본래 별당으로 지어진 것으로 별채의 기능을 중시하면서, 세련된 가구기법이 돋보이는 곳이다.

▲ 향단. /사진=박성기 대표

무첨당을 둘러보고 관가정(觀稼亭)을 지나 향단에 이르렀다.

향단(香壇)은 물(勿)자 형태의 가장 앞쪽으로 남향한 줄기를 타고 자리했다.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경사진 비탈면에 자리한 집이다.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이 경상도 관찰사로 재직 중 어머니를 모시던 동생에게 지어준 집이다.

집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외부에서 보면 매우 과시적이고 화려하지만 내부를 살펴보면 답답할 만큼 폐쇄적인 구조라 한다.

안을 보기 위해 대문 앞에 섰으나 문이 잠겨있다. 혹 내가 온 오늘만 잠겨있다면 아쉽지만 다음에 와서 다시 보면 된다. 하지만 사유지라 불편함 때문에 그랬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이곳이 개인의 소유로 한정할 수 없는 우리의 문화재이기에 더 그러하다.

심수정에서 출발하여 마을길을 따라 이곳저곳 두루두루 살피며 양동마을과 함께한 시간이었다 .

양동마을의 중심인 송씨 종가인 서백당과 여강 이씨 대종가인 무첨당, 어머니에 대한 효심과 동생에 대한 우애가 서린 이언적 선생의 향단, 우재 손중돈 선생의의 사가(私家) 관가정, 독락당 등 오늘 돌아본 곳들을 지난 순서로 정리해보니 참 많이도 다녔다.

500년을 이어오며 소중하게 보존해온 양동마을의 높은 의식을 보았다. 서백당과 향단 등 고택들을 보면서 우리가 가꾸고 보존해야할 귀중한 가치가 어디 있는가 생각해본다. 우리의 문화재를 정성껏 지켜서 후대에 전달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임을 느끼는 여정이었다.

▲ 옥산서원. /사진=박성기 대표

늦은 점심을 먹고 다음 여정인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있는 이언적을 모신 옥산서원으로 서둘러 발을 옮겼다.

양동마을을 이렇게 걸었다.

심수정~두곡고택~근암고택~사호당고택~서백당~낙선당~경산서당~대성헌~무첨당~영귀정~설청정~관가정~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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