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본 베트남 뿐만 아니라 인도와도 갈등을 겪는 예사롭지 않은 상황

[초이스경제 장경순 만필] 중국이 문화혁명에서 벗어난 1980년대 이후의 성장과정은 자신들의 역사 춘추전국시대 진(秦)나라와 흡사하다.

춘추시대에 들면서 드디어 제후 가운데 하나로 대접받기 시작한 진은 대륙 최대강국 희진(晉)의 왕도정치에 적극 호응하는 맹방 역할을 했다.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이면서도 1980년대 이후의 냉전시기에 미국편에 서 있던 모습과 같다. [진(晉)을 한국어로 발음이 같은 진(秦)과 구별하기 위해 이 나라의 성씨인 희(姬)를 붙인다.]

주나라 천자와 왕도를 위협하는 남방 초나라에 맞서 희진은 중원제후들의 동맹을 이끌었고, 진(秦)이 여기에 적극 협력했다.

초나라의 위협은 초나라 역시 점차 중원화되면서 사라졌다. 소련의 붕괴와 함께 전 세계가 공산주의 확산 위협에서 벗어난 것과 비슷한 상황을 맞게 됐다.

중원을 위협하던 초 역시 중원 질서의 일원이 되자, 뜻밖에도 이 때까지 맹주국이었던 희진의 존재 필요성에 대해 열국(列國)이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희진 내부 유력가문들의 갈등이 겹쳐 최대강국 희진은 한, 위, 조로 갈라지고 말았다. 여기서부터 전국시대가 시작된다.

이때까지도 진(秦)은 국가체제에서 중원보다 훨씬 정비가 덜 된 나라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임금인 효공이 영입한 인물이 법가(法家)로 유명한 상앙이다. 상앙의 정치는 가혹하기도 했지만 진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현실화시키는데 성공했다.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뉴시스.


덩샤오핑의 개방 정책 이후, 장쩌민·후진타오 전 국가주석 때까지 중국의 고도성장 과정이 춘추시대 목공과 전국시대 효공 때의 진나라 발전 단계에 해당한다.

문제는 효공의 아들 혜공, 즉 진나라 최초로 왕위를 칭한 혜문왕의 시대부터다. 진나라 국력을 의식해 전국시대 나머지 6개 국가가 연합해 맞서는 상황을 맞게 됐다. 유명한 책략가 소진이 6국을 유세하고 다니며 성사시킨 합종 동맹이다.

진나라가 나중에 천하를 통일하게 되는 제국의 기틀을 보전하느냐, 아니면 다시 서쪽 끝의 궁벽한 오랑캐 국가로 전락하느냐 갈림길을 혜문왕 시대에 맞게 된 것이다.

지금 중국이 처한 사정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 세계 1, 2위 경제대국을 다투는 미국과의 갈등이야 패권흐름에서 피할 수 없던 일이라 해도 일본, 베트남 뿐만 아니라 인도와도 갈등을 겪는 것은 의외의 상황이다.

차이가 있다면, 진나라 혜문왕은 ‘진이 천하 제일강국’이란 인식이 확산된 상태에서 6국의 합종 동맹을 맞이하게 됐지만, 시진핑 주석의 중국은 아직 제1 강대국의 지위와는 거리가 멀다.

확실히 최대강국이 되기 전에, ‘대국굴기’와 같은 구호와 남중국해 일대에서의 팽창방침이 동시에 여러 나라의 견제를 자초하고 말았다.

이와 같이 전 세계와 맞서고 있는 국면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세계사를 공부한 사람들은 진나라 혜문왕의 해결책이 무엇이었는지를 바로 알 수 있다. 소진의 라이벌로 유명한 장의의 연횡책이다. 혜문왕이 기용한 장의는 6국을 돌아다니며, 각국이 진나라와 동맹을 맺는 것이 더욱 이익이라고 설득하고 다녔다. 장의는 전권을 지닌 재상으로 과감한 양보도 해가면서 여섯 나라를 하나씩 합종 동맹에서 이탈시켰다.

과연 이런 연횡책이 시진핑 주석에게도 유효할 것인가.

사드배치로 인해 중국과 경제, 외교적 갈등을 겪고 있는 한국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상당히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한국의 입장에서 사드는 북한 핵과도 관련된 문제다. 그러나 중국은 이것을 철저히 단순하게 미국과 중국 간 미사일 패권의 문제로만 간주하고 있다. 이 때문에 크게 저하된 한국과 중국의 우호관계가 좀체 해결될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중국이 보여주는 태도는 ‘우리는 우리식으로 갈뿐이고 따라오려면 따라오고 아니면 말라’는 투다. 여섯 나라마다 일일이 다니며 각국 사정에 맞게 이해를 설명하는 연횡책을 쓸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인다.

시진핑 주석과 혜문왕의 대응 방식이 다른 이유는 각자 처한 국내사정 때문인지도 모른다.

혜문왕은 선왕 대의 상앙을 제거하는 갈등을 겪기는 했지만, 그의 국내 통치가 이렇다 할 도전을 받았다는 얘기는 전하지 않는다.

반면 시진핑 주석은 중국 건국 후의 오랜 인맥집단들인 태자당, 공청단, 상하이파 등이 얽힌 정치 갈등을 집권 전 뿐만 아니라 지금도 겪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외국과 갈등을 낮추는 정책을 하고 싶어도 중국내 민심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특히 지금까지 대국굴기를 강조해 온 마당에 갑자기 외국에 양보하는 것으로 중국 국민들에게 비쳐지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시 주석이 확실한 국내통치기반을 갖춘다면 대외적으로 유연해지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달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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