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광원 기자의 '추석 연휴' 이야기가 있는 걷기<10>...먹거리 경제도 풍족한 곳

[초이스경제 윤광원 기자] 기자는 트레킹이 취미다. 그렇다고 멀리 다니지는 않는다. 그저 수도권, 서울에서 대중교통으로 쉽게 갈 수 있지만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곳들을 열심히 찾아다닌다. 그것도 ‘이야기’가 있는 곳이어야 한다. 기자처럼 직장인이 손쉽게 닿을 수 있는 ‘경제적인 코스’ 들을 걷고 있다. 열흘에 달하는 긴 추석연휴, 기자의 ‘경제적인 발걸음’ 들을 열편의 시리즈로 옮겨본다. 오늘 마지막 편을 내 보낸다. <필자 주>

‘무너미’와 그 변형인 ‘무네미’라는 이름이 붙은 고개는 전국 곳곳에 많이 있다. 공주 ‘무너미고개’, 청원 ‘무너미고개’, 용인 ‘무네미고개’, 설악산 ‘무너미고개’, 서울 관악산 ‘무너미고개’, 인천 장수동의 ‘무네미 고개’ 및 서창동 ‘무네미길’ 등등.

서울 수유리(水踰里)도 원래 ‘무너미’인데 한자로 옮겨 수유리가 된 것이라고 한다.

이 지명들은 ‘물을 넘는다’는 뜻이 있다. 옛날에는 교통이 발달하지 않아서 물을 만나면 이를 넘거나 우회하는 길이 생기게 되는데, 그런 길에 대한 일반 명칭이라는 것이다.

반론도 있다. 산을 뜻하는 고어인 ‘무레’와 ‘너미’가 합쳐진 말로, 산등성이를 넘는 고개라는 의미를 지녔다고 한다.

어느 설이 맞는지 필자가 판단할 능력은 없지만, 관악산(冠岳山) 무너미고개를 넘다보면 두 설이 다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관악 무너미고개는 관악산과 삼성산을 잇는 가장 낮은 산등성이 고갯길이다. 동시에 서울대 옆을 흐르는 도림천(道林川)과 안양예술공원(옛 안양유원지)을 거쳐 안양천으로 흘러드는 삼성천(三聖川) 물길이 나눠지는 곳이기도 하다. 이 고개를 넘으려면 물길을 몇 번씩 건너야 한다.

무너미고개 계곡트레킹은 서울대 정문 옆, 관악산등산로 입구에서 시작하는 게 일반적이다. 지하철2호선 서울대입구역에서 내려 3번 출구로 나오면, 관악산 등산로 입구인 서울대 정문으로 가는 마을버스들이 여러 대 있다. 이 버스를 타고 서울대 앞에서 내려 관악산공원파출소 앞을 돌아 등산로를 따라 간다. 서울대 옆 관악유원지는 무너미고개에서 흘러내려온 도림천 물이 원천이다.

도림천은 안양천의 제1지류다. 관악산과 삼성산 중간골짜기에서 발원하여 관악구 신림동을 지나 신대방역·대림역을 따라 흐르다가 양천구 신정1동의 신정1교 부근에서 안양천에 합류된다. 길이는 14.2㎞인데, 지류로 대방천과 봉천천이 있다.

그 물줄기를 따라 호수공원을 지나 계속 오른다. 오른쪽은 삼성산(三聖山), 왼쪽은 관악산이다. 무너미고개로 가려면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들을 넘나들면서 도림천을 따라가야 한다. 도림천은 제법 수량이 있어 여름철엔 항상 물놀이하는 사람들이 많다.

완만한 계곡길을 오르다보면, 널찍한 공터인 제4야영장에 이른다. 여기서 많은 등산객들이 왼쪽 연주대로 빠지고, 길은 호젓해진다. 다시 삼막사(三幕寺) 가는 등산로가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삼성산행 등산객들이 가버리면, 주말에도 인적이 드물다.

