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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의 노동당사, 지뢰꽃길...그리고 한반도어느 기업인의 트레킹 이야기<15>...박성기 철원을 걷다. 농업활동은 가능한 곳
박성기 도보여행가  |  wh1463@choic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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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15  06:3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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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기 대표

 

[외부 기고=박성기 도보여행가, 도서출판 깊은 샘 대표] 2017년 10월 7일 토요일, 다시 철원으로 향했다. 상허 이태준의 자취를 따라 철원과 인연을 맺은 지 이십여 년이 흘렀다. 그때는 지금처럼 쉽게 들어가지 못하고 군(軍)의 허락을 받아서 이태준 생가와 노동당사를 살펴볼 수 있었다.

이태준 생가 터는 깨진 기왓장 파편만 이리저리 흩어진 채 황폐했고, 총탄자국으로 가득한 노동당사는 우리민족의 슬픈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마음까지 먹먹하게 했었다. 그때 이후 한동안 못 가다가 몇 년 전부터 매해 두세 번씩 벌써 십 수 번 들렀다.

   
▲ 노동당사 /사진=박성기 대표

이번 여정은 노동당사를 출발해 지뢰밭을 꽃길로 단장한 한여울길 5코스인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과 궁예의 꿈이 서린 동주산성을 지나 국보63호 비로자나불을 모신 도피안사를 살펴보는 한여울길 4코스인 "천년역사의 숨결 녹색길"이다.

오전 10시 노동당사 앞에 섰다. 앙상한 노동당사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건물 마디마디의 깊게 패인 상처는 한국전쟁으로 수없이 많은 귀중한 생명들이 스러져 갔음을 보여준다.

하늘은 맑고 푸르러서 호수가 되었다. 내 시선은 호수 위를 쉼 없이 내달린다. 너무도 명징(明澄)해서 손이라도 살짝 댈라치면 호수가 산산이 흩어질까 조심스럽다. 하얀 솜털구름이 보송보송하다. 막 물들 준비를 하는 나무와 산들거리는 바람에 코스모스가 가을의 시작을 알린다.

   
▲ 지뢰꽃길 시작 /사진=박성기 대표

노동당사를 떠나 1킬로쯤 걸어서 소이산 지뢰꽃길 앞에 섰다. 코스모스와 구절초가 객을 맞이한다. 가시철망을 비집고 고개를 살짝 내민 마른 산수국은 이곳이 지뢰의 땅임을 잊게 만든다. 그러나 철망 곳곳에 걸린 '지뢰조심' 푯말이 나를 긴장시킨다.

   
▲ 지뢰조심 푯말 /사진=박성기 대표

숲은 사람이 거치지 않은 원시림으로 무성했다. 길을 따라 줄느런한 철조망은 평화와 생명의 시 무대가 되었다. 오늘이 시낭송회 하는 날인가보다. 꽃길에 걸린 "제5회 소이산 지뢰꽃길 시낭송회"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벌써 이 길이 개통 된지도 5년이 되어간다.

   
▲ 철원평야 /사진=박성기 대표

지뢰꽃길 철조망 너머로 펼쳐진 평야가 민간인 통제구역이다. 허가받은 지역 주민들만 들어가서 농사를 짓는 곳이다. 그나마 농업이 가능해 경제활동이 이뤄진다니 마음의 위안이 된다.

너른 철원 평야가 시선을 무한대로 확장한다. 평야가 넓게 북으로 이어졌다. 인가가 보이지 않아 쓸쓸한 기분을 들게 한다. 평야를 지나 더 들어가면 북한 땅이다. 철원 평야의 공간을 넘어 공허하게 웅웅 울리는 알아듣지 못하는 대남방송 소리가 이곳이 첨예한 곳임을 깨닫게 한다.

   
▲ 담벼락의 이끼와 덩쿨식물 /사진=박성기 대표

옛 부대가 있던 네모난 틀 모양 담벼락에 낀 이끼의 두께가 지나온 시간을 말한다. 그 위를 가로지르는 넝쿨은 하늘을 향해 머리를 뻗었다. 소이산 생태숲길의 일부인 푹신하고 편안한 지뢰꽃길을 지나 정상을 향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멘트 포장길을 가파르게 올랐다. 숲을 벗어난 길은 더웠다. 여름의 뒤끝은 배낭을 멘 등짝을 땀으로 차게 했다.

