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20주년 앞둔 한국 경제-4> 경제회복 없는 정부, 설 땅 없어

[초이스경제 최원석 경제칼럼] 기자는 1997년 이맘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서울의 한 종합일간지에서 당시 과천에 있는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 출입기자를 하다가 막 남대문에 있는 한국은행으로 출입처를 바꾼 때였다.

당시 불광동에서 살던 기자는 과천이 너무 멀다면서 경제부장을 졸라댄 끝에 비교적 회사에서 가까운 한국은행이라는 출입처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제 출입처까지 긴 거리를 오가지 않아도 되는 만큼 한결 편안한 출입처였다. 3년 전에 출입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온 탓에 한국은행이 낯설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런 ‘안위(?)’는 오래가지 못했다. 나라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곳간(외환보유고)이 비어가고 있었고 대한민국 주식회사는 1997년 11월22일 급기야 부도위기를 견디다 못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에 이른다. ‘국치의 날’이다.

당시 한국은행과 재정경제원 출입기자들은 좌불안석이었다. 쓰러져가는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가 생긴다는데 언론사들 마다 어느 기자가 초대 금융감독위원회 출입기자로 갈 것이냐가 관심사였다. 각 신문사 경제기자 중 재정금융통 기자가 초대 금융감독위원회 출입기자로 가긴 가야 하는데 선뜻 가고 싶어 하는 기자는 별로 없었다. 무수히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고 거기서 살벌한 취재 전쟁을 해야 할 텐데, 누가 그런 곳에 상주하러 가고 싶었겠나.

그러나 예외 없이 각 언론사에서 출입기자들이 정해졌다. 그 얼굴이 그 얼굴이었다. 한국은행이나 재정경제원에 출입하던 기자들이 하나 둘 씩 차출되어 왔다. 그 때부터 2000년 대우그룹 구조조정이 대충 마무리 될 때까지 그 금융감독위원회에서는 숱한 취재전쟁이 벌어졌다.

‘국치 기간’ 중 길지 않은 기간에 여러 지방은행이 문을 닫았다. 사고뭉치였던 30여개 종금사들엔 모두 철문이 내려졌다. 합병의 길을 걷는 대형은행도 줄을 이었다. 외환은행 같은 곳은 이상한 외국자본에 팔려나가면서 많은 뒷말을 낳기도 했다. 대우그룹과 같은 빅5 재벌이 공중 분해되기도 했다.

기자와 동료들이 ‘질곡의 역사’ 한 중심에 섰던 기억은 아무리 잊으려 해도 기억을 버리기가 불가능하다.

기자는 지금도 당시 정부를 원망한다. 기자가 1994년 재무부(재정경제원, 기획재정부의 전신) 출입기자를 할 때는 이런저런 금융회사를 마구 허가내주는 재무부가 미웠다. 재무부에는 이런 저런 인허가를 받으려는 금융사들이 줄을 이었다.

게다가 1996년 재정경제원 출입기자를 할 때는 한국의 무역수지 적자, 더 크게는 경상수지 적자가 한해 300억 달러를 넘어서는 데도 적자규모가 GDP(국내총생산) 대비 일정 비율만 넘지 않으면 된다면서 떠들어 대는 관료들이 미웠다.

간혹 “이렇게 적자가 나도 나라가 온전하겠느냐”고 장차관에게 따지기라도 하면 이상한 논리를 들이대며 빠져나가기만 하던 고위공직자들, 그들 중 일부는 지금도 정치권의 고위직을 꿰차고 앉아 호의호식 하고 있다.

기자가 새삼 20년 전 얘기를 꺼내든 건 정부가 제대로 된 방향을 잡아야 위기국면으로 향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벼랑끝 탈출’을 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일부 금융권이나 국민이 주인인 기업들엔 과거 정부에서도 논란이 됐던 인사들이 아직도 커다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산업은행 같은 곳은 아직도 낙하산 인사가 사라지지 않고 금융지주회사가 해체된 지 오래인데도 산업은행장을 회장으로 부르며 이상한 직제를 유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경우 재벌 개혁을 할 거면 확실히 해야 하는 데 얼마나 진전이 이뤄졌는지 감이 안잡힌다. 재벌의 일감몰아주기가 얼마나 줄었는지, 부실기업 구조조정은 얼마나 진척됐는지도 불투명하다.

이제 정부는 조만간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내놓는다고 한다. 얼마나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것인지가 주목된다.

지금 대한민국 주식회사는 외부 선진국의 금리인상 파장, 무역 장벽 확대, 후진국으로부터의 기술 추격, 그리고 북한의 핵전쟁 위협 등 온갖 어려움에 처해있다. 정부가 입체적이고도 확실한 대책을 세워 다시는 20년전 외환위기, IMF 구제금융 체제와 같은 비극을 맞지 않도록 나라를 잘 이끌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정쟁만 일삼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새 정부도 이제는 “확실한 실력”을 보여줘야 할 때다. 경제회복 없는 인기는 오래가지 못한다. 바로 하루 전, 10일에도 대한민국 증시에선 외국인들이 한국 채권을 투매하고 돈을 빼갔는데, 이것이 지금 한국이 처한 엄중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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