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국정감사 4] J과장 덕택에 장관은 뒤를 볼 필요도 없었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에 자주 출석하는 정부부처 소속 공무원인 J과장은 마른 편에 꼼꼼해 보이는 외모를 갖고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진행되는 상임위 회의 오른편 그의 자리를 거의 떠나는 적 없이 회의에서 오가는 모든 문답을 들으며 계속 작은 쪽지에 뭔가를 적어 이사람 저 사람에게 나눠줬다. 국정감사 때뿐만 아니라 매번 상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할 때마다 그의 자리는 변동이 없었다.

그의 쪽지를 받은 사람들은 거기에 뭔가를 추가로 더욱 적거나 가방에서 다른 자료를 꺼내 앞좌석의 장관에게 넘겼다. 장관은 그걸 보면서 의원들 질문에 답변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거친 많은 쪽지들이 장관에게 전달됐지만 이 쪽지들의 출발점은 항상 옆줄의 J과장이었다.

사실 그가 앉은 자리는 공무원들 지정석은 아니었다. 취재진이나 보좌관, 시민단체에 배정된 자리였다. 장관 뒤편 수 십 자리나 되는 공무원석을 놔두고 그는 꼭 오른쪽 옆줄에 앉았다. 그는 항상 바닥에 수북한 서류철을 쌓아놓고 있었다.

안면도 없던 그와는 국회 취재를 올 때마다 그의 서류철들을 여러 번 넘어 다니면서 점차 대화도 나누고 서로 인사도 하게 됐다.

공무원들 중에서도 특히 자부심이 높다는 이 부처 사람들은 국회에 출석할 때 모습도 다른 공공기관들을 압도했다.

장관이 답변하는 동안 뒷줄 간부들이 딴전을 부리는 일부 기관과는 전혀 달랐다. 전원이 자신의 직무에 관련된 질문이 나오는지를 지켜보고 있다가 J과장의 현장지휘에 따라 착오 없이 대응했다. 장관 이하 차관과 차관보, 많은 주요국장들이 출석해 있지만, 이날 현장의 사령관은 J과장이었다.

이렇게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이 부처의 장관은 의원들 답변을 하는 동안 한 번도 뒤를 돌아본 적이 없다. 순서에 따라 국회의원이 질문을 시작하면 J과장은 바로 예상되는 질문 내용이 있는 서류철을 찾았다. J과장을 거쳐서 해당 국장의 의견이 첨부된 쪽지는 의원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장관 앞으로 전달됐다.

이 부처가 국회에 출석한 모습은 공장의 기계들이 착오 없이 작동하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이렇게 프로정신이 투철한 정부부처의 모습은 지금이 아니라 십 여 년 전이다.

언젠가부터 이 부처의 국회 출석도 다른 맥 빠진 기관들과 닮아갔다. 장관은 구체적 실무에 대해 자신 있고 소상하게 밝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말씀이니 열심히 하겠다”는 발뺌만 자주 늘어놓았다.

뒷줄 간부들의 모습도 전혀 달라졌다. 자신이 장관을 도와줄 때가 오는지를 진지하게 기다리는 게 아니라 마냥 회의시간 끝나기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됐다.
 

▲ 국회 국정감사에 기관장과 함께 출석한 직원들. /사진=초이스경제.


회의장을 능수능란하게 통제하던 J과장은 수년전에 퇴직해서 산하기관으로 옮겨갔다. 그가 하던 일을 이어받은 사람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였다.

몇 년 동안 이 부처 장관에 대통령 측근이 임명되는 일이 생기다보니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 알맹이 없는 답변만 일관하는 장관이 유독 대통령에 시비가 될 만한 질문이 나오면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면서 적극적으로 “확실히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대통령 관련 질문이 아니면 다시 장관은 “좋은 지적이니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는 맥없는 사람으로 돌아갔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 첫 번째 국정감사에서 이 부처가 10여 년 전의 자신감 넘치고 빈틈없이 착착 돌아가던 위엄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최소한 국회 답변 역량은 수 년 동안 크게 저하됐다.

J과장이 있던 시절에 특히 이 부처는 많은 법들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그 법들은 당시 600선에 머물던 주가를 오늘날 2000을 넘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국회는 정부가 국민들 앞에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를 소상하게 밝히는 자리다. 금융시장의 투자자들을 비롯한 국민들은 어떤 일이 얼마나 진행됐는지 알고 싶은 것이지, 장관이 의원들 질문에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다짐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들 질문에 구체적으로 알맹이 있는 답변을 하는 것도 정부가 별도로 갖춰야 될 역량이다. 그런데 한동안 그런 것엔 관심이 없고 장관이 ‘나는 대통령의 사람’이란 점만 과시하는데 주력했다.

J과장이 떠난 빈자리는 오고가는 기자와 보좌관들이 앉다가 떠나다 하고 있다. 회의실 옆줄에 J과장의 서류철이 수북이 쌓여있는 활기찬 국회 상임위원회를 못 본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장관이든 공공기관이든, 직원 중에 J과장 같은 사람이 있다면 국회 오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유능한 면모를 과시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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