   
▲ 철원평야, 김일성고지, 아이스크림고지가 보인다. /사진=박성기 대표

소이산 정상이다. 고려시대부터 봉수대가 있던 자리로 봉수대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서는 탁트인 철원평야와 멀리 북한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멀리 김일성고지, 백마고지, 아이스크림고지에는 무수한 꽃 같은 생명들이 묻혔다.

이 일대를 두고 남과 북이 서로 조금이나마 더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곳이다. 넓은 평야라 모든 게 일목요연하여서 전투하기가 훨씬 어렵고 힘들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 새우젓고개의 수도국지 /사진=박성기 대표

산을 내려와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틀어 새우젓고개로 향했다. 새우젓 장수가 용담에서 철원읍으로 새우젓을 지게에 지고 팔러가다가 이 고개에서 쉬어갔다고 해서 새우젓고개란 이름이 생겼다. 6.25때는 피난민들이 몰살당했던 역사가 서린 곳이기도 하다. 전쟁에 철원 곳곳, 전국 어디에나 슬프지 않은 곳이 어디 있을까마는 마음이 아프다.

새우젓 고개에는 수도국지의 상수도 건축물도 일부 남아 있다. 당시 강원도서 유일하게 500가구 2500명에게 물을 공급했다니 이곳이 상당히 번창했었음을 증명한다.

   
▲ 동주산성 터 /사진=박성기 대표

새우젓고개를 넘어 계속 진행하면 이태준 생가인 용담과 백마고지로 향하는 길이다. 고개 위에서 좌측 산길로 길을 잡았다. 여기가 두 번째 길인 동주산성을 지나가는 "천년역사 녹색길"이다.

산성 터를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6.25 치열한 전투로 인해 성의 모습은 흔적만 조금 남아있지만 궁예가 태봉을 세우고 승승장구할 때 만들어진 성이다. 후삼국의 중심지로서 철원의 존재가 이곳에 있었지만 한쪽 허물어진 조그마한 성벽만이 옛 영화를 그리게 할 뿐이다.

   
▲ 군사훈련 구조물 /사진=박성기 대표

동주산성 터를 지나니 평탄한 숲길이다. 예전 이곳이 군사 훈련장이었음을 나타내주는 구조물이 계속 이어진다. 첨예한 남북 상황을 되새김질 하는 길이었다. 길을 걷는 내내 안내표식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어서 아름다운 길임에도 불편하다. 길을 만들었으면 관리도 잘 해야 한다. 아름다운 길이 사람이 다니지 않고 풀숲으로 변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 길에서 만난 꽃 /사진=박성기 대표

길은 노랑꽃, 보라색 꽃, 하얀 꽃 등 꽃들의 향연이었다. 사람이 다니지 않았기에 더 무성하고 귀한 꽃을 구경할 수가 있었다. 구경에 심취해서 길을 잘못 들어 1킬로쯤 걸었던 길을 되돌아왔으나 행복한 길이다.

   
▲ 철원향교 /사진=박성기 대표

산을 끼고 돌고 돌다보니 철원향교에 도착했다. 철원 향교는 궁예가 태봉왕일 때 왕건이 살던 집터라고 한다. 향교는 문이 잠겨있는 탓에 들어설 수 없어서 밖으로만 보았다. 향교는 복원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예스럽지 않았다. 길 건너 조금만 더 가면 목적지 도피안사다. 잠시 쉬고는 서둘러 길을 재촉했다.

   
▲ 국보63호 철조비로자나불 /사진=박성기 대표

도피안사(到彼岸寺)에 도착했다. 이제껏 힘들게 걸어 피안의 땅에 들어선 것인가? 일주문을 지나 속세에서 피안의 세계로 들어섰다.

국보 63호인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 앞에 섰다. 단정한 얼굴모습을 하고 참선을 하고 있는 모습이 친근하다. 절을 나와 일주문 앞에 섰다. 이제는 다시 속세로 나와야 한다. 일주문 하늘에 떠있는 구름이 내 속세 행을 반긴다. 시간을 보니 오후 네 시가 넘었다.

   
▲ 일주문과 구름 /사진=박성기 대표

오늘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민통선 숲길을 걸었다. 남북이 대치하고 핵전쟁을 한다는 험한 말이 오고가는 현재의 상황이 겹친다. 지뢰꽃길을 걸으며, 광활한 철원평야 너머 북에서 들려오는 대남방송에도 평화로운 마음이 깨지지 않는 역설적인 경험을 하였다.

이제 점점 가을은 깊어가고 추운 겨울이 도래하겠지만 남과 북에는 따뜻한 봄이 오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철원 걷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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