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국정감사 3] 기관장이 난타당할 때 뒷줄 직원들은 담소중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국정감사가 오랜만에 부활된 첫 해인 1988년 기사 가운데 하나다.

정보 관련 일을 하는 기관에 국정감사가 진행됐다. 1987년의 6월 민주항쟁으로 5공화국이 물러난 직후다. 야당의원들은 도청 의혹에 관련한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현장에 있던 이 신문의 기자 눈에 국회의원들을 조롱하는 기관장과 직원들 모습이 들어왔다. 이런 분위기는 곧 뒤바뀌었다. 상임위원회 국회의원 중에는 당시 제1야당 총재인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가 있었다.

김대중 총재는 발언 순서가 되자 “불법 도청을 안했다고 하니 그 말은 믿겠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 불법도청에 시달리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나. 국회의원들이 질문을 하는데 키득거리기나 하고!” 하면서 이 기관 사람들의 불성실한 자세를 지적하기 시작했다.

산만하던 국감장 분위기가 일거에 뒤바뀌고, 내내 조롱하는 표정을 하고 있던 직원들의 자세도 모두 달라졌다.

평화민주당과 불매운동 소동까지 벌였던 신문의 기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신문사 기자는 만약 그 자리에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없었다면 지극히 한심한 국감이 될 뻔했던 상황을 전달했다.

국회의 국정감사는 국회의원들과 대상기관의 기관장이 문답을 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상임위원회의 국회의원 20여명이 질문하면 기관장 한 사람이 대답을 한다.

그럼에도 국정감사장에는 기관장 자리 하나만 놓이지 않는다. 그의 등 뒤에는 소속기관의 간부 수 십 명이 함께 들어와 앉는다.

이렇게 많은 간부들이 들어와 앉는 것은 기관장 혼자 앉아있기 썰렁해서가 아니다. 정신적 응원을 하러 온 것도 아니다. 기관장 혼자서 자기 기관의 모든 업무를 실무수준까지 다 파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이 아주 구체적인 부분까지 질문을 하면, 기관장이 일일이 다 파악할 수 없으니 담당실무부서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다른 간부들이 대거 동행하는 것이다.

기관장을 따라온 사람들은 국감장 안의 간부들뿐만 아니다. 회의실 밖에는 더 많은 직원들이 대기하고 있다. 때로는 안의 간부들만으로 자료가 부족하면 바깥의 직원들에게 연락해서 다른 자료를 가져오거나 인쇄물을 만들어 회의장 안으로 들여보내기도 한다.

기관장의 국감 답변을 위해 이렇게 다른 직원들까지 대거 동원되는 것을 무조건 인력낭비라고 할 수는 없다. 국민의 귀중한 세금이 혹시 낭비되고 있는지를 1년에 한번 철저하게 점검하는 자리인데, 기관장 혼자 “실무적 내용이라 일일이 다 알지 못 한다”는 핑계로 넘어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국정감사를 성공적으로 받는 기관의 모습은 앞줄의 기관장뿐만 아니라 뒷줄의 직원들까지 의원들 질문에 집중하면서 필요한 자료를 기관장에게 전달하느라 분주하다. 혹시 자신의 업무에 대한 질문이 나올까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들이다.

이런 기관의 기관장은 그날 하루 답변을 하는 동안, 뒤를 돌아다볼 필요도 없이 무난하게 국정감사를 마친다. 미리 국회에 오기 전에 보고를 받은 내용 이외의 질문이 나왔어도 그 의원의 발언이 끝나기 전에 이미 필요한 자료는 그에게 전달이 된다.
 

▲ 국정감사를 준비하고 있는 국회 회의실. /사진=뉴시스.


반면 대단히 고통스러운 국정감사 속에 만신창이가 돼서 돌아가는 기관장도 있다. 워낙 큰 문제가 발생한 기관이라면, 국정감사에서 이런 신세가 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벌어진 일의 심각성에 비해 더욱 처참하게 두들겨 맞고 돌아가는 기관장도 있다. 이렇게 매를 자초하는 기관의 특징은 국감 내내 기관장 뒷줄의 직원들은 자기만의 국정감사를 관전만 하고 돌아간다는 점이다.

국회의원들로부터 자신들이 평가받기 위해서 국정감사장에 나왔는데, 이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국회의원을 평가하다가 돌아간다. 국회의원에 대한 평가는 뒷줄에 앉은 자신들이 할 일이 아니라 옆줄에 있는 시민단체 사람들이 할 일이다.

적성으로 보아 사표를 내서 시민단체의 국정감사 감시단으로 들어왔어야 하는 사람이 월급을 받고 간부라고 해서 기관장 뒷줄에 앉아있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질문이 무식하다는 조롱이 흔히 나오는데, 정말 무식한 국회의원도 있을 수 있지만, 국회의원의 질문이 무식한 건 한편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

이 기관의 실무를 잘 모르는 국민들이 자신의 세금이 잘 쓰였나 감시하기 위해 국회의원을 통해 질문을 하는 것이다.

실무를 잘 모르는 국민을 충분히 납득시키는 것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세심하게 답변방식을 고민해야 하는데, “국회의원이 무식하니 저 딴 질문이나 한다”며 키득거리고 옆 사람과 잡담만 나누고 있다.

이런 직원들 눈에는 질문하는 국회의원이 한심한지는 모르겠으나, 그날 국감장 안에서 제일 한심한 처지에 있는 사람은 따로 있다.

바로 이들 직원의 수장인 기관장이다. 국회의원들 질문에 제대로 답변 못해서 쩔쩔매고 있는데 뒷줄의 직원들은 기관장 도울 생각은 안하고 국회의원 품평회나 하고 있다.

자신은 다른 직원들 가운데 파묻혀서 눈에 안 띌 것으로 여기지만, 상임위원장이나 국회의원들 자리에서는 산만한 뒷줄 직원들의 모습은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나 여태 국회의원들이 국감 중 이런 직원들을 직접 지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앞서 소개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1988년 사례는 매우 이례적이다.

국회의원들은 10분 밖에 안되는 짧은 시간에 굳이 이름 석자도 안 알려진 직원들을 지적할 이유가 없다. 산만한 직원들 때문에 분노가 증폭됐으면, 직원들을 대표하는 기관장에게 질문 공격을 하면 된다. 이미 직원들의 도움도 제대로 못 받아서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처지로 납작 엎드려있는 기관장이다.

올해도 많은 기관들이 국회의 국정감사를 받아야 한다. 아침부터 시작해 때로는 저녁 8시, 혹은 자정까지도 이어지는 국정감사는 해당기관들에게 대단히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로한 일이다. 고된 시간이 이어지다보니 긴장이 풀어지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맨 앞줄, 국회의원들의 시선 한 가운데 앉아있는 기관장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다. 기관장이 이날의 고된 하루를 선방하면서 보내는 중요한 비결가운데 하나는 자신과 일심동체가 될 직원들과 동행하는 것이지, 국회의원들에게 얼마나 두들겨 맞는지를 관전해 줄 사람을 데려오는 것이 아니다.

국감장에서 수렁에 빠진 기관장에게 한줄기 지혜의 빛을 던져주는 직원은 대단히 깊은 인상을 남겨주는 법이다.

국정감사장에 절대로 데려가면 안되는 직원도 있지만, 꼭 데려가야 할 직원도 있다. 다음에 소개할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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