▲ 무너미고개: 삼성산 기슭에서 본 평촌 시내 /사진=윤광원 기자

다시 15분 정도면 고갯마루다. 무너미고개 정상은 참으로 볼품없다. 잠시 앉아 숨을 돌릴만한 곳도 없고,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날 정도의 좁은 고개다.

그러나 반대편으로 넘어가면, 곧 반가운 물길이 나타난다. 삼성천이다.

삼성천은 서울 금천구 시흥동 동쪽 삼성산에서 발원하여 시흥계곡을 따라 흘러 안양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하천이다. 시흥천(始興川)이라고도 한다. 발원지는 삼성산이지만 관악산 팔봉능선에서 흘러내린 물이 하천 형성에 큰 도움이 된다.

삼성천을 따라 울창한 숲속으로 평탄한 하산길이 이어진다. 신발을 벗고 맑디맑은 계곡물에 발을 담근 채 시원한 막걸리 한잔을 들이키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계속 내려오면 서울대 수목원 후문에 닿는다. 수목원(樹木園)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오른쪽 다리 건너에 우회 등산로가 있다.

우회등산로는 이 트레킹코스의 또 다른 묘미다. 삼성산 허리를 가로지르는 길이기에 이제까지의 평탄한 코스와 달리 제법 가파른 오르막과 아기자기한 암릉 등, 등산의 맛도 조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관악산 주능선의 장엄한 암봉들을 조망할 수 있고, 평촌 시내를 한눈에 굽어볼 수도 있다.

서울대 정문을 출발한지 약 3시간이면 안양예술공원에 도착한다. 지난 2005년 옛 안양유원지에 다수의 조각 작품 등 각종 조형물을 설치해 예술공원으로 탈바꿈시킨 곳이다.

원통형으로 길게 이어진 통로를 걸을 수 있게 만든 조형물, ‘우리들의 안양’이라 새겨져 있는 바위 몇 개를 모아 쌓아올린 작품, 삼성천 건너 둑에 예쁜 꽃모양의 조형물을 다수 붙인 작품, 인공폭포 등이 인상적이다.

삼성천은 여름엔 물놀이 인파로 붐비고, 천변에는 맛 집들도 즐비하다. 먹거리 경제가 발달한 그 곳에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들이 숨어있다.

유원지 중간쯤, 마을버스 종점 주차장 뒤 보호각 안에 있는 석수동 마애종(磨崖鐘)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마애종’, 즉 바위에 새긴 종이다.

달아놓은 종을 스님이 치고 있는 장면을 거대한 바위에 묘사한 것으로, 신라말 또는 고려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경기도 지방문화재 제92호로 지정돼 있는데, 국내 유일의 마애종이란 희귀성을 감안하면 좀 더 대접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삼성천을 따라 조금 더 가면 중초사교 다리와 ‘김중업박물관’이 나오고, 그 바로 뒤 오른쪽에 옛 (주)유유의 정문이 있다. 이 문을 들어가면 바로 왼쪽에 당간지주와 3층 석탑이 보인다.

중초사 옛터인 이곳 당간지주(幢竿支柱)는 보물 제4호로 지정된 귀중한 문화재다. 신라 흥덕왕(興德王) 2년(827년) 건립된, 만들어진 연도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국내에서 유일한 당간지주이기 때문이다. 그 옆에 있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4호 중초사지 3층 석탑은 고려 중기의 석탑이다.

다시 중초사교를 건너 삼성천변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700m 정도 가면, 오른쪽에서 삼막천이 합류한다. 두 물줄기는 합쳐져 안양천으로 흘러들어간다.

삼막천 합수지점에서 징검다리를 건너 삼막천 상류지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곧 아치형 돌다리가 보인다. 조선 정조대왕이 수원 화성 행차를 위해 건립했다는 유서 깊은 다리 만안교(萬安橋)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8호로 조선후기의 대표적 홍예석교로 평가된다.

만안교를 건너 아스팔트 대로를 따라 500m 정도 가면, 수도권전철 1호선 관악역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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