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국회의원 배임죄 요건 완화 법안추진...재벌들 촉각

재벌그룹 총수들이 구속될 때마다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죄목이 배임죄다. '걸면 걸린다'고 하는 죄다.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아 법정구속된 후 항소심서 징역3년의 실형이 선고돼 대법원에 상고한 김승연 한화회장과 항소심 선고공판을 앞둔 최태원 SK회장도 하나같이 배임 등의 혐의다.

이재현 CJ 회장도 수천억원대의 배임ㆍ횡령 등 혐의로 구속되었으나 신장 이식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법원은 11월28일까지 3개월간 구속집행을 정지시켜 일시 석방했다.

과거 대기업 회장들은 배임죄 혐의로 재판을 받으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라는 정찰제 판결을 받는 게 일종의 관행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이 양형기준을 마련하면서 이같은 특혜성 판결이 어려워졌다. 기업인의 배임죄에 대한 법원의 처벌이 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것이다.

또 일부 정치권 등에서는 경제민주화 분위기에 편승해 기업인의 배임죄에 대해 집행유예와 사면을 금지하는 입법까지 추진하고 있다.

야당측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배임죄 해석-적용을 엄격히 한다면 대기업 총수들이 이를 악용해 형사처벌을 면할 우려가 크다면서 오히려 이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강화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오비이락격으로 최근의 재벌총수의 배임혐의에 대한 실형선고 추세와 맞물려 법학계, 재계, 일부 국회의원들이 배임죄의 구성요건과 해석을 엄격히하고 규정을 보완해 기업인에 대한 배임죄 적용이 남용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나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이명수의원(새누리당) 등 국회의원 10명이 일정한 조건하에 기업인이 내린 결정에 대해서, 설사 기업에 손해가 발생했다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의 상법개정안을 발의해 이 법안이 법사위를 거쳤으며 오는 정기국회에서 개정여부가 결론날 것으로 보인다.

이 법안의 처리과정과 결말에 대해 기소된 재벌 총수들은 물론 배임죄 고강도 처벌이 ‘남의 일’ 같지만은 않은 다른 대기업 오너들도 촉각을 세워 지켜보고 있다.

배임죄는 상법외에 형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도 규정돼있다. 이명수 의원등은 우선 기업인에게 적용되는 상법규정의 개정을 제안한 것이다.

추석연휴 전인 지난 17일 현재 19대 국회들어 접수된 법률(개정)안 6922건 중 95%가 넘는 의원입법 가운데 이 상법개정안은 가장 많은 관심을 끌고있으며 찬반논쟁 또한 뜨겁다
.
이 개정안의 핵심은 ‘경영판단원칙(Business judgment rule)’에 따른 기업인의 민형사상 면책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이다.

즉 ▲경영판단의 원칙을 상법 제382조 제2항에 신설, 명문화하고 ▲경영판단의 원칙이 적용되는 경우에는 상법 제 622조 특별배임죄에서 “다만 경영상의 결정일 때는 벌하지 않는다”는 단서를 삽입하는 것이다.

‘경영판단의 원칙’이란 기업인이 합리적인 정보와 이성에 근거해 의사결정을 했다면 비록 그 결정으로 인해 회사가 손해를 입었다 하더라도 기업인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이런 내용은 벌써 독일의 주식법이 규정해놓았다.

기업환경이 급변하면서 기업인의 판단이 예기치 않은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일이 크게 늘어 단순한 경영상 판단실패인지, 아니면 배신행위인지 입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배임죄는 적용범위와 기준이 애매모호하다고 법률가들이 지적해온 터다. 그래서 ‘배임죄는 걸면 걸린다’는 비아냥마저 나왔다.
 
배임죄는 독일에서 처음 입법화돼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도입된 범죄유형이다. 우리나라 배임죄의 경우 행위주체가 지나치게 넓고 처벌대상인 임무위배행위가 상당히 추상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현실적인 손해발생을 넘어 손해발생우려가 있거나 미수범인 경우에도 처벌하는 등 독일과 일본에 비해서도 훨씬 포괄적인 구성요건을 지니고 있어 자칫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배임죄를 최초로 규정한 독일은 주식법에 경영판단의 원칙을 도입함으로써 경영행위 관련 배임죄는 사실상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경영판단의 원칙을 실정법에서 규정하고있지 않지만 일정부문 판례를 통해 수용하는 상황이다.

대법원은 명시적으로 경영판단의 원칙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인이 필요한 정보를 합리적인 정도로 수집해 충분히 검토한 다음 회사의 이익에 합당한 상당성있는 판단을 했다면 회사에 대한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결과가 나쁘더라도 위법성이 없다는 ‘위법성 조각사유’로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어정쩡한 입장이다. 서울고법 형사7부는 지난4월 계열사를 부당하게 지원해 그룹에 수천억원의 손실을 입힌 혐의로 기소된 김승연 한화회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했다. 김회장 변호인측인 ‘경영판단의 원칙’을 인정해야한다는 변론을 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형을 3년으로 1심보다 1년 감형하면서 “사익을 취하기 위해 회삿돈을 유용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했다”고 감형이유를 설명했다. 배임죄와 경영판단 원칙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인의 업무상 배임죄의 본질이 명백하지 않기 때문에 법원의 업무상 배임판결이 유사한 상황에서 일관성을 상실한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무법인 바른의 윤경 변호사는 “기업경영에는 원천적으로 위험이 내재돼있어 경영자가 아무 사적 이익을 취할 의도없이 선의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기업의 이익에 합치되는 결정을 내렸더라도 예측이 빗나가 기업에 손해를 끼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에도 배임죄 책임을 묻는다면 기업가 정신이 위축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경영판단의 원칙은 소유-경영분리를 전제로 적용되는 법리로 대부분 폐쇄회사로 돼있는 우리나라에서의 도입은 시기상조이며 상법상 이미 이사의 책임을 감면해줄 수 있는 규정이 있다는 반박논리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창의적 혁신을 위해 현실과 괴리가 큰 배임죄 등 법제도를 정비해야한다